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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Winner of the MAN BOOKER PRIZE 2011
2011년 영연방 최고 문학상 맨부커 수상작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의 최신작
기억은 우리를 배반하고, 착각은 생을 행복으로 이끈다…
짧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는 한 소설가가 평생 좇아온 주제가 담겼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서 소설이 잘 읽히는 까닭은 최종적인 종말의 의미가 소설을 다 읽어야만 밝혀지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종말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모든 인생은 교훈적이다. 종말의 관점에서 다시 인생을 되짚어보면, 모든 건 원인과 결과로 강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 테니까. 마치 마지막 장면을 엄두에 두고 정교하게 씌어준 소설을 읽을 때처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그런 소설이다. 죽을 때에야 그 의미를 완전히 드러내는 우리 인생을 닮았다. 원서 150페이지짜리인 이 소설을 두고 줄리언 반스는 "나는 이 작품이 3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건 꼭 인생에 대한 비유처럼 들린다. 마지막 순간, 이 인생의 의미가 드러날 때 우리는 한 번 더 이 인생을 살아갈 테니까.
-김연수(소설가)
장인적인 솜씨로 직조된 예기치 못한 결말.
세련된 문체와 풍자정신이 빛난다.
강한 인간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잔혹한 이야기.
-타임스
줄리언 반스 최고의 작품.
너무나 인간적이고 너무나 리얼한 놀라운 이야기.
-아이리시 타임스
불편하리만큼 매력적인 책.
확언컨대 이 소설로 반스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텔레그래프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본문 中)
(1)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완전무결한 부모와 오누이와 이웃과 동료로 이루어진 세상을 사는 것도 아닌데, 상처를 피할 도리가 있을까. 그렇다면 문제는, 수많은 것들이 걸린 그런 문제로 인한 손실에 어떻게 대처할까이다. 상처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억누를 것인가. 또 그 상처는 우리의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상처를 받아들여 중압감을 덜어보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상처받은 이들을 돕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다.
(2)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얼마간은 성취를, 얼마간은 실망을 맛보는 것. 나는 이제껏 재미있게 살아온 편이다. 다른 사람들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볼멘소리를 하거나 깜짝 놀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면에서 에이드리언은 자신이 뭘 하는지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도 알다시피 내 인생에서 뭔가 아쉬운 게 있다는 뜻도 아니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3)
위스키가 생각을 맑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또 고통을 줄이는 데도. 위스키의 다른 미덕은 취할 수 있거나, 좋이 마시면 만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편지를 몇 번에 걸쳐 읽고 또 읽었다. 내가 그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나 그렇게 험담을 퍼부었다는 것을 부인하기가 어려웠다. 행여 하소연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편지를 쓴 당시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르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나의 어떤 성정이 나를 부추겨 그런 편지를 쓰게 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고도의 자기기만인지도 모른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거리)
1960년대 영국 케임브리지. 장래가 촉망되던 장학생 에이드리언 핀이 욕실에서 동맥을 긋고 자살한다. 철학적이고 총명한 수재였던 그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다. 심지어 친구의 여자친구 베로니카에게서도. 아무도 그 자살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의 친구였던 앤서니 웹스터는 자신이 무심코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이제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한 통의 편지가 엄청난 파국을 불러왔음을 알게 된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리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인 학창시절, 소설에서는 에이드리언 핀이 얼마나 유능한 아이인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앤서니 웹스터를 포함한 세 명의 아이들과 에이드리언 핀이 나누는 유머러스한 철학적 대화는 대학생인 저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문득 제가 고등학생 때에는 이런 대화를 해보았나 회상해보자, 철학이라 쓰고 개소리라 칭하는 대화는 술 마셨을 때 외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최근 들어 철학관련 서적도 한 번 읽어볼까 고민했는데, 당분간은 미뤄두라는 신의계시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애들은 애들인지라 어른들의 세상에 불만을 품어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이렇다 할 도전은 하지 못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습니다.
확실히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였음에도 호흡이 매우 짧은 소설이었습니다. 독자의 시점이기도 한 앤서니 웹스터가 예사롭지 않은 블랙유머의 소유자여서 그런지 읽는 내내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말투 자체는 진지하지만 자세히 보면 헛소리도 제법(아니 매우) 많이 섞여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앞으로 책을 읽으셔야 할 독자라면 이 책의 시점이 1인칭 주관적 시점인지라 이야기의 진행이 오직 웹스터 개인의 근거하여 진행이 되고 있다는 걸 항상 유념해두시기 바랍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웹스터의 말을 믿게 되지만, "기억은 우리를 배반하고, 착각은 생을 행복하게 이끈다…" 라는 한 마디를 기억하시며 이 책을 읽으신다면 두 배의 재미를 즐기실 수 있으실 거라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소설들이 그래왔고, 이 소설 역시 1인칭 시점이기에 기억의 왜곡으로 인한 반전…(스포가 될 수 있으니 이만 줄이도록 해야겠습니다).
인간, 사랑, 시간, 기억,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인상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인류와 세계의 본질에 대해 논하는 철학을 제가 알 턱은 없으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분명 소설이라는 장르를 가지고 있으나 동시에 중간을 메우고 있는 이야기는 '인간, 사랑, 시간, 기억, 죽음은 결국 무엇인가?' 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역자가 소설을 번역할 때 의역보다는 직역을 택해서인지 책 본문 곳곳에 각주가 상당히 많이 달려 있었습니다. 물론 영미소설이기에 그 나라의 음식이나 문화를 이해시키기 위한 각주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외에 나머지 부분은 차라리 의역으로 해주는 게 독자로서 더 편하지 않았을까 생각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봤을 때, 이 소설을 있는 원문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해줌으로써 원작을 최대한으로 살려내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고,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은 부분은 각주로 설명을 덧붙여지는 게 손이 더 많이 간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특별히 불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싶네요.
덧붙여서, 이 책을 읽게 되신다면 1부만큼은(물론 2부도지만) 지루하시더라도 차근차근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이후 엄청나게 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그저 평범하게 느껴진 1부 장면들이 퍼즐처럼 끼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이 책이 첫 장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도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실 경우에는 이 책의 재미가 반으로 줄어드실 수도 있고, 더하여 그 전(1부)에 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나질 않아 답답함만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책 표지와 제 리뷰 모두 이 책은 반전이 있는 책이라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흥미롭고 또 대단하기도 한 반전이지만, 단지 그것만을 위해 읽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문학' 작품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반전을 담고 있는 소설인 동시에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권하는 한 편의 문학이었으며, 앤서니 웹스터라는 한 친구의 신세한탄이 나오는 책입니다. 어차피 책을 핀 이상 의무적으로 주인공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이왕 들어야할 거 이 친구의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몸을 맡기고 흐름을 타보시는 건 어떨까요.
+사실 전 책을 읽으며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소감 등을 짧게 기록해둔 뒤에 리뷰를 작성할 때 참고하곤 합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짧은 글귀를 작성하였고, 책이 끝나기까지 약 10 페이지정도 남았을 때 마무리 멘트를 작성했습니다(위 단락). 하지만 이 책은 마지막 10페이지를 읽을 때 비로소 모든 퍼즐이 하나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분명 마지막으로 향하며 키워드는 모두 등장합니다. 다만 이들의 연결고리는 마지막 열 페이지에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키워드라는 퍼즐과 그 연결고리가 만났을 때에 느꼈던 카타르시스는 감히 여러분들도 함께 느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런 얘길 할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오래도록 그랬다. 마거릿 말대로 나는 혼자였고, 혼자여야만 했다. 회한을 유일한 벗 삼아, 곱씹어야 할 과거사가 한도 끝도 없기 때문만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베로니카의 인생과 성격에 대해 다시 생각한 후, 나는 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에이드리언을 생각해야 했다. 내 철학자 친구, 인생을 직시하고, 또 책임감 있고 사유하는 개인이라면 누구나 바란 적조차 없던 이 선물을 거부할 권리를 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친구. 그리고 그의 숭고한 제스처는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타협과 부박함으로 점철된 대부분의 인생을 재삼 떠올리게 했다. '대부분의 인생', 즉 나의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