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중요한 것은 각기 다르고 때로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복수의 질병들, 하나의 신체에 공존하지만 결코 단일한 진단적 프레임에 포섭되지 않는 그것들의 경합 속에서 분산되는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초점을 유지하는 힘일 것이다.

그 힘은 미궁 속에서도, 파편화된 단서들 사이를 집중력 있게 횡단하며 유의미한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 반대로 그 힘은 환자의 신체에 마구잡이로 연결되어 적확한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복수의 증상과 질병들을 솜씨 있게 단절시켜 매듭짓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의학 안에서 이러한 힘, 이러한 의지, 이러한 장치들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네마리 몰은 그것이(의학적) 합리성만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몰은 복수의 신체를 하나로 대상화하여 단정하는 합리적 결론의 방식에 반대하면서 ‘살아 있는’ 모호하고 다중적인 신체를 끝까지 응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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