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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매스 - 수학, 인류를 구할 영웅인가? 파멸로 이끌 악당인가?
애나 웰트만 지음, 장영재 옮김 / 비아북 / 2021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럽 대륙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에 이르기까지 수백 km에 달하는 전선이 있었다. 사람 한명이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을 깊이의 참호로 이루어진. 지옥과도 같은 참호전으로 유명한 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시대였다고 기록되는 20세기를 열어젖힌 참담한 비극이었다. 수천 만 명이 죽었고 수천 만 명이 집과 가족, 정든 고향을 잃었다. 비극뿐인줄 알았던 1차 세계대전 역사에 기적과도 같은 '하루'는 그렇기에 더욱 빛난다.


내가 쏘지 않으면 저들도 쏘지 않고 저들이 쏘지 않으면 나도 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생기며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던 양측의 병사들은 평소 같았으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축제를 벌여야 할 크리스마스를 어깨를 맞대고 함께 보냈다. 한 세기가 넘도록 기억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재미난 사실은 이와 같은 병사들이 행동이 이성적으로, 나아가 수학적으로도 도저히 불가능한 진정한 '기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게임이론인 죄수의 딜레마와 같이 상대의 행동과 그에 따른 자신의 행동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취해야 할 최적의 행동은 정해져 있는 것만 같다. 마치 옆방에 갇혀 있는 친구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친구를 고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 전선을 맞대고 동서로 나뉘어 있던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적군이 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쏘지 않는 것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무장도 없이 철조망을 뚫고 전선 중간에 모여 캐럴과 함께 벌이는 크리스마스 파티라니. 그럼에도 이와 같은 일은 언젠가 발생한다. 기적과도 같은 일에 흥미로운 설명을 더하는 것이 다시 한번 수학이다.
<슈퍼 매스>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차원의 이야기를 수학을 통해 풀어나가며 동시에 수학이 걸어가야 할 길을 논하는 책이다. 슈퍼매스가 논의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예를 들어, <이상한 수학책>과 같이 피자 도우에 숨겨진 원과 삼각형의 비밀을 밝히는 것처럼 가벼운 차원은 아니다. 보다 심도 있고 흥미롭다.
수학은 흔히 만국 공용어라 불린다. 언어는 모두 달라도 1개, 2개, 3개를 세는 셈법과 사칙연산은 공통이다. 적어도 지구에서만큼은. 바로 옆이라고 하기엔 조금 멀긴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바로 옆에 있는 행성인 화성에서도 마찬가지일까? 목성에서도? 수학은 우주 공통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우주로 지구의 정보를 보내는 프로젝트에 두 명의 수학자가 참여했다. 그들은 수학을 지구의 수학 기호가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여 머나먼 우주로 쏘아올렸다. 100만 년 후 캡슐에 든 물체 속의 수학 기호나 전파로 이루어진 부호를 해석한 외계인이 나타날 수 있다면 수학은 다시 한번 '우주' 공용어의 위상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수학'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난폭하게 수학을 알려주는', '남성', '백인'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수학은 특히 유색인종, 여성, 빈곤층 등과 거리가 먼 학문이다. 소위 첨단 과학 기술을 의미하는 STEM 중에서도 M, 즉 수학은 가장 특정 계층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차별적인' 학문으로 악명 높다. <슈퍼 매스>는 이와 같이 수학이 현재 걸어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도 수학적으로 날카롭게 일갈하는 면을 보인다. 흥미를 돋우기 위해 시작한 이야기를 잠시 젖혀두고 조금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꺼낸 후, 다시 최초의 주제로 돌아가는 방식을 모든 챕터에 걸쳐 사용하며 가능한 많은 수학적 연구 분야를 탐구하려 노력했다. 수학교육학 박사 학위를 지닌 저자이기에 어떤 이에게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학문일 수 있는 수학을 다양한 깊이로 담아내려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학은 사람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홀리기도 한다. 통계와 확률이 대표적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통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편향된 정보를 줄 수 있는 수학의 세부 분야 중 하나이다. 미국의 선거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게리맨더링이나 '최적정지' 이론 등을 통해 수학이 잘못된 길로도 옳은 일로도 빠질 수 있음을 확인한다. 수학을 다루는 이의 태도와 의도에 따라 수학은 친구가 될 수도,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루고 있는 주제의 깊이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는 점이 돋보였다. 인문학적, 철학적 관점으로도 상당한 생각이 필요한 주제에 대해 수학적으로까지 접근을 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다가도 흥미로운 논쟁을 펼쳐 한껏 풀어주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결국 수학의 순수성을 이야기하며 사용자의 목적성에 따라 수학은 철저히 더렵혀질 수도 빛날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수학을 아는만큼 세상을 철저히 변한다. 누군가가 사용하는 악의 수학에 휘말리지 않고 선의 수학으로 인생을 구하기 위해 수학의 깊은 묘미를 탐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두 얼굴을 가진 수학의 순수성, <슈퍼 매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비아북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