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정신병원에서 청소와 서류 정리를 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내게 마련해 주셨을 때다. 어느 날 수척한 모습의 같은 반 여학생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 애는 환자였고, 내가 그 애를 본 것만으로 소동이 벌어졌다. 교장선생님, 그 애의 부모님, 우리 부모님과 할아버지, 그 애의 담당 의사, 내 아르바이트 선임 등 많은 사람한테 그 애가 입원했다는 걸 비밀로 하라는 경고를 하도 들어서 마치 내가 범죄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애가 자기 상태와 주변에서 일어난 소동을 동시에 상대하며 얼마나 불편했을지, 나로서는 그저 상상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나는 그때 우리 사회가 정신병을 얼마나 무섭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첫째, 질병 자체와 둘째, 사회의 부정적 판단이 결합된 이중 질병이었다.
-알라딘 eBook <정상은 없다> (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 정해영 옮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