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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심리학 - 소비자의 코드를 읽는 15가지 키워드, 개정판 ㅣ 마케팅 타임리스 클래식
로버트 B. 세틀. 파멜라 L. 알렉 지음, 대홍기획 마케팅컨설팅그룹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을 여실히 보여주며 오랜 경제학의 통념을 다시 한번 깨부수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경제학의 가장 기본 전제인, 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가정은 경제학의 주요 모델을 도출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 여겨 왔던 경제학자들에게 2000년대 초반 '넛지'의 리처드 탈러 교수에 뒤이어 또다시 인간의 '비합리성'을 주장하는 노벨상 수상자의 출현은 정통 경제학의 커다란 위기였다.
중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 함수의 개념을 배우기 위해 '무엇이든지 넣어보세요 박스'를 접했던 기억이 날 것이다. 중간에 물음표가 그려진, 깔때기 모양의 입구가 마련된 네모 상자. 입력값에 따라 정해진 출력값을 도출하는 함수 박스처럼 경제학자들은 오랜 시간 인간이 특정 입력값에 대한 충분히 예상 가능한 출력값이 있는 정형화된 존재라 생각했었다. 결론은, 인간은 순전히 자기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 다른 값을 내뱉는 이상한 존재이다!
경제학의 심오한 논리만큼이나 심리적인 요인이 소비자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그렇기에 이미 10여 년 전부터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다. 자신에게 아직 신을만한 스니커즈 운동화가 몇 개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친한 친구의 자랑에 자기도 모르게 인터넷에서 129,000원을 결제하는 사람들. 변동성이 큰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조금의 공부도 없이 시장의 순간적인 광풍에 휩싸여 전 재산을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은 진정 심리학의 간교에 휘둘리는 비이성적 존재가 맞는 듯하다.
<소비의 심리학>은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소비자의 행동을 소비자 자신들보다 정확히 예측하고 해석하여 회사에 막대한 돈을 벌어다 줘야 하는 존재인 마케터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지는 책이다. 가장 흔한 직무이나 직책 중 하나인 마케팅 업종 종사자들은 나날이 늘어가는 업무량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다.
과거에는 감성, 감성, 그리고 또 감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기업을 정성적으로 브랜딩하고 멋들어진 광고를 찍는 것이 마케터에 대한 주된 '인식'이었다면 요즘은 숫자 속에 파묻혀 살기도 한다. 마케팅 엔지니어링이라는 분야가 활성화되면서 마케팅 채널의 유입률과 전환율, 구매율 등의 수치를 웬만한 통계학자보다 정성껏 살펴야 하고 도표와 그래프에 파묻혀 산다. 여기에 한 가지 미션이 더해졌다. '심리학'. 마케터들은 이제 소비자들의 심리를 통해 브랜드와 제품, 소비자 그룹을 통제하는 '심리학자'가 되어야 할 지경이다.
소비자는 필요하면 물건을 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쇼윈도 앞을 떠날 수 있는 존재일까? 궁극적으로 '구매'라는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는 수많은 심리적 단계가 숨겨져 있다. 어제 산 쇼핑 목록에 우유와 계란이 몇 개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는 터무니없이 바보처럼 느껴지는 소비자의 결정에 담긴 심리학적 비밀은 책은 15가지의 키워드로 풀어낸다. 학문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지만 10대부터 70대까지로 연령을 가능한 한 세부적으로 분화하고, 결혼한 남성, 결혼하지 않은 남성, 결혼하지 않았지만 결혼할 의지가 있는 남성, 결혼하지 않았지만 결혼할 의지가 없는 남성으로까지 소비자 그룹의 거의 모든 것을 분석하며 독자들은 각 소비자의 심리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다.
같은 5,000원을 할인받기 위해서 5km 거리의 다른 상점까지 걸어가야 하는 상황. 정가가 5만 원인 경우와 50만 원인 경우 소비자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된다. 레퍼런스, 이른바 준거 가격이 다르게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50만 원에 대한 5천 원은 하잘것없는 가치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상황 속 그 사람이 멍청한 것이 아니다. 사례를 읽는 누구나 '그럴 수 있지'라고 속으로 외치지 않는가!
같은 가치의 돈을 얻을 수 있고, 잃을 수 있는 상황. 사람들은 그래도 잃는 것을 피하려 한다. 손실은 같은 가치에 해당하는 이익보다 2배의 심리적 타격감을 준다. 손실 회피 성향이라 불리는 심리학적 현상은 기댓값을 봤을 때 마땅히 '베팅'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주저하게 만든다. 잃었을 때 그 고통은 너무나 처절할 것이기에!
초 두 효과와 최신 효과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특성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가장 앞 순서와 뒷 순서 중 어떤 것이 기억에 오래 남을까? 순수하게 지원자의 역량과 퍼포먼스를 보고 공정하게 심사해야 하는 심사위원들이지만 앞 순서이냐, 뒷 순서이냐는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이다. 10억 원을 들여 제작한 광고는 어떤 시간에 편성해야 할까.
인간의 눈과 시신경이 무언가를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있다. 게다가 인간은 주요 시야각에 들어오지 않는 사물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TV 컨텐츠에는 PPL 광고가 지나치게 돋보이는 것일까. 낯부끄러워 볼 수 없다는 원성에 PPL을 눈 깜빡할 사이에 흘려보내기로 결정한 제작진. 그럼에도 사람들은 PPL 속의 제품을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존재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뇌과학적 특성을 이용한 광고 중에는 덕분에 시청자들에게 불법적인 세뇌를 종용한다고 광고 중단 조치를 받은 것도 있다.
재미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심리학적 현상뿐만 아니라 책은 소비자 그룹이 지니고 있는 '캐릭터', 즉 특성을 세부적으로 분석하여 그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기획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가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를 뼛속까지 분석하는 것이 먼저이다. 단순한 고객이 아닌, 시장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의 배우로 소비자를 인식해야 한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배우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감독은 극을 훌륭하게 이끌어 갈 수 없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소비자 또한 다양한 특성을 발현한다. 단편적인 심리적 특성에 더해 소비자 그룹의 행동 양식을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마케터는 시장 속에서 훌륭히 빛나는 명감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까다로운 존재가 되고 있다. 소비자 스스로가 똑똑해지며 마케터와 기업이 실행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미리 꿰뚫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비합리성'은 마케터에게 마지막 남은 한 줄기 희망이다. 자신도 모르게 상황과 환경에 따라 제법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을 내리는 인간. 마케터는 그 작은 빈틈을 노려야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어리숙한 면이 시장을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이기에.
인간의 비합리성이 만드는 작은 빈틈을 노려라, <소비의 심리학>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세종서적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