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 - 희망과 치유의 티베트.인도 순례기
정희재 지음 / 샘터사 / 2006년 1월
절판


처음의 두려움과 달리 그 여행은 축복이었다. 인도로 망명 온 티베트 사람들을 알고,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예정에 없었던 '눈뜸'의 시간이었다. 자비에 대해, 세상 모든 이가 내 어머니라는 가르침에 대해, 그들은 한번도 입을 열어 가르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삶으로 그 믿음을 보여 주었다. 나는 전율했고, 싼 숙소나 맛집 정보 따위를 적던 노트에 티베트 친구들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8쪽

티베트인들은 바보였다. 눈앞의 이익과 행복을 향해 질주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조국을 짓밟은 중국인들의 업까지 걱정하는 진짜 바보들이었다.-18-19쪽

내 모든 여행의 마지막은 밑창이 닳아 버린 신발을 공항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19쪽

"희망이 뭐지?"
까르마는 빨래터의 여인들이 물장난 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답했다.
"가족을 내 손으로 돌보고..."
나는 마치 받아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까르마의 말을 되풀이했다.
"가족을 내 손으로 돌보고."
까르마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 나는 끈기있게 기다렸다. 까마귀가 나무 위에 앉아 찢어지는 소리로 운다. 맞다. 예전에는 여기가 화장터였다지. 까마귀가 희뿌연 하늘로 날개를 펴고 날아가자 드디어 까르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티베트가 독립하는 것."
나는 마음이 얼얼해져서 이번에는 앵무새처럼 따라하지 못한다.
멋진 여자를 만나 연애하고, 가슴 설레는 일을 찾아 몰두하거나 세계여행을 떠나는게 아니라 가족을 내 손으로 돌보고, 티베트가 독립하는 것.-30쪽

인생 최고의 행복은 자유로운 내 나라로 돌아가는 것.-51쪽

늘어지게 자고 나서 식당을 찾아 숙소를 나설 때, 인생은 경쾌하게 발끝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여행을 사랑하는 순간이 있다면 이렇듯 단순하게 일상의 시간표를 지킬 때이다.-60쪽

어떤 기대나 망설임 없이 다가오는 경험을 즐기세요. 이 육체가 곧 나라는 그릇된 관념을 버리고 모든 생명들과 이어져 있는 내 안으로 여행을 떠나세요. 때로는 고통도 있겠지요. 하지만 고통은 이 여행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될 것입니다.-89-90쪽

그녀 이후 만나거나 헤어질 때 힘껏 껴안아 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 나는 그녀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그녀의 별로 돌아갔다고 믿고 싶다. 시체 타는 냄새가 가득 배어 있는 호텔 식당에서 밥을 먹노라면 난느 산다는 일의 끈질긴 연속성이 그녀에게 적용되지 않았음에 멍해지곤 했다. 그 지독한 냄새 속에서도 살겠다고 밥을 먹는 내가 우스워서 흐물흐물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동갑의 나이에 만났으나 그녀는 어느 순간 나이 먹기를 멈췄고, 나는 그녀가 살지 않은 나이를 살아가고 있다.-93쪽

한국에서 미친 듯이 시간을 쪼개며,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거침없는 보폭으로 삶을 건너오다 인도에 오면 모든 게 달라지곤 했다. 갑자기 햇살이 내 정수리에 쏟아진다. 평생 마셨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먼지가 폐에 달라붙는가 하면, 목젖이 크게 보이도록 웃는 날이 많아지는 것이다. 삶의 어떤 공간에는 시간의 질마저 바꿔 버리는 신비한 힘이 있다.-121쪽

많은 이들이 익숙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삶의 권태와 불안, 공포, 환멸을 보지 않으려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우리가 삶의 사전에서 빼버리고 싶은 불길한 단어들이 살고 있지 않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이렇게 쫓길 바에는 차라리 모파상처럼 우리가 삶의 권태와 공포 속으로 들어가 한 몸으로 살아 버리는 편이 낫다.-137쪽

여행은 결국 사람과의 만남이다.-138쪽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입보리행론>>-153쪽

여행은 순간순간 선택해야 하는 일들투성이다. 그래서 여행이야말로 삶을 가장 밀도 있게 체험할 수 있는 압축된 모형인지도 모른다.-155-156쪽

이제껏 나는 타인의 도움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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