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인도만큼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지키고 있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치열한 삶이 있고, 첨단을 달리는 산업이 있으며, 세상을 구원하려는 온갖 종교와 철학이 있으나 동시에 무위無爲가 칭송받고, 느린 자가 빠른 자를 비웃으며, 주는 자보다 구걸하는 자가 더 당당하여 체념과 게으름, 방관조차 용서받을 수 있는 곳. 이 세상에 그런 세상이 인도말고 또 어디 있을까? 그 곳은 세상 밖의 다른 세상이다.-6쪽
내가 살던 세상... 재미와 속도와 효율이 중독된 곳. 더 재미있게!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그런 구호 속에서 재미없고, 느린 자는 도태된다. . . . 그런데, 그 세상을 싫어했던 사람도 정작 그 곳을 벗어나면 불안해한다. 마약에 중독된 자가 마약을 끊었을 때 나타나는 금단 현상과 비슷하다. 먹고 살 만한 돈이 있어도 그렇다. 결국 자꾸 새로운 일거리, 놀 거리를 만들거나, 그토록 싫어했던 세상의 속도전에 합류해야만 비로소 안심하게 된다.-16-17쪽
덧없는 세상에 그대의 집을 짓지 말라. 마음속에 이것만이 내 세상인, 그 세상을 만들라.-28쪽
다름살라에서 인도 여행 중 샀던 책과 테이프를 소포로 한국에 보냈었다. 몇 달 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으나 소포는 와 있지 않았다. 어딘가 오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10년이 흘렀다. 언젠가 과거의 그 선물을 받게 되는 날이 올까? 이 생에 안 되면 다음 생에서라도...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생은 한없이 길다.-39쪽
내가 첫 해외 여행지로 대만을 갔을 때, 나는 가이드북도 없었고, 해외 여행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었다. 백지 상태였다. 다만 본능적인 힘에 의지해 길을 갔었다. 아, 그런데 그때마다 도와주는 사람은 어쩌면 그리도 많았으며, 우연하게 문제가 해결된 적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 여행길은 하루하루가 불투명했지만, 늘 가슴이 설레었고, 사람들이 고마웠고, 하늘에 감사했다. 순간순간이 감동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가이드북을 갖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의 여행은 더욱 안전해졌고, 실수는 적어졌으나 그만큼 감동도 사라지고 있었다. 안전한 길은 사람을, 삶을, 여행을 시들게 했다. 물론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러나 너무 지식과 정보에 얽매이면 아는 것만 알고, 보는 것만 보게 되며 자신의 독창적인 시각은 점점 퇴화된다. 특히 인도는 마음을 텅 비우고 느낄 때, 오히려 더 풍요롭게 느껴지는 곳이었다.-82-83쪽
그러나 그 후 시작된 인도 여행은 나를 몹시도 힘들게 했다. 양심적인 사람들만 만난 것도 아니었고, 낭만적인 상황만 전개된 것도 아니었다. 절대 빈곤, 거지, 바가지, 무더위 앞에서 나는 짜증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인도는 내가 상상해왔던 신비, 명상, 성자들로 뒤덮인 나라가 아니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인도를 그렇게만 생각했었을까? 내가 한심했고, 세상도 한심했다. 물론 인도에는 찬란한 정신 문명이 꽃피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 속에 그려보는 그런 인물들은 이 혼탁한 시대에는 쉽게 보기 힘들었다. 진짜는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었고, 세상에 알려진 성자, 명상가들에 대한 평판은 대개 소문에 의해 부풀려 있었다. 나는 이미지에 속았음을 알았고, 몇 개월 동안 그 혼란 속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세상도 내 감정도 모두 뒤죽박죽되고 말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화를 냈고,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매일같이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했다.-89-90쪽
그렇게 하기를 한 4,5개월 했을 때던가? 나는 마침내 체념하고 말았다. 인도에 관한 생각과 느낌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도는 내 좁은 머리와 가슴에 갇힐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성스러운가 하면 추했고, 추한가 하면 아름다웠으며, 아름다운가 하면 끔찍했고, 끔찍한가 하면 슬펐다. 극단에서 극단을 오가는 땅에서, 나의 생각과 느낌은 어제 달랐고 오늘 달랐다. 그렇다. 계속 변했다. 변화만이 내 눈앞에 보이는 실상이었다. 나의 생각과 느낌이 그토록 덧없을진대, 나의 판단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던가. 나는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듯이 인도를 그냥 바라보았다. 그 때 인도가 가슴 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듯이, 나는 인도에 몸을 맡겼다. 판단하지 말라. 내가 인도를 다니며 노력한 유일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내 감정과 지식과 생각을 믿을 수 없었기에 나는 내 판단을 믿지 않았다. 나는 분석하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은 채 그냥 강물 속에서 헤엄치듯 인도를 떠다녔다. 여전히 나와 세상은 혼란스러웠으나, 편했다. 인도가 아주 편해졌다.-90-91쪽
"왜, 인도를 자꾸 가요? 힘든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편안해요. 세상이 분리되기 이전의 혼돈, 그 하나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듯한 그런 묘한 편안함이 인도에 있어요." 시간과, 공간과, 관계가 한없이 분리되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신도 죽었다고 하고, 이데올로기도 무너졌으며, 국가도, 가족도 점점 해체되고 있는 세상. 종교 따로 생활 따로, 부모 따로 자식 따로, 남편 따로 아내 따로, 너따로 나 따로...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살아가고 있던 나는, 그 혼돈의 인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맨 몸과 맨 정신으로 이 세상과 뒤엉키며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인도 여행이 되풀이되었다.-91쪽
인도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고 나서도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우체국에서 우표 한 장 사는 것도 큰 일이었던 적이 많았고, 찢어진 지폐 한 장 바꾸느라 은행 찾는 데 한나절을 다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인도에서는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하면 안 된다. 하루에 하나씩만 느긋하게 해야 정신 건강에 좋다. 천천히, 느긋하게. 인도에서 생존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102-103쪽
"꺼피, 차이, 꺼피, 차이...." 아, 저 반가운 소리.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커피, 차를 파는 소년들의 목소리였다. 아침이 온 것이다. 밤 기차 여행 중에 가장 반가운 소리들이었다.-106쪽
귀이개 하나를 들고 역전에서 귀를 후벼주는 일이 직업인 사람도 있었고, 저울 하나를 내놓고 무게 달아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도 있었다. 흰 암소로 점을 보는 것으로 돈을 버는 노인도 있었으며, 감자 몇 개 내놓고 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거지, 불구자도 한 푼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쫓아다녔고, 심지어는 도로로 뛰어들어와 정차한 차에서 구걸하는 이들도 있었다. . . . 나는 여행하며 늘 그들의 몸부림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세상을 구경하듯이 살겠다는 나였지만, 그들의 치열함은 늘 내가 방종에 빠지지 못하게 했다. 인생은 덧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가볍고 싶지만, 결코 무거움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세상을 초월하고 싶지만,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의 메커니즘과 밥 한끼를 얻기 위한 눈물을 이해 못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109쪽
"당신의 이름은 뭐요?" 낙타를 모는 비쩍 마른 인도인이 나에게 물었다. 몸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리라고 부르시오." "아, 알리! 클클클.... 내 이름과 같네. 무슬림이오?" 나는 분명히 '리'라고 했는데 그는 '알리'라고 들은 것이다. 이상하게도 무슬림들은 늘 그렇게 들었다. 그가 그렇게 들었다면 그런 것으로 해두기로 했다. "그렇소. 나는 무슬림이고 나의 이름은 무하마드 알리요." 미국의 권투 선수 이름을 대자 그는 이내 정정을 해준다. "무하마드 알리가 아니라, 알리 모하메드요... 반갑소. 내이름은 알리 칸이오... 우리는 형제요."-125-126쪽
인도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정말 즐거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관객들과 어우러져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고편이 너무 길거나, 재미없는 문화 영화 같은 것이라도 나오면 인도 사람들은 초반부터 휘파람을 불고 빨리 끝내라고 고함을 질러댄다. 화면 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키스라도 하면 장내는 그야말로 떠나간다. 이건 완전히,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나오는 옛날 이탈리아의 모습, 혹은 5,60년대의 우리 모습이었다.-147쪽
길거리에서 액세서리와 낡은 책을 파는 아이가 고개를 수그린 채 몽당 연필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무얼 공부하고 있니?"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아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한국 같으면 초등학교 3학년. 부모 밑에서 재롱 피우며 학교 다닐 아이였다. 거리에서 물건 파는 아이들은 흔했지만, 공부하는 아이는 처음 보았다. 절대 빈곤이 아이를 거리로 내몰았지만, 아이의 희망은 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 아이가 도대체 하루에 버는 돈이 얼마일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아이가 안돼 보여 싸구려 타밀어 교재를 샀다. 15루피였다. 20루피를 주자, 아이는 거스름돈을 찾았지만 잔돈이 없었다. 나는 잔돈을 받지 않고 그냥 돌아섰다. 그냥이라도 아이에게 돈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한참을 걸어왔을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또 등을 쳤다. 또 거지인가? 뒤를 돌아보니 나를 친 사람은 바로 거리에서 공부하던 아이였다. 아이는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꾀죄죄한 손을 내밀었다. 그 손 위에 있던 것은 꼬깃꼬깃 접힌 5루피짜리 지폐였다. -155-156쪽
노 프로블럼이란 말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인도 사람들이 그토록 그 말을 많이 쓰는 이유는 그냥 괜찮다라는 뜻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만사 신의 뜻대로 되는 것, 인간이 아둥바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결국 모든 것은 이 세상에 문제될 것이 없으며 결국 노 프로블럼 아니냐는 뜻이란 것이었다.-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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