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간 - 제2차 대분기 경제 패권의 대이동
김태유.김연배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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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 대륙에 자리 잡았던 국가들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청 왕조의 초반까지만 해도 그랬다. 당시 전 세계 GDP 80~90%가량을 차지하고 있던 청은 대한민국의 면적과 비슷한 작은 섬나라 영국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다. 수천만 국민은 아편 중독자가 되어 그 후 수십 년 동안 별 볼 일 없는 나라로 전전했던 쓰라린 기억을 지니고 있다.

같은 시기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바다 건너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이나 하던 나라에서 벗어났다. 혼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통해 자신들의 현실과 한계를 냉혹히 받아들인 덕분이었다. 당시 세계를 빠르게 바꾸고 있던 패러다임인 '산업혁명'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체화시켰고 200년도 전에 내렸던 결단은 21세기가 되어서도 일본을 강대국의 위치에 올려놓은 선택이 되었다.

조선은 과연 어땠을까. 산업혁명이라는 대분기를 스스로 창조한 외세에 의해 무참히 자신들의 얼과 영토를 짓밟힌 청은 양무운동을 통해 기술만이라도 따라 하려 시도했지만 조선은 흥선대원군, 최익현 등을 필두로 한 주자학과 유교의 광신도들이 나라를 철통같이 막아버렸다. 1000년 묵은 헛된 썩어빠진 학문을 달달 외우고 이념, 신념, 명분만을 목숨처럼 여긴 사대부들이 나라의 발전을 수백 년 늦춘 것이다. 덕분에 조선은 동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서양에서 출발한 산업혁명을 온전히 받아들여 성공적으로 체화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36년이나 받아야 했다. 역사의 대분기를 읽는 눈을 지니지 못했기에 벌어진 대참상이었다.

<한국의 시간>은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의 대분기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우리가 여전히 또 한 번의 대분기를 놓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우려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와 재생은 없다는 말이 수천 년간이나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전해지고 있지만 한국의 지도자들은 과거 따위는 돌아보지 않는 것일까.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을 놓쳐 버린 것이 200년이 지나도록 한국을 중진국에 머물게 하는 직간접적 요인이 되고 있음에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또다시 이대로 흘려보내려 한다. 1780년경 영국에서 시작된 그 첫 번째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4차 산업혁명은 '대비'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평생을 국가의 발전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자신의 학문을 정진해온 저자가 <한국의 시간> 속에 놓치지 말아야 할 마지막 기회인 4차 산업혁명의 모든 것을 담아 놓았다.

책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인류 최대의 대분기를 설명하기 위해 머나먼 과거로 떠난다. 1차부터 4차에 이르기까지 그 시기를 구분해놓은 산업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첫 시작인 18세기 후반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면직물 공장과 증기기관 등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산업혁명기 직후 동아시아의 3개국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가장 먼저 문호를 열고 산업혁명의 DNA를 받아들인 일본과 근본적인 시스템은 바꾸지 못한 중국,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 조선이다. 저자는 인류의 생산물이 막대하게 증가하게 된 산업혁명을 주요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비로소 다른 국가와의 차이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발생시킬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은 안타깝게도 옆 나라 일본과는 달리 그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조선에는 세계사적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인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갈고닦은 학문도 아닌, 주희가 1000년도 전에 뱉어놓은 말을 그저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불과했던 조선의 학문은 너무나 편협했다. 저자는 이 점에 상당 부분 집중한다. 오늘날 또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 세계적인 사건에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과거는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그 옛날 세계사를 제대로 읽지 못한 위정자들의 오판이 일제 강점기 40년, 길게 잡아 한 세기의 격차를 만들었다. 안타까운 과거가 지침하는 그 방향성을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톰 인더스트리, 즉 제조업으로 대표되는 1, 2차 산업혁명기는 가파르긴 해도 직선적인 성장 그래프를 그렸다. 산업혁명을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정도에 따라 성장 그래프의 차이가 벌어지긴 하지만 숨이 턱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 4차 산업혁명은 각 국가의 차이를 기하급수적으로 벌어놓을 것이다. 몇몇 학자들은 '비트 인더스트리' 즉, 지식기반산업혁명이라 불리는 4차 산업혁명이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다 큰 황소와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코끼리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며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키워야 한다고 비판한다. 로봇, AI가 만들 4차 산업혁명은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이미 모든 변화를 일구어낸 1, 2차 산업혁명과 그 혁명의 정도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은 방금 '스타트' 버튼을 누른 슈퍼카와 같다. 아직 액셀러레이터를 밟지도 않았지만 이미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류 또한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거대 기업들은 AI 기술을 통해 고객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고객 본인조차 모르고 있는 니즈를 찾아내고 있고 로봇은 해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저자는 이번 대분기만큼은 '한국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책에 담아내고 있다. 단기 문제 해결과 장기 성장을 동시에 살필 수 있는 정부의 혜안이 필요하고 4차 산업혁명기의 핵심이 될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일부 앞서 있는 국가들은 벤치마킹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DNA를 위해 모든 것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녹록지 않은 일이다. 허나 저자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 주장한다. 산업혁명의 이기를 먼저 누린 인류가 여전히 중세 봉건적인 농업 사회에 머물고 있는 국가들에게 어떠한 일을 저질렀는가. 인간의 마지막 희망인 인류애를 늘 강조해왔지만 덜 발전된 인류는 늘 짓밟히고 먹잇감이 되어왔다. 제조업 기반의 산업혁명보다 더 큰 격차를 발생시킬 지식기반 산업혁명 이후 '강자'가 된 자들이 '약자'에게 어떤 모멸감을 줄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번 제2차 대분기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영국에 1차 산업혁명이라는 선물을 준 것이 아니다. 사회적 분위기와 과학 기술, 정치 등이 모두 결합되어 폭발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다르지 않다. 다른 국가가 4차 산업혁명의 이기를 누릴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아서는 안 된다. 선두가 되어 치고 나가야 한다. 과거 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던 지난날은 모두 잊고 단 한 번, 이번만큼은 선조들의 과오에서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한국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놓칠 수 없는 제2차 대분기, 4차 산업혁명 이후 대한민국, <한국의 시간>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쌤앤파커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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