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반새
이문일 지음 / 어문학사 / 2008년 7월
장바구니담기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와 시골을 오가며 살아온난 촌놈이라 불리웠다. 어릴적에는 그런 말들이 듣기 싫었지만 지금은 정감이 가고 좋다. 이제는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없지만 내가 날 그렇게 부른다. 중학생이 되기전 서울로 올라왔고, 서울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사투리도 금방 벗어버렸지만, 이상하게 집에만 오면 사투리가 튀어나오고, 밖에서는 사투리를 쓰려고 해도 잘 안나온다.



그 시골에 살던 어릴적, 황순원의 소나기라는 소설을 무척 좋아했다. 서울에서 올라온 고운 소녀의 모습을 생각하며 꿈을 키우기도 했고, 실제로 서울에서 놀러온 여자아이의 모습을 훔쳐보며 내가 그 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하기도 했었다. 소설에서처럼 에피소드 같은 것은 전혀 없었지만.


이책의 제목이기도한 청호반새는 산 절벽의 흙 벼랑에 자신이 직접 구멍을 파서 만든다. 한국에서는 전역에 걸쳐 드물게 번식하는 여름새라고 한다. 아름답고 뭔가 고귀해 보이는 모습이다. 영덕이는 춘천의 산골 원창고개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춘기 소년이다. 온갖 새와 짐승, 꽃과 나무들이 다 그의 친구이다. 고사리나 영지등 산에서 나물을 캐어 팔아 용돈을 마련하고, 산삼이 어디있는지 알고 그것이 큰 돈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성한 식물이라 여겨 캐지 않는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소년. 초등학교때는 줄곧 1등을 해왔지만, 일등의 자리에 대한 기대와 부담으로 인해 일부러 빵점을 받는 소년이다. 빵점을 맞기도 했다는데 그것은 문제를 모르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담임은 늘 새대가리라고 무시하기 일수이다. 소년은 그러면서도 틈틈히 공부를 하며 2학기가 되면 다시 일등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다.


서울에서온 부잣집 딸 순아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한다. 엄마가 재혼을 해서 홧김에 할머니가 계신 원창고개에서 학교를 다닌다. 조용한 시골에서 즐거운 유일한 일은 영덕이를 응덕이라 부르며 괴롭히고 놀리는 것이다. 순진하고 때묻지 않은 소년을 놀리며 어느새 사랑의 감정이 싹터간다.

영덕이는 교활한 구미호같은 순아가 빨리 서울로 돌아가 버렸으면 좋겠다. 손톱으로 목덜미를 할퀴고 허벅지를 물어 뜯고 자신을 괴롭히는 순아가 밉지만, 남자기 때문에 참는다. 한방에 누군가를 때려 눕힐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년의 순수하고 의젓한 마음을 잘 볼수 있다.

음악 선생님을 짝사랑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순아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같다. 이 소년이 훗날 자라면 가장 잊지 못할 여인이 순아가 아닐까? 그건 내 비슷한 경험으로 보아도 그렇다. 학교다닐때 짝사랑하던 선생님은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매일 짖궂게 괴롭히던내짝궁소녀는 생생하게 기억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은 예쁘고 공부잘하는 여자이이들만 이뻐하고, 영덕이는 무척 미워한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선생을 할까? 생각될 정도로 자기 중심적이고 공정하지 못하다. 내 어린시절도 대부분의 선생님이 그랬다. 교육자로서 교육을 하는것이 아닌, 직장인으로서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풀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런 교육 때문에 무시받고 매맞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방황하는 젊은 시절을 보낸다. 반 성적이 잘 나와야 인정받기때문에 아이들을 닥달하지만, 닥달한다고 해서 성적이 오르는 것은 아니고, 오른다고 해서 아이의 지식으로 바뀌진 않는다. 예의가 바르지 못해 맞는것은 둘째치고 공부 못한다고, 아니면 다른 이유로 트집잡아 벌을세우고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 죄의식을 고스란히 자신에게 지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러가지 새들과 곤충들과 식물들의 이야기를 덧붙인 해설들이 각 장의 뒷편에 붙어있다. 시골에 살았었지만 잘 몰랐던 식물의 이름과 모습들을 알 수 있어 좋다. 산골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사춘기의 가슴 설레는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담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요즘 소설처럼 긴장감이나 큰 반전은 없지만,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게 했고, 마지막 부분에선 더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시골의 풍경이 그리워 진다. 지금은 무너져 버리고 없는 시골 마루에 누워 수박을 먹으며 실컷 책을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