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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 - 시대의 전환을 이끌어낸 역사적인 기후 소송이 펼쳐진다!
리처드 J. 라자루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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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6억 년 지구의 역사 속에서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당시 생명체의 절반 이상을, 많게는 90%를 절멸시켰던 멸종은 지구의 주인을 바꾸어 놓았고 땅 속에 지나간 혹독함을 기록해 두었다. '홀로세'라는 지질시대를 지나고 있는 지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지난 다섯 번의 역사는 다양한 원인으로 벌어졌지만 적어도 지구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한 생명체의 힘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었다. 인류를 포함하게 될 이번 여섯 번째 역사는 놀랍게도 최초로 하나의 '종'에 의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의 장본인이자 악역은 당연하게도 인류이다.
지난 100만 년 동안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보다 지난 150년 동안 인류가 만든 이산화탄소의 양이 더 많다. 그것도 몇십 배씩이나. 공기 중으로 배출된 탄소는 바다로 녹아들어 해양 생명체의 생존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그것도 모자라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양 극지방에 있는 빙하의 양을 급속도로 감소시킨다. 차가운 민물이 바닷물에 녹아들어 해류의 움직임을 바꾸고 전 세계 곳곳에 예년과는 다른 '기후'의 변화를 만든다. 우리가 흔히 아는 기후 재앙 시나리오이다.
기후 문제는 비단 최근의 문제가 아니다. 1950년대에도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는 인류 문명의 속도를 우려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1969년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이 촉발한 고전적인 환경 운동은 10~20년에 걸쳐 점진적인 환경 인식 변화를 만들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던 국가들에 무언의 메세지를 남겼다. 미국 또한 기후 변화와 관련된 법안을 제정하는 등 다양한 행동을 취했다. 허나 미미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2000년이 채 되지 않았던 과거, 기후 변화는 하나의 정치적인 수단이나 '쇼'의 컨텐츠에 불과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로스쿨을 졸업하고 직원이 다섯 명밖에 없는 작은 환경 단체의 변호사로 일하던 한 남자는 쇼가 계속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저 쇼에 불과하다면 기후 위기는 결코 진중하게 다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의 경제 호황 때 미국은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했고 예년과 달리 과학자들 또한 온실가스의 배출이 만들 최악의 기후 시나리오를 발 빠르게 내놓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적지근한 행정부. 그렇게 '조 멘델슨'의 쟁투가 시작됐다. 장장 8년에 달했던 위대한 여정. 부시 대통령을 막후에 둔 거대한 정치 세력과의 혈투는 소수에 불과한 '이산화탄소 전사'들에게 벅찬 상대였다. 골리앗과의 전투는 언제나 두둑한 보상을 내놓는 것일까. 그렇기에 조 멘델슨이 이끌어낸 '위대한 판결'은 기후 변화 프로토콜 역사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은 기후 위기를 진정으로 세계인의 눈앞에 떠오르게 만든 개인들의 쟁투를 담고 있다. 결국 세계는 철저히 이익에 관한 정치적 판단에서 움직인다. 지구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의 벼랑끝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고 한들 오늘날도 기후 변화에 대한 논의는 철저히 정치적이다. 실제로 환경 문제가 인류의 심각한 위협이 된 오늘날도 이러한데 20년에는 오죽했을까. 그렇기에 조 멘델슨이 뛰어든 싸움은 사실 정치 문제에 가까웠다. 정치란 세력과 힘의 차이가 절대적이다. 그래서일까.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등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대통령을 상대로 담대한 도전을 시작한 조 멘델슨은 도저히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라고 처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싶었을까. 1990년대 초반부터 느껴졌던 기후 변화에 대한 정치적 흐름은 미묘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끝까지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다. 환경청의 수장마저도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장기말에 불과했다. 정치 커리어에 닥친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위기의 지구>를 펼쳐낸 엘 고어를 조 멘델슨은 믿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국가에서 탄소 배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자동차'에 대한 환경 청원을 준비하고 있던 조는 클린턴 행정부의 막바지에 청원을 제출해 터뜨리려 했다. 다음 행정부의 입장에서 기후 문제가 주요한 쟁점으로 느껴지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텍사스의 주지사였던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 됐다. 엘 고어는 기후 운동에 대한 멋들어진 이미지만 남긴 채 사라졌다. 모든 것이 꼬였다. 조지 부시는 이산화탄소와 자동차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대통령의 입장에서 철저히 정치적인 판단을 했고 그것을 자신의 '해석'으로 국회에 전달했다. 이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닌 '대법원'의 몫. 조 멘델슨의 기나긴 여정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결코 혼자서는 버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로스쿨을 졸업하여 정성껏 돌봐야 할 자녀가 둘이나 있는 사람이 외로운 싸움을 8년 넘게 할 수 있었을까. 조 멘델슨에게는 때로는 과격하게, 때로는 지혜롭게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든든한 동료들이 있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사회의 분위기가 점차 변화한 것도 한몫 했다. 물론 변화를 이끌어 나간 이들 중에는 조 멘델슨이 속한 '이산화탄소 전사'들이 있었다.
2000년의 거의 전 시기에 걸친 미국 행정부의 정치 논쟁을 상당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 변화와 더불어 빌 클린턴, 조지 부시,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미국 대통령과 지구 반대편의 우리로서는 쉽사리 알지 못했던 미국의 분위기, 의사 결정 방향까지 한번에 잡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기후 변화가 우리 시대의 주요한 쟁점으로 마침내 부상한 것은 감동적이다. 여전히 냉대를 받는 것만 같지만 몇몇의 개인이 독수리와도 같은 미국의 정치 세력에 맞서 승리를 거뒀다면 또 한번 기후 변화라는 주체를 승리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환경 문제를 단순히 환경 문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또한 철저히 정치적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 지도부가 신경 쓰게 만드는 것. 기후 변화를 세계인의 쟁점으로 등장시키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정치 문제가 철저히 얽혀 있었던 하나의 판결을 읽어야 한다. 또 한번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위대한 판결을 위해 기후에 얽힌 정치판을 정확히 읽어낼 시간이다.
기후 변화는 정치다,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메디치미디어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