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거짓, 그 경계 어디쯤의 기억
"엄마가 이거 망가뜨렸잖아!!! 당장 고쳐 놓으라고! 똑바로 해 놓으라고!!"
어느날 갑자기 소리 지리는 막둥이 때문에 혼이 나갔다.
이 녀석이 지금 7살이 하는 행동이 맞는건가?
만약 막둥이가 아닌 7살의 일딸이었다면 나는 부들 부들 떨며 함께 화를 냈겠지만...
7살 삼딸의 분노는 내게 흐믓하고 웃음나오는 그런 경험이다.
'아... 이 녀석이 이제 자신의 일로 분노를 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화를 내며 정확하게 얘기를 하기도 할 만큼 컸구나...' 하는 속 마음.
그래서 삼딸이 계속 화를 내는 와중에도 어쩜 저렇게 조리 있게 따지는지에 감탄하며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해서
고개를 숙이고 "으흐으흐으흐"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음을 삼켰다.
너무 웃음이 나와서 눈물도 찔꼼나왔다. 그렇게 나는 손끝으로 눈물도 찍어냈다.
화내는 아이에게 내 웃는 모습은 더욱 분노를 일으킬테니...
그리고 억지로 웃음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면 엄만 너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 들어.
차분이 얘기를 해 준다면 엄마도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지금은 너무 소리만 질러서 시끄럽다는 생각만 들어."
며칠 후 나의 엄마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딸이 할머니에게 엄마가 삼딸이 너무 소리 질러대서 슬픈나머지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아닌데? 나 웃었어. 웃음 참느라 우는 것 처럼 소리가 들렸나봐"
하며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엄마와 얘기를 나눴다.
이딸에게 나는 울고 있었고, 하지만 당시 나는 웃고 있었으며
삼딸에게 나는 차분히 혼을 내는 중이었지만 속으로 나는 기특해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떠올리게 했던, 그런 기억에 관련된 미스터리 추리소설.
기억의 저편

기억의 저편
스트레이트 : 팩트만으로 내용을 구성한 기사
방송기자 김환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책은 끝없이 사건을 이야기 한다.
결정적인 단서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김환이 사건을 취재해 나가는 동안의 이야기가
나열되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경찰도 기자도 신뢰할 수 없다.
10년 전 실종된 한 마을의 쌍둥이 자매 인영과 소영 그리고 동구.
10년이 지나 발견된 세 아이들의 유골.
실종 당시 아이들을 발견하지도 못했고, 범인은 더더욱 못 잡았던 경찰 그리고 사건 취재 기자.
그들은 10년이 지나서도 무엇하나 더 밝혀내지 못했고,
경찰은 사건이 커지기를 바라지 않으며 억지 주장에 힘을 싣는다.
아이들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쪽으로 수사 결과를 맞춰 발표하려 하고,
사건 당시 부터 계속 자료를 모아온 방송기자 김환은 계속되는 의문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경찰이 발표 하는 팩트는 그래서 진실인가?
기자가 방송하는 팩트는 그러니 진실이 될 수 있는가?

기억의 저편
어른들의 무지한 겁박용 멘트는, 때로는 진실처럼 퍼진다.
책 속에 나오는 한센병 마을, 그리고 제보를 받은 의정부 시청 공무원.
(물론 허구속에서 등장하는 마을이지만, 나 역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나이 든 사람들은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지.
문둥이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잡아다가 간을 빼 먹고 산속에 묻어버린다고.
기억의 저편
나... 나이 든 사람이었나보다.
나 어릴때 우리들 사이에는 그런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시내를 나갈 때 어떤 동네를 지나갈때면 창 밖으로 쳐다 보는 것도 무서워 했던 기억.
그 당시는 아니었지만 이전 이전 이전 세대 어디쯤엔 환자 촌이 있었다는 얘기만 전해들었었다.
도대체 왜 그런 멘트를 만들어낸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무책임한 그런 말들은 어쩐지 진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무거운 힘을 갖고 멀리 그리고 무겁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말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도 지지 않았다.
그저 상처받는 이들만 있었겠지...

기억의 저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는 그게 맞는거라며 사건을 취재했던 김환 기자는,
10년 후 유골이 발견되고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상황에서
사건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국과수 감식 결과가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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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억의 저편
그런데, 지금 장면 누가 보면 선배가 경찰 간부고 제가 지시받는 형사 같다고 하겠네요.
기억의 저편
한심한 그리고 무책임한 경찰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던 책 속 경찰의 이미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명령이 내려지기만 기다리고,
그저 누군가의 탓과 핑계를 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걸어 두는 경찰과,
가짜 뉴스를 시리즈로 방송하지 않았니?
야, 이 섀이야! 기자랍시고 그 와중에도 경찰한테 맨날 술이나 얻어 처먹고 사건 브리핑할 때마다 높으신 시경 차장한테도 촌지 받고, 경찰이 낸 자료만 앵무새처럼 읊어대고... .
기억의 저편
주변 지인들에게서 듣는 어떤 삼류 기자의 나쁜 소문들을 책에서도 만난다.
물론 책은 허구다. 하지만 어쩐지 참 낯익고 익숙하다.
전직 기자 였던 작가의 소설이라 기자의 사건 취재가 더욱더 실감나게 읽혔던 소설.
김환 기자의 취재 수첩 속에서 나는 바빴다.
때로는 내가 김환이 되어 이런 저런 추리도 했고, 때로는 김환의 반대편에 서서 김환을 욕하기도 했으며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땐, 무책임한 거짓말과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끔찍한 일들에 소름돋았다.
팩트이지만 진실일 수 없고,
판단은 하지만 그것 역시 진실일 수 없는 이야기.
그게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이 서글펐고,
조금 더 진실된 삶을 살아가는 노력이라는 걸 해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