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소설책을 참 좋아하는 나는,

소설이 갖고 있는 그 무한의 상상영역이 좋다.

 

지나치게 나의 삶과 닮아 있는 소설도 있고,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

저 세상 다른 별 이야기도 있고,

그렇게 나는 여기 있지만

소설 속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보기도 하고,

다른 무엇인가 되어 보기도 하면서

다양함에 빠질 수 있는 소설을 꽤 좋아한다.

 

하지만, 일본 소설은 마음에서 좀 꺼려지는 부분때문에

잘 안 읽었더랬는데...

작가의 이력이 내 이목을 붙잡아서 읽게 된 책.

 

주부, 승려, 회사 경영자.

그리고 56세의 늦은 나이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 누마타 마호카루.


 

유리고코로

 


 

료스케 : 사랑했던 연인 지에를 가족에게 인사시키고, 결혼을 꿈꾸고 있을 때 갑자기 사라져버린 그녀로 인해 절망에 빠져 버린다. 그런 와중, 갑작스레 집에 연이어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고, 그는 의문의 노트를 발견한다.

 

아버지 : 자식이 주는 술은 금방 취한다면서 자식의 연인 앞에서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던 아버지. 하지만 갑작스럽게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어딘가모르게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어머니 : 아버지가 드시는 게를 하나 하나 발라서 줄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아버지와 어머니. 하지만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돌아가시기 직전 보여줬던 어머니의 불안정한 모습들.

 

요헤이 : 료의 동생. 재수 1년, 유급 1년으로 졸업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공학도로 이과적인뇌를 소유했다.

 

모든것이 갑작스럽게 생겨난 일들이었다.


의사는,

여러 종류의 유리고코로라는 게 있는데,

그중 어느 것이 제게는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모두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내게만 없을까,

어린 저는 무척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슨 일을 해서든

나는 유리고코로를 갖고 싶다고

어렴풋하게나마 늘 생각했습니다.

유리고코로

*유리도코로 : 안식처. 감각적인 안식처, 인식의 안식처, 마음의 안식처 등

 

 



 

 

연이어 발생하는 어두운 일들 속에

아픈 아버지를 뵈러갔으나, 아버지는 없이

텅 비어진 것 같은 느낌만 드는 집.

아버지 서재에 반쯤 열러진 옷장.

 

옷장 속

1,2,3,4가 쓰인 네 권의 노트와 낡은 핸드백. 그리고

5,6센티미터쯤 잘린 한 묶음의 검은 머리.

 

1,2,3,4,5,6... 무언가 연속된 사건의 실마리처럼 이어지는 숫자들.

네 권의 노트와 검은 머리카락은 대체 무엇일까?

 

어린시절, 폐렴으로 장기 입원 치료를 하고 오랜만에 온 집.

그리고 묘하게 낯설어진 느낌의 엄마.

엄마가 엄마 같지 않다는 생각에 한동안 엄마를 엄마로 부르지 못했던 료스케.

 

낯선 노트와 핸드백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갑자기 떠올라버린 어린 시절 낯선 엄마의 기억.

 

그녀가 내 엄마가 아니었을까? 엄마가 바뀐걸까?

이 검은 머리카락은 과연 누구의 것인걸까?

 

당신은 저를 살려둬선 안 돼요.

당신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만이 제 구원입니다.

당신은 제 당신이니까... ...

제발 그것을, 언제까지나 잊지 말아주세요.

유리고코로

 



 

 

소설은 일기장 고백처럼 써진 살인 노트 4권을 차례로 읽는

료스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풀어진다.

 

자신의 사라진 연인도 찾아야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숨긴 어떤 진실같은 것도 찾아야하고,

노트를 읽어 갈 수록 진실에 다가간다는 느낌이 들 수록

움츠러드는건

행복했던 지난날들이 사실은 끔찍한 일을 덮고 지내왔다는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했기때문일까?

 

읽을 수록 겁이 생기는 료스케의 감정이 내게도 와 닿았다.

 

소설 속 무언가가 되어 빠져 읽던 나는

이 책에선 그 누구에게도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무서웠다.

 

어릴때 의사가 한 "유리도코로" 라는 안식처라는 말을

"유리고코로"로 잘못 알아 들은 아이의 기억처럼, 아이는 잘못된 안식처를 만든다.

 

그것이 한때는 유리고코로였고, 유리코였고, 미치루 였으며

미쓰코였다가, 라면도 되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난 미사코.

 

료스케의 아버지 였던 당신, 료스케의 어머니였던 미사코.

그들이 숨겨왔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안식처는 무엇일까?

비뚤어지다 못해 텅빈 감정을 갖고 있던 누군가의 잘못된 안식처

하지만 결국엔 가족이라는 안식처를 만난 살인 고백 노트.

 

당신의 안식처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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