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박범신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박범신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들어보았고, <<촐라체>>, <<은교>> 등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으나, 언뜻 박범신 작가와 연결시키지 못하는 우둔함이 이 책을 읽는 내내 '폭력'이라는 주제를 잊어버리고 페이지만을 넘기기도 했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책의 정수를 정확하게 집어내지 못한 것 같아 마냥 아쉬움도 남는다. 저자는 책의 첫 페이지부터 '폭력'이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언급하였고,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살인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고 글을 옮겨놓았다.

 

   조선시대의 정치가 점점 견고한 유착을 형성하여 양반과 상민을 촘촘하게 구별해나갈 때 유행한 것이 보학이라고 한다. 최근 유행하는 '왕좌의 게임'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다보면 귀족들은 상대 가문에 대해 어릴 때부터 학습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러한 교육을 통해 선조의 특권이 유전되는 특성을 지니는 것 같다. 이 글에서 보이는 폭력도 처음에는 개개인의 폭력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회 시스템에 의해 폭력이 유전되기도 하고, 화마가 수백미터 옆에 위치한 불타지 않은 나무에 불씨를 옮기 듯 폭력이 말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른 공간에 위치한 '나'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실 폭력은 달콤하다. 주인공이 폭력의 주체가 되기 전, 노숙자로 남해안을 떠돌면서 구타를 당하면서 폭력못지 않은 기분 더러운 희열을 느꼈고, 폭력을 행사하게되면서 죄책감이나 자의식은 점차 미지의 공간으로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통해 얼마나 폭력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인내하고 공감하기 위한 자세는 쉽게 익혀지지 않는 것 같다. 주인공과 여린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나 나는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이처럼 폭력의 전이성은 이해하기 쉬울지라도 비폭력, 인간성, 공감, 이해 등은 익히기도 쉽지 않고 갑갑하고 스트레스로 둘러쌓인 환경에서는 더더욱 실천하기도 힘든 일인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본인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강조했던 4대악의 한 축인 가정폭려의 경우, 대다수 가정폭력 가해자들은 상대방이 나의 심기를 박박 건드렸기 때문이다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내가 한 행동이 타인에게 폭력적으로 비춰지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여유가 필요한 현대인이지만....경제가 어려워지니 여유가 더 없어지는 것 같고, 나 역시 폭력의 중심에 있지 않나 일기를 뒤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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