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냥 당연히, 원래 그렇게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상황이 나아지고 자리를 잡아서 떳떳해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엄마의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을 섬세함으로, 특별한 정서적 능력으로 이해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줌마의 애정이 담긴 시선 속에서 엄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보였었다.
아줌마라고 해서 엄마의 모든 면이 아름답게 보였을까, 엄마의 약한 면은 보지 못했을까.
아줌마는 엄마의 인간적인 약점울 모두 다 알아보고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 곁을 줬다.
아줌마가 준 마음의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았을까.
가죽지갑 하나에도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어린 여자애를 보면서 엄마는 그애에게 왜 고작 이런 것 하나에도 그토록 당황하고 행복해했는지 묻는다. 너는 더 좋은 것들을 누렸어야 했다고, 그럴 자격이 있었다고.
누군가를 조롱하고 차별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세상 사람들은 부모의 은혜가 하늘 같다고 했지만 여자는 자식이 준 사랑이야말로 하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미카엘라가 자신에게 준 마음은 세상 어디에 가도 없는 순정하고 따뜻한 사랑이었다.
말자는 지민이 서러움을 모르는 아이로 살기 바랐다. 흘릴 필요가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삶에 의해 시시때때로 침해당하고 괴롭힘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지민은 삶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기꺼이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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