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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밤, 나의 아름다운 도시, 어쩌면 너 때문에
라니. 낭만적 이데올로기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 소설을 읽지도 않고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마치 얼굴만 보고는 사랑에 빠지듯. 최근 이래저래 핑계를 달고 연애를 하기를 멈춘(?) 나는 들뜨는 여름밤, 한강, 맥주로 이어지는 단어의 메타포들을 단 하나도 잇지 못하며 어쩔 줄 모르고 지내는 중이다. 여름밤과 함께 쿰척 거리는 심박수는 내 안에서 계속해서 연애하기를 호명했고, 불러도 이름 없는 빈자리는 치킨 혹은 4캔 만원 맥주로 번갈아 채워가며 대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1988년, 박상영 작가는 나와 동갑이다. 서론도 길고 서른도 아닌 나는 박상영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해야 할 일이 산더미 였을때 하지 않고 밤새 읽다 진짜 어마 무지하게 행복해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박상영 작가의 신간 <대도시의 사랑법> 서평을 신청하게 됐다. 다 읽고 나서 나는 약간 눈물이 났다. 클리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여름밤, 나의 아름다운 도시, 어쩌면 이 소설 때문에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됐다.
재희
커뮤니티 안에 있으면 누구나 시선을 쏟지만,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1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그녀, ‘재희’와 스무 살 무렵부터 함께 산 ‘영’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 <재희>. 첫 시퀀스는 결혼식 장면이었고, 마지막 시퀀스는 나의 눈물로 끝이 났다. 불문과 동기인 재희와 영은 과에서 아웃사이더의 노선을 어쩌다 밟기 시작했고, 둘이 만나 함께 살면서 가속이 더 붙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살게 되었고 둘은 나란히 누워 이야기로, 대화로 20대의 모든 찬란한 순간들을 함께 공유했다.
재희가 거쳐간 파란만장한 연애의 모든 순간들을 읽으며 이질감이 없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주변 혹은 회사의 어느 자리에서 들었던 모든 재희들이 나의 머릿속에서 디졸브가 되었기 때문이다. 20대의 어느 순간 나도 ‘재희’를 만난 적이 있고, 30대의 어느 순간 또 달라진 ‘재희’를 떠나보낸 적이 있다. 그래서 영이 재희를 보내고 냉동고를 열었을 때 나란히 놓인 블루베리와 말보로 레드를 보고 느꼈을 시큰함, 그 시리고 차가운 기분과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둘만의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블루베리와 말보로 레드. 이걸 어쩌나, 내가 영이라면 그대로 두고는 엉엉 울었을 것 같다. (아니다,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렸으려나 #블루베리, #말보로 레드 하고?) 찬란하지만 지질하고 그래서 아름다웠던 순간을 함께한 ‘재희’와 헤어져본 모두는 ‘영’ 일 것이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 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영이는 여기서 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진짜 이 지구에서 이별을 경험하게 하는 남자 친구는 K3가 유일하다. 헤어진다는 건 다시 못 본다는 전제를 디폴트로 하지만, 지구에서 떠나버리는 건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누군가와 매일매일 만나고 또 매일매일 헤어지는 영에게도 K3의 마지막 말은 자꾸만 휴대폰이라는 세계 안에서 찾게 되는 말이다. 영에게는 말이, 대화가 너무 중요하니까.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 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이 대도시에서 다시 연결될 수 없는 K3가 너무 가깝고 동시에 또 너무 멀게 느껴지는 마지막 말이, 바로 휴대폰에 적힌 ‘문자 메시지’ 일 테니까. 엄지 손가락 2개로 소리도 안 나게 톡톡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던 누군가가 이 지구에 없다니. 같은 집에서 와이파이 비번도 없이 5G 데이터로 서로의 이야기를 쌓아가던 재희와의 이별 전에 한 차례 번호가 없어진, 혹은 있어도 대답 없을 K3와의 이별은 영이의 마음을 한 번쯤은 무너뜨렸을 것이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영이의 기억의 데이터를 다 가진 외장하드가 없어진 것이다. 우리의 도시에서는 누군가와 그렇게 이별하고, 또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다.
“항상 나의 곁에 있어줘, 꼭 네게만 내 꿈을 맡기고 싶어.”
핑클의 노래도, 결혼식으로 집합되는 대학 동기들도, 지질한 내 민낯을 기억하는 사람도, 지구를 떠나버린 사람도, 재희의 얼굴을 한 수많은 친구들도 모두 그립다. 그러니까, 이 여름밤에, 이 소설 때문에 나는 다시 사랑을 믿고 또 하고 싶어 졌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면 이 노래를 코인 노래방에서 불러줘야겠다. 항상 나의 곁에 있어줘, 꼭 네게만 내 꿈을 맡기고 싶어, 들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