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로그 - 전시와 도시 사이
유영이 지음 / 효형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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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춤 했던 전시 문화가 다시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교양과 소양을 쌓는 것은 먹고 사는 일 다음이라는 핑계로 경제에 타격을 받으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영역이 문화예술이다. 타인과의 접촉을 막아야만 하는 코로나19 시대는 두 눈으로 직접 작품을 접하고 공간 전체가 주는 영감을 담아야 하는 '전시'를 근원적으로 차단했고 우리 사회는 회색빛으로 생기를 잃었다.

누군가의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예술 작품들을 접하지 않는다고 무엇이 그리 문제가 될까. 전시가 일상의 삶에 가까워지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멋진 전시를 심심치 않게 경험하고 있지만 15년 전만 해도 예술을 담는 '전시'라는 공간이자 개념은 고상한 사람들의 유니크한 취향이었다. SNS가 활성화 되고 사람들의 전반적인 삶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마음 속에 무언가 영감을 주는 예술을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었다. '느끼는 전시'에서 '보는 전시'로 전시의 성향이 바뀌면서 전시 자체는 과거에 비해 무척이나 활성되었다. 한번 바뀌어버린 세계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현대인들은 각박해진 세상 속에서 감성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예술을 계속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이얼로그>는 공간을 통해 메시지를 표현하는 '전시'에 푹 빠져 사람들에게 더 큰 영감을 주기 위해 고민하는 한 전시 기획자의 책이다. 컴퓨터 도면이 익숙하지 않던 시절, 손으로 제도를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좋았던 저자는 점차 공간에 영혼을 불어넣는 일을 꿈꾸게 되었다. 학부에서 조경학을 공부하다 더 넓은 세상을 훔치기 위해 이탈리아어도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이탈리아의 밀라노 공대로 떠났다. 건축대학과 디자인대학이 함께 만든 수업에서 세계적인 전시기획자들과 함께 일련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마침내 전시란 '대화'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뜨거운 여름날 강남 한복판의 수많은 인파 속에 전시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스페인의 비극을 담은 작품은 걸리적거리는 캔버스가 되거나 화창한 날씨와 대비되어 제대로 된 의미를 전할 수 없을 것이다. 피카소가 그 작품을 화폭에 옮길 때 느꼈던 감상과 당시의 시대상, 피카소가 일생 동안 신념으로 삼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고 다시 돌아나와 게르니카를 멀찍이 떨어져 감상할 때 파괴적으로 보이는 그 작품이 영혼을 얻는다. 여기에 사람들에게 작품의 이야기를 더욱 잘 전달해주고자 교감하는 도슨트, 전시할 작품을 선택하는 큐레이터 등이 함께 어우러질 때 예술은 비로소 예술이 된다.

전시는 이처럼 공간이 공간 속에 들어온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이다. 공간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관람객들이 궁금해 하는 의문들이 있다. 공간의 주인공이 되는 주제가 무엇을 이야기 하면 좋을지 깊은 고민을 거쳐 작품을 선정하고 배치한다. 이야기에 힘을 실을 수 있는 도구들을 배치하고 공간 자체를 하나의 세계로 만든다. 사람들 또한 예전처럼 그저 눈으로 슥 훑고 전시를 '봤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논쟁이 활발하지만 사진을 찍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 전시의 감동과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고, 이어폰을 끼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작품을 깊게 더 깊게 이해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도슨트를 신청하여 도슨트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자신이 해당 예술 분야에 대해, 해당 작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교양 수준을 알려주고 그에 맞는 안내를 받기도 한다. 온통 대화와 대화가 이뤄지는 공간이 바로 '전시'라는 행위 그 자체인 것이다.

많지 않은 나이에도 이미 국내의 유명 전시 그룹에 속하여 수많은 전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해외에서의 경험과 국내의 전시 문화, 전시에 대한 인식을 조화롭게 융화하려 노력한다. 코로나 19 시대에 전시 문화가 걸어가야 할 행보와 현대인의 문화적 인식에 대한 제안도 함께이다. 현대의 전시는 점차 그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틀에 박힌 전시를 만드는 시대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맞다면 산 속에서도, 바다 속에서도, 도심의 한복판에서도 '전시'라는 공간이자 행위는 이루어질 수 있다.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게 마련하여 더 깊은 영감을 주고픈 전시는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도 나름의 방법을 찾아나갈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주체들은 대화를 위해 결국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이기에.

공간이 전하고픈 이야기, <다이얼로그>였습니다.

* 본 리뷰는 효형출판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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