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인간의 시계로부터 벗어난 무한한 시공간으로의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보희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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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과학적 관점에서의 해석과 철학적 관점에서의 해석이 동시에 존재하는 영역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한쪽에만 치우친 해석은 우주를 지배하는 시공간의 법칙을 물리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철저히 왜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그렇기에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그저 눈앞에 존재하는 무언가인 공간과 시계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과학자들에게는 평생토록 연구해야 할 중대한 목표이기도 하다. 뉴턴,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등 인류사를 장식한 굵직한 인물들은 어째서 시간과 공간의 의미에 푹 빠졌을까. 세기의 천재들이라 불렸던 과학자들은 마침내 시공간의 비밀을 모두 밝혀냈을까?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과학자과 철학자들의 영원한 숙제에 대해 오랜 시간 진중히 고민해온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이다. 복잡한 방정식과 쉽게 서술하려 애써도 도무지 불가능한 과학적 이론 대신 질문과 사유로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 점이 인상적이다. 머릿속에서 이론과 수학적으로는 증명이 가능하거나 가설을 세우는 것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관찰하거나 증명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쉽지 않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수많은 이론들 앞에서 저자는 과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연법칙이 품고 있는 하나의 진리를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학자들은 '절대성'과 '상대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세계를 정확히 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오늘날까지도 그의 계산을 통해 금성의 다음 달 위치를 정확히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에는 놀라운 이론이었다. 반대로 뉴턴 이론은 세부적인 계산에서 오늘날 바라보았을 때 섬세하지 못한 면이 있다.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의 개념에 거대한 변동을 가져왔다 말하지만 이미 전부터 질량을 가진 물체가 우주 속에 미치는 영향력을 떠올린 지성들은 있었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더 제대로 된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패러다임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 왔다. 시공간은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의 평범한 사고로는 인류사가 끝날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이론에 대해서 열린 시각을 가지고 개념이 지니는 철학적 의미를 함께 고민하며 오랜 시간 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책은 크게 두 가지 파트로 구성된다. 공간에 대한 논의와 시간에 대한 생각이다. 저자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인용되는 루트 이론을 논문으로 냈다. 물리학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만큼의 공간인 루프가 연결되어 있다는 이론은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결코 증명할 수 없지만 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론이었다.

시간에 대해 저자는 인간이 그저 무언가의 주기로서 시간을 계량하고 측정하고 있을 뿐이라 말한다. 정교하다고 일컬어지는 시계들조차 세슘 원자의 진동 주기와 같은 주기성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할 뿐이다. 그렇다면 쌍둥이 이론에서처럼 시간은 상대적인 의미가 되는 것일까? 절대적인 시간 상수 t 없이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는 저자는 그의 절친한 동료의 '시간의 절대성' 이론을 함께 설명하며 스스로가 열린 마음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한다.

동시에 시공간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뿐만 아니라 과학자로서 지니고 있는 여러 철학적인 고민과 40년 넘도록 이론물리학을 공부했던 자신의 역사를 담담하게 잘 담아낸 책이기도 하다. 과학도를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생애를 통해 오로지 하나의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박사 학위 기간의 첫 3년을 논문 한 편 쓰지 않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신념을 지켰던 그의 열정을 본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공자도, 시공간에 대한 배경지식도 많지 않기에 저자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쉽게 풀어쓴 책이라 해도 물리학적 개념들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허나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인적으로는 절대적이었던 개념들에 대해 보다 열린 시선을 가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신경 쓰지 않는 일상에 불과한 그 무거운 단어들을 고민하는 순간 독자들은 인생의 꽤나 깊은 곳까지 고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저자가 강조했던 과학과 철학의 조우가 이뤄진 순간이 아닐까. 비록 물리학적으로 빛나는 증명의 순간을 경험하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을 지배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다면 인생은 보다 빛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으리라.

시공간의 물리학적, 철학적 개념에 대한 에세이,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쌤앤파커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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