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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열심히 사는 것 같다. 헤르미온느의 시계라도 가지고 있는 듯 매일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심지어는 운동까지 하여 어느 날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고 한다. 몸이 10개라도 되는지...
반면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소문으로, SNS로, 모임으로 듣고 있는 자신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학생의 본분에 맞게 공부 열심히 하고 가끔 알바도 하고, 직장인의 본분에 맞게 하루에 10시간은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뿐인 것 같다. 친구들도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루씩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보면 쫓기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각박함에 시달리며 번아웃 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기에 가볍게 위안을 주는 책들도 많이 나온다. 에세이 부분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은 '괜찮다'라고 얘기하는 책들이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바쁘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숨 막히는 직장 생활에 환멸을 느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무작정 세상에 뛰어들어도 괜찮았던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책들. 그래! 괜찮을 거야! 이 사람도 괜찮았는걸! 하고 마음을 편히 먹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쉬운 점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괜찮아'의 미학.
애쓰지 않아도 괜찮을 걸까? 나의 삶에 작은 여유를 부려도 정말 괜찮은 걸까? 나와 다른 누군가가 그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엮어낸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느림을 추구해도 괜찮은 진짜 이유를 찾고 싶다. 조금은 더 깊은 생각으로 얻어낸 진지한 결론을.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느림과 편안함, 그리고 주저하지 않는 몰입을 동시에 요구하는 조금 특별한 철학자이다. 여유롭게 걷는다는 건 길가에 있는 풀과 꽃도 보고 가끔은 얼마나 걸어왔나 뒤도 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원한다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룬다면 진정으로 원한 것이라는 말을 하는 이 프랑스식 사고의 철학자는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망설임은 의도치 않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낳고 동굴 입구의 직전에 아내 에우리디케를 뒤돌아봐 영영 아내를 되찾지 못한 오르페우스처럼 목적지에 닿지 못하게 만든다. 허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가려면 이완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 쫓기는 것이 아닌 느림을 즐길 수 있는 철학.
책은 지나친 생각과 망설임, 성난 개에 쫓기는 듯한 태도가 아닌 편안한 마음이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 수 있음을 역설한다. 두려움을 떨치려는 과도한 간절함은 되려 두려움에 잠식당하는 계기가 된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 성취한 개인적인 발전은 중요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이끈다. 새로 지어진 쌍둥이 빌딩 사이를 맨몸으로 올라 공중에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던 필리프 프티처럼.
세상에 흐르는 철학은 시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10년 전에는 바쁘게 살라고 그토록 강조하더니,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살라고 난리를 친다. 아직까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사는 세상에서 여유를 갖기가 쉽지는 않다. 어쩌면 '괜차니즘'를 전하는 가벼운 에세이들이 괜찮음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가볍디가벼운 종잇조각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철학자가 전하는 '괜차니즘'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다만 괜찮다, 괜찮다 말하지 않는다. 뚜렷한 철학이 존재한다. 망설임이 가져올 수 있는 불행과 뒤를 보지 않는 굳건함, 그 강단의 조절을 우해 느림이 필요한 이유까지. 결코 접하지 못했던 발상이다.
진정으로 느림이 필요하다면 느림이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여유로운 마음의 한 철학자의 고민 속에는 바쁨만큼이나 느림 또한 필요한 존재임이 명확해 보인다.
느림이 필요한 철학적 이유, <노력의 기쁨과 슬픔>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다른 출판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