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푸코의 진자 - 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69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평점 :

미남왕 필리프와 예루살렘, 교황청의 공의회에서 시작된 수백 년의 비밀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성전 기사단이라는 유치한 이름을 굳게 믿게 만들었던 수많은 수식어들, 도대체 성전 기사단과 새로운 회동이 이루어질 진영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들었던 기묘한 사건들. 에코가 보여준 의미의 나열과 기호학의 복잡함은 분명 독자들에게 오기가 생기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갑작스러운 정신없는 묘사에 책장을 파라락 빠르게 넘기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또한 갑작스럽게 찾아온 성전 기사단에 대한 매혹적인 묘사에 다시금 눈을 홀리게 만드는 장치일 뿐이다. 매혹과 매료, 불안과 혼란으로 가득찬 글이다.
이름 모를 괴한들에게 끝끝내 붙잡힌 벨보와 그를 찾아 벨보가 남긴 아불라피아 즉, 문서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극을 시작했던 푸코의 진자는 싸늘한 주검이 된 벨보와 그의 죽음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카소봉으로 끝을 맺는다. 벨보가 끝내 살아돌아오지 못할 것을 독자들은 거의 처음에서부터 이미 알고 있지 않았던가. 미묘한 불안감, 살아남기에는 무언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게 된 듯한 벨보의 사유 세계.
정녕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맹렬히 좇는 자들의 믿음은 두렵다. 믿음으로서 믿음을 창조하는 광신도들에게 믿음의 대상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은 광신도들의 존재 가치를 소멸시키는 단 하나의 이유. 수 세기 동안이나 광신의 늪에 빠져 있던 '그들'은 인간이 지녀야할 중요한 가치관을 드러낸다. 믿음의 이유는, 행동의 이유는,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자기 비판. 어느 순간 기호학과 철학에서 일컫는 원인과 결과가 꼬리를 물어 하나가 되는 최악의 오류에 빠진 것은 아닌가 되돌아 보는 가장 중요한 '논증'.
그 스스로도 진실이자 진리라 믿는 것을 검증하기 위해 진리를 추적하는 매 순간을 상세히 기록한 벨보는 불현듯 마주한 진리의 그림자가 두려웠다. 그럼에도 카소봉과 디오탈레비 두 명의 타인과 달리 벨보만이 진리에 다가서려 애썼다. 비록 무언가 겸연쩍은 내음새를 가득 풍김에도 최후의 의심을 두지 않았던 수많은 광신도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스스로가 진자의 형태처럼 줄에 매달린 벨보는 카소봉에게 작은 영감을 전하며 산화한다.
진자가 매달린 그 중심축에 가상의 선을 그어 본다면 진자 또한 변화하는 존재일까. 아니라면 부동의 '진리'일까. 그 물음에서 출발한 에코의 내면적 사유의 기행은 진리라는 가장 심연한 존재에 대한 무지의 믿음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의심하고 경계하라. 심지어는 그것이 자신의 머릿속이더라도. 언제부턴가 '신앙'이자 '믿음'이 되어버린 진리의 그 너머는 되려 아무런 빛도 어둠도 없는 공허함일 수도 있는 법이다.
* 본 리뷰는 열린책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