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로드 4000km - 대한민국 100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 투어가이드
김종훈 외 지음 / 필로소픽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책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사 부분은 잘 몰랐던 부끄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의 국사 시간은 어떠했던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한 것도 대충 배웠고, 현대사 부분은 시험에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도를 확 뛰어넘기도 일쑤여서 교과 내용도 다 소화하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그래서 관련 기사들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전문적인 글들을 보면서 스스로 공부한 적이 종종 있었다. 자료를 접하다 보면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나 싶었고, 현대사에 무지했던 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외국 생활에서 알게 되는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우리의 역사나 북한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는 곤란했다. 특히 한국전쟁이나 분단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뭐라 대답할지 난감해서 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임시정부가 처음 틀을 잡고 성립될 시기부터,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이사다닐 수 밖에 없었던 그 여정을 찾아 떠났다는 오마이뉴스 기자 3명과 여행자 1명, 총 4명의 청년 이야기는 책의 첫 장을 펼치기 전부터 기대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단지 글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역사의 장소를 찾아 떠나는, 온 몸으로 느끼는 역사여행이라니. 그런 멋진 기획을 실행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낸다.


§ 임정로드 4000km의 특징과 강점

이 책은 철저히 임시정부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을 경험하도록 기획된 책이다. 그래서 역사적인 장소를 '어떻게' 찾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에 책의 80% 이상을 할애했다. 특히 여행자의 편의를 생각하여 임정로드 지도를 만든 것, 자신들이 직접 임정로드 루트를 나누어 소개한 부분이 돋보인다. 현실적으로 이 책을 쓴 저자들처럼 16박 17일을 여행에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은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 초반에는 여행 준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준비해야 할 것들과 꼭 빠지지 않고 챙겨야 하는 것들 등을 꼼꼼하게 정리해놓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 일정은 그들이 스스로 명명한 '임정로드' 라는 길을 가면서 다큐멘터리로도 제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촉박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4명 일행 중 중국어 통역을 겸하면서 여행에 참여한 최한솔씨가 있었지만, 나머지 3명은 중국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구글 지도를 사용하면서 길을 찾아가도 시행 착오가 많았다. 여행이라는 것은 또, 예상보다 많은 이야기가 있는 법이기에 그들의 좌충우돌한 상황에는 내 마음까지도 철렁하는 것 같았다.


§ 헛헛하고 답답한 마음들을 따라서

임정로드팀이 긴 여정을 마치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헛헛하다' 였을 것이다. 책 첫머리에도 그 단어를 쓸 정도였으니까. 임정로드팀은 장소를 찾아가는 데 있어 독립기념관 소장자료를 이용하여 주소를 확보, 그 주소를 구글 지도나 바이두에 입력하여 찾아다녔다. 그런데 예상외로 우리나라에서 확보한 자료들이 실제 위치와 맞지 않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여 고생을 많이 했다. 막상 찾아가면 잘 보존되어 있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장소도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오래도록 돌보지 않았는데, 중국이 나서서 해 줄리도 없는 상황. 국가가 나서서 하지 못하면, 일반 시민이라도 나서야 하는 것인가 하는 답답함이 저자의 문장 사이에서 떠돌았다. 그러기에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던 자취를 찾아 나서주기를, 그런 저자의 간절함이 책 곳곳에 배어 나온다.

여행 안내서가 이렇게 절절하게 다가올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만큼 나 역시, 모르고 지나친 장소가 많았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관련 영화나 책을 읽으면 먹먹해졌던 마음은 이내 곧 사그러들기 일쑤였기에. 나는 그들을 기억하거나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생각 외로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곳은 바로 우리 옆이었다. 상해로 첫 여정을 떠나기 전, 저자가 들렀던 서울의 효창원과 경교장이 그렇고 식민지 역사 박물관이 그렇다. 이 책에선 다루지 않았지만, 서대문형무소도 그런 장소이고 이제는 싹 밀어버려 옛 자취를 찾을 길 없는 형무소 맞은편의 옥바라지 골목이 있었던 곳도 생각해보면 마음이 서늘해지는 장소다. 이런 장소들을 다시 일깨우는 기록을 실은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여행의 마무리는 의외로 일본에서 끝난다. 임시정부 이동 경로와는 다른,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자취를 찾아 떠난 일본 여행은 또 다른 먹먹함을 선사했다. 저자는 임시정부의 주축 인물이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김구 선생에 집중했고, 독립운동에 있어 그 판도를 바꾼 일을 해낸 윤봉길 의사에 집중했다. 그래서 마지막 여행지는 일본의 오사카와 가나자와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여행간다고 하는 오사카에 윤봉길 의사가 구금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새로웠다. 그래서 혹시 다음번에 오사카에 가게 된다면, 저자의 바램대로 나 역시 오사카성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윤 의사를 기억해 보리라 다짐했다.

§ 이 책의 아쉬운 부분

이 책은 여행 안내서로 그 역할에는 충실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여럿 있다. 너무 아프고 힘든 우리의 과거사이자, 희생이 많았던 독립운동의 길을 생각해 볼 때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안타깝고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일은 맞다. 그런데 저자는 그 마음 아픈 나머지 감정에 치우쳐서 역사적 사실을 분석적으로 소개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만 서술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예를 들어 효창원에 대해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가 만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는데, 저자가 지적한 부분에 대해 당시 관련 기사를 참고문헌으로 명시했다거나 자료를 덧붙였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김구 선생이 암살을 당했을 때의 일도, '어찌된 영문인지 진상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라고 명시할 것이 아니라, 안두희가 결국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하게 되었을 때는 제대로 증언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적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이 책에 나와 있는 설명만으로는 방문 장소에 대한 감상을 느끼기에 정보가 적다. 지면의 한계상 장소에 대한 정보나 연관된 인물을 다 소개할 수 없었다면 자료라도 소개했어야 한다. 본문에 물론 <백범일지>나 정정화 여사가 쓰셨다는 <장강일기>, 님 웨일즈의 <김산의 아리랑> 등등 여러 자료나 책들이 언급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함께 읽고 가야 할 책이나 자료를 따로 정리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공부하고 떠나면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여행의 팁으로 중국 여행이나 일본 여행에서 맛보면 좋을 음식과 장소를 소개한 것은 좋은데, 편집 위치가 적절치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한창 독립운동의 고단함과 안타까움에 젖어 있을 대목에서, 갑자기 맛집 이야기나 음식 이야기가 나와 개인적으로는 ...... 감상이 깨진 적도 있었다.


§ 결론은....

책을 덮고 나서, 며칠 이 책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임정로드에 대해 생각했다. 몇년 전 상하이에 스탑오버로 갔다가, 와이탄의 풍경을 보러 공항에서 나왔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그 때 와이탄의 불빛을 바라보며, 내 등 뒤로 펼쳐진 이국적인 조차지 풍경을 보면서 잠시 생각했었다. 여기가 그래도 외국인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장소였다면,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도 여기를 왔다갔다 했을 지도 모르겠다고. 어딘가 한국과 관련된 장소가 있을 지도 모르잖아? 하고 말이다. 정말 스쳐지나가듯 생각했었더랬다. 그런데, 책을 보니 그 장소가 와이탄에서 별로 멀지 않았다는 것이 나에겐 좀 충격이었다. 조금 더 신경써서 둘러볼 걸 그랬나. 내가 지금 알게 된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상하이를 기억하는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임정로드를 떠난 청년들이 바라는 건 큰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다 허물어져 갈 것 같은 그 건물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 사람이 있었다고 표식 하나 달아주는 것. 이미 없어진 자취에 '여기 그 조직이 있었다' 는 기념석 하나 세우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독립운동을 했던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고, 우리만의 나라를 꿈꾸며 스러져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 우리가 기억하고 알려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그 마음을 간직한 채로, 16박 17일이라는 거창한 여행은 떠나지 못할지언정 - 중국 땅을 밟게 되면 임정로드를 일부라도 거쳐보리라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군가도 기억하지 못할 일인 우리 역사니까. 그리고 지금 이렇게 내가 살아 숨쉴 수 있는 것도, 그 때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알리기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띄우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