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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 역사에서의 반복과 차이 ㅣ 소운 이정우 철학 대계 3
이정우 지음 / 그린비 / 2025년 6월
평점 :
진보와 퇴보, 그 역설의 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리는 흔히 '진보'를 꿈꿉니다. 더 나은 내일, 더 발전된 사회, 더 고양된 나 자신. 하지만 우리의 삶과 우주의 섭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던 진보와 퇴보가 사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심지어 서로를 품고 있는 역설적인 관계임을 깨닫게 됩니다.
철학적 사유의 그림자
우리는 기술의 눈부신 진보를 찬양하지만, 그 진보가 드리우는 그림자는 때론 섬뜩한 퇴보의 모습을 띱니다. 핵무기의 위협, 환경 오염의 심화, 인간 소외를 낳는 과도한 효율성 추구, 그리고 익명성 뒤에 숨은 극단적 개인주의는 분명 우리가 얻어낸 '진보'의 이면에 도사린 '퇴보'의 잔상입니다. 계몽의 이성이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라 믿었으나, 도리어 도구적 이성의 덫에 갇히는 역설은 비단 철학자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퇴보의 위기 의식이야말로 새로운 성찰과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씨앗이 됩니다. 전쟁과 재난 같은 사회적 퇴보 속에서 인류는 연대와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찾고, 환경 파괴라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혁신을 꿈꾸죠. 진보는 퇴보의 경고를 통해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듯합니다.
운명의 굴곡 속 속삭임
삶의 굴곡을 읽는 명리학에서도 진보와 퇴보의 오묘한 춤은 계속됩니다. 흔히 '흉운'이라 불리는 퇴보의 시기는 고통스럽지만, 이는 종종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성장의 기회'로 작용합니다. 넘어져 봐야 비로소 일어서는 법을 배우듯, 바닥에 닿아야만 더 높이 뛰어오를 준비를 할 수 있죠. 반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길운', 즉 진보의 시기는 경계해야 할 역설을 품고 있습니다. 과도한 자신감과 방심은 뜻밖의 실수나 교만을 낳아, 일시적인 성공이 장기적인 침체로 이어지는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이 실패의 어머니다'라는 통찰처럼, 길운의 달콤함 속에 숨겨진 퇴보의 그림자는 겸손과 현명한 태도를 요구합니다.
우주적 질서의 숨겨진 규칙
거시적인 우주의 차원으로 나아가면, 물리학의 엔트로피 증가 법칙이 '퇴보'의 보편성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모든 고립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질서도가 증가하며 궁극적으로는 균일한 상태, 즉 '열죽음'을 향해 갑니다. 뜨거운 커피가 식고, 건물이 낡아 무너지는 모든 현상은 우주적 퇴보의 일부인 셈이죠. 하지만 이 거대한 퇴보의 흐름 속에서도 놀라운 '진보'의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무작위적인 우주 공간에서 별과 은하가 형성되고, 지구에서는 생명체가 탄생하여 복잡한 질서와 의식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무질서의 대가로 얻어지는 질서'입니다. 별의 붕괴인 초신성 폭발은 엄청난 파괴를 의미하지만, 그 파괴의 잔해는 새로운 별과 행성의 탄생을 위한 씨앗이 됩니다. 하나의 퇴보가 또 다른 진보의 재료가 되는, 장엄하고 불가피한 순환이죠.
삶의 지혜로 삼다
이처럼 진보와 퇴보는 단순한 대립항이 아니라, 서로를 규정하고 보완하며 때로는 서로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복잡한 역설적 관계를 이룹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우리 삶의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우리는 영원한 진보만을 추구하며 퇴보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퇴보가 가져다주는 성찰과 새로운 가능성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언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판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 역시 무수한 진보와 퇴보의 순간들이 얽혀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직물과 같습니다. 이 역설적인 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단선적인 성공만을 좇기보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더욱 깊이 있는 존재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