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가드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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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2년 <검은 개들의 왕>으로 등단한

마윤제의 단편소설집으로

표지에 오동통한 여자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눈에 눈물이 맺혀있지만,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고 있는 모습이 인상깊다. 

<강>

"강 중간쯤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형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뭔가 내 발목을 감았다. 몸이 물속으로 쑥 끌려 들어갔다. 난 사력을 다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몸이 계속 아래로 끌려 내려 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강물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렸다. 소용돌이치는 물속에서 무언가 다가왔다. 검은 물고기의 아가미에서 시커먼 오물이 울컥울컥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물고기 뒤에서 형이 웃고 있었다."

<도서관의 유령들>

"세상에는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들은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가혹했다.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은 물론이고 많은 걸 희생해야만 했다. 기존 질서와 카테고리에 들어가기 위한 선결 조건은 복종이었다. 복정을 위해선 모든 걸 버려야 했다. 개성과 가치를 버리고 복종을 맹세한 뒤에야 비로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복종을 거부한 사람은 철저하게 배척당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유령이 되었다."

<라이프가드>

"엄마는 세상에 완벽한 진실은 없다고 말했다. 또 절대적인 거짓도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오늘의 거짓은 내일의 진실이 되고 내일의 진실은 또 다른 날의 거짓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유지는 저 찬란한 빛 속에 시기와 질투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둠이 바다에 은하수처럼 점점이 흩뿌려진 빛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면 한 마리 새처럼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어느 봄날에>

"암컷을 둘러싼 멧돼지들이 수컷 한마리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 같았다. 무리에서 밀려난 수컷이 씩씩거리며 머리를 들이밀자 수컷들이 재빨리 막아섰다. 수컷은 무리 주변을 맴돌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지만, 끝내 봉쇄를 뚫지 못했다. 화가 난 수컷이 방목장 입구에 서 있는 떡갈나무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헐벗은 나무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수컷들의 구애에 정신이 팔린 암컷은 눈길을 한번 주지 않았다. "

<버진 블루 라군>

"북쪽 해안에 도착한 여자는 바위에 걸터앉아 캔을 열었다. 탄산의 짜릿한 청량감이 식도를 훑고 내려갔다. 순간 제주 해안 절벽의 바에서 마신 칵테일이 떠올랐다. 카리브해를 연상시키는 '버진 블루 라군'이었다. 푸른빛 칵테일을 생각하자 복잡하게 뒤엉킨 것들이 간명해졌다. 세계는 단순했다. 원인과 결과라는 두 개의 명제가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여자에게는 원인은 사라지고 결과만 있었다. 여자는 불룩 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원인을 깊이 생각했다."

<옥수수밭의 구덩이>

"그는 벌렁 드러누웠다. 그 느낌은 거짓이었다. 진실이라고 믿은 건 거짓이었다. 처음부터 구덩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코 큰 사내를 만나고 온 사이에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지금껏 모든 일이 전부 그런식이었다. 실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난 달이 눈앞에 있었다. 구덩이는 편안했다. 어머니 배 속처럼 안락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옥수수가 파도 소리처럼 쏴아 쏴아 흔들렸다. 어디선가 쿵 소리가 났다. 누군가 구덩이를 파는 소리였다. 헛된 기대와 희망을 품은 소리가 광활한 옥수수 밭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조니워커 블루>

"낮과 밤의 세계는 달랐다. 한낮의 규칙과 질서에 순응하던 사람들은 어둠이 내리면 돌변했다. 성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밤거리를 휘젓던 그들은 날이 밝아올 무렵에야 정신을 찾았다. 그리고 지난밤의 말과 행동을 부끄러워하며 길들인 고양이로 돌아갔다. 현기는 가식과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진 사람들의 사이를 거닐자 마음이 편해졌다. 한낮동안 느리게 흐르던 피의 흐름이 빨라졌다.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망 좋은 방>

"작업복 두명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는 술잔을 들고 노래를 합창하는 작업복들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고 혀가 꿈틀거렸다. 그는 냉면 그릇으로 손을 뻗어 소금을 한 주먹 쥐고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듯 석쇠의 고깃덩어리에 소금을 쳤다. 작업복들의 노랙소리 사이로 반주를 맞추듯 소금이 타닥타닥 튀어 올랐다."

저자 마윤제의 <라이프라드>는 단편소설을 엮은 소설집이다.

단편은 짧은 이야기로 찰나의 순간을 다룬다.

단순한 이야기도 있고 어떤 소설은 은유를 앞세워서

복잡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단편소설은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단편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 책의 표지에 나와있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지만

어딘가 슬퍼보이는 눈빛처럼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슬프고 어긋난 부분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

소설 <라이프가드>속 주인공 들은 다들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자리를 찾아 해맨다.

이 속에 속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이들을 질투하고 시기한다.

인간의 깊은 곳에 숨어져 있는 어두움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

저자 마윤제의 작품은 섬세한 표현과 독창적인

유가 많아서 책을 읽다보면

마치 그 장면이 떠오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검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많은데 멀리서 바라보면 고요한 바다가 안에 들어가보면 세찬 파도가 있듯이

인간의 삶도 멀리서 보면 모두 행복해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각자의 힘듦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다.

마윤제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데, 이 작가의 장편소설

<8월의 태양>, <바람을 만드는 사람>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사색이 필요할 때 다시 펼쳐보면 좋을 책이다.

<해당 글은 컬처블룸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를 작성하였습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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