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숲속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
김영희 지음 / 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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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나무 향에 취해 나물을 뜯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꽃잎들이 후드득 떨어지며 마구 꽃 매질을 해댔다. 머리고 어깨고 등이고 사정 없이 때리는 꽃 매에 하던 일을 멈추고 올려다 보았다. 작은 개울 건너 산벚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남산제비꽃에서도 향기가 나는데 표현하자면, 달콤하면서도 또 덜큰한 향기라고 할까. 가을날 서리가 내려 잎과 줄기는 다 시들어버리고 근근이 달린 큰 늙은 호박을 따다가, 부엌칼로 푹 쑤셔서 쪼개면 주위에 확 퍼지는 그 냄새, 꼭 그 냄새 같다. 사진을 즐겨 찍는 나로서는 꿇어앉아 사진을 찍은 뒤, 이왕 자세를 잡은 김에 카메라만 치우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코를 한번 들이 댄다. 또다른 신비한 세상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꽃 선물을 하고 싶다면, 그 꽃이 굳이 장미가 아니어도 좋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안다. 각시현호색 백만송이를 선물하기 위해선 이른봄 천마산으로 가면 되고, 천마산에서 때를 놓치면 광덕산으로 찾으면 된다. 나무바람꽃 백만 송이를 선물하기 위해서 보현산을 찾으면 되고, 얼레지를 선물하려면 태백산 유일사에서 문수봉까지 걷기만 하면 된다. 하얀 조팝나무는 한적한 시골 어디에서나 산과 맞닿은 곳이면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도로에 심어진 가로수는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조금만 관심 있게 공부하면 금세 구분할 수 있을 정도 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을 꽃이 피거나 단풍이 들었을 때 말고는 잘 쳐다보지 않고 살고 있다. 그냥 그 자리에 늘 있는 '그 어떤것'에 불과한 것이 가로수일지도 모른다.

"요즘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얼마나 개념 없이 농약을 들이붓는지 농약이 흘러 들어와서 우렁이가 다 죽었네." 함께 걷던 친구의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친구들과 나는 완전히 다른 유년시절을 보냈다. 정서가 아예 다른 것이다. 죽은 무언가를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보다, 사람들의 개념 없는 행동으로 그리 되었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 말하는 사람들과 생각하는 방향이 나는 좀 달랐다. 그저 혼자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아닐텐데. 엄마 우렁이가 시집가고 있는건데'
비록 책 한 권 제대로 없는 곳이지만, 시골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자라며 엄마에게 들어온 이야기 였다. 나에게 있어서는 엄마가 바로 동화책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아주 훌륭한 동화책

이리저리 만지다 냄새를 맡아보았다. 연필에서 나는 냄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아빠가 연필을 깎으실 때 사각사각 소리가 함께 나곤 했던 어린 나의 코끝을 스치던 그 냄새 그대로였다

이 시간을 끝내는 것이 아쉬워서 아주 천천히 빈 커피잔을 내려 놓았다. 오늘 하루는 이 사색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하루가 될 터였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맞바람을 맞을 갈매기가 날갯짓을 쉬어가듯 아무데서나 멈추어도 좋은 날이었다

📖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채롭다'
(다채롭다 - 여러 가지 색채나 형태, 종류 따위가 한데 어울리어 호화스럽다)
초록만 가득할꺼 같은 책이였는데 읽다보니 따뜻한 가족들, 나무가 되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같이 다니는 느낌이 들었던 태백 여행 까지~
여러가지 색채가 느껴져서 아주 매력적이었다

작가님의 이력(?)을 보기 전까지는 산을 정말 좋아하는 시골분인 줄 알았다. 근데 나무나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깊이 있어 책을 쓰기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하신 분이구나 했는덕 이력을 보고나니 '쇠뿔현호색'이라는 신종을 학계에 발표하신 식물생명유전공학 학위를 가지신 분이였다 ㅎㅎ

글 중간중간 나무나 식물 위에 예쁜 풀 그림이 있어서 그냥 포인트를 주신건줄 알았는데 맨 뒷장에 친절하게 사진을 담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책 읽다가 핸드폰으로 검색하다보면 읽는 흐름이 깨질때가 있는데 그런 수고로움을 확실히 덜어주셨다.

뒷장에 엽서는 초록빛 탐사단 서평단 선물로 받은 엽서다. 소제목 중에 '호수에도 단풍이 든다' 부분에 그림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 했는데 그 부분이 엽서로 있어서 너무 좋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직접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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