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겨울과 2017년 초가을 사이에 황정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2016년에 발표된 <d>와 2017년 초가을에 공개되기 시작한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둘은 빈 사이-공간을 느슨하게 공유할 뿐 전혀 다른 모습이고, 후자의 작품에서 황정은이 보여준 변화가 너무 뜻밖이어서 놀라며 읽었고 읽느라 행복했다.<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유난히 사변적이고 유난히 개인적이었는데 그게 가장 정치적이고 공적인 문제제기를 가장 웅변하고 있다는 점이, 기쁜 마음으로 낯설게 했다. 그러면서도 황정은 특유의 리듬감은 어디 가지 않고 오히려 사변과 함께 더욱 힘이 생겼다는 것이 놀라웠다. 기존의 리듬감이 부패하면서 발생한 가스로 인해 팽팽해진 표면에 작은 바늘 구멍을 경쾌하게 내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큼직한 도끼로 쿵쿵, 견딜 테면 견디라는 듯 선 굵은 균열을 내는 듯했다. 때로는 구두점도 생략하고 의미 구분이 모호하게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면서 호흡이 끊기지 않게 구성한 장문이 하나하나 가슴과 두뇌에 퍽퍽 박혔다.(후에 이어서)
플롯을 구성하는 솜씨가 좋다. 특히 후반부 법정에서의 전개와 실제 사건을 교차하며 엮을 때는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소설이 영화의 플롯을 흉내내는 것이 좋은 것일까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다.(번역문으로 문체를 판단하는 게 우습지만) 문장은 조금 과시적이고 유치할 때가 종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