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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시미즈 켄 지음, 박소영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건강할 것만 같다. 특별히 몸에 나쁜 것도 하지 않고 나이도 아직 젊기에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은 그저 진부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당장 내일이라도 생사를 오갈 수 있는 중병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건강과 젊음. 두 개의 단어는 시간이라는 가치를 한없이 부질없는 존재로 만들어 우리의 인생을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인듯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게 만든다.
한없이 주어진 것만 같았던 시간이 어느덧 재깍재깍 자신을 쫓아온다. 1년, 길어야 1년일뿐 6개월, 3개월 등 익숙했던 시간의 개념은 어느순간 숨이 턱 막히는 존재가 되었다. 어느날 불현듯 암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듣게 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무한한 시간이 유한의 것으로 바뀌며 달라지게 되는 일상들. 일상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 두려워 눈물이 터져 흐르고 가끔은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를 굳게 다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통 속에 살아나가는 것이 벅차기만 하다. 분노, 비통, 인정, 체념, 정리.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 둘 떠오르는 감정들이다.
나라고 다를까. 대한민국 어딘가의 누군가라고 다를까. 자신만은 다르리라 생각하지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갑작스러운 감정의 기복은 인생을 뒤바꾸어 놓는다. 책 한권을 읽는다고 결코 그 고단한 시간을 오롯이 준비할 수 있으랴. 다만 우리의 삶이 실제로 유한한 시간으로 느껴지기 전에 인생을 달고 쓰게 한껏 느끼며 살아가기 위함이 아닐까. 무거운 병환과 싸우는 존재들, 어쩌면 자연의 순리일지도 모르는 시간 속에서 스러져갔고 때로는 순리를 거스르려 안간힘을 써 이겨낸 사람들을 다룬 책은 늘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을 가져온다.
마치 당장이라도 오롯이 제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부풀어버린 기대. 앞서 떠난 누군가가 담긴 기억 속에서 쟁투적인 삶을 살아가리라 마음 먹는 짧은 시간. 비록 많은 경우 책 속의 존재들이 그토록 간절히 살아내고 싶었던 하루를 살아내리라는 의지는 그리 오래가지 않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잠깐이라도 불타올랐다는 사실은 떠난 이들에게도 섭섭한 소식은 아니리라.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은 주로 암환자와 마주하며 정신적으로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했던 의사의 이야기이다. 불굴의 의지로 암을 이겨낸 환자도 많고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도 많다.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비통한 일이다. 27살의 한 여성은 생각지도 못한 암 발병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배가 딱딱하게 굳어 죽조차 삼킬 수 없게 된 자신에게 그래도 한 숟가락 밥을 들라는 어머니를 나무란 그녀. 어머니라고 그 마음을 몰랐을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식이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데 어머니의 마음은 암에 걸린 그녀의 속보다 썩어들어갔을 것이다. 이처럼 시간의 유한성은, 그것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유한성은 가족 또한 환자로 만든다. 본인도, 주변도 모두 침통하게 시간을 보내고 남은 것은 침울함과 고요함. 그렇지만 결국 찾아오는 진정한 작별.
암환자를 마주하며 눌러 담은 수많은 감정과 이별, 회고가 잘 녹아있다. 짧지만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들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단 한 발자국이나마 더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살아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책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결국 떠나간 사람들의 마지막 생각을 담아두었다. 젊은 나이에 떠나지만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청년. 만약 당장 내일 눈을 못 감게 된다면 우리는 감히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고맙다고, 아쉬웠다고, 서운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마지막, 또는 마지막이 될뻔한 순간을 넘기며 가졌던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며 저자는 물음을 던진다. 유한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
4천 명의 암 환자를 만난 정신과 의사가 던지는 질문,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한빛비즈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