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권함 기파랑 고전 명저 시리즈 6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이동주 옮김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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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란 무엇이고 어디에 필요한 것일까? 학문이 순수성을 유지하기란 지난(至難)한 것인가? 학문이 대중의 계몽이라는 목적성을 지향할 때 과연 객관적 시각을 고수할 수 있을까? 학문이 특정 이념을 고무하거나 정치 체제를 옹호하며 이웃 국가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할 때 그것을 학문의 본령(本領)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것들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의 『학문을 권함』(學問のすすめ)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며 쉬이 해답을 주지 않던 의문들이었다. 다 읽고 나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정리가 되었다 싶어 이 글을 쓴다. 먼저 저자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개화기의 사상가이자 교육자로써, 그의 10대는 도쿠가와 막부가 봉건체제를 유지하면서 쇄국을 단행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1853년 미국에 의한 강제 개항과 1867년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근대화로 치닫게 되는데, 이후 일본과 관련 있는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는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러한 격동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서양과의 과학기술 및 학문적 격차가 일본이 독립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임을 자각하고 일본 대중의 계몽에 일생을 바친 대표적 근대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과 삶의 자세에서 세상에 나오게 된 이 책은 저자가 고향인 오이타(大分) 현 나카스(中津)의 중학교 학생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들려주고자 쓰기 시작한 글로 17편까지 계속되었고 이후 일반 대중들에게 까지 널리 읽히게 되었다고 한다. 위에 소개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이 책을 읽어 나가면 한국인은 필연적으로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과 뒤 이은 고난의 세월에 이 책과 저자가 알게 모르게 기여한 사상적 연원에 분노할 지도 모르겠다. 실제 후쿠자와는 정한론(征韓論)과 탈아론(脫亞論)으로 일본이 제국주의로 들어서는데 일정 정도 기여한 부분도 있다. 정작 문제는 어떤 책과 그 속에 내재된 사상을 통해 계몽된 민중이 주체적인 자각 없이 시대적 분위기와 내부적 갈등의 요소를 해결하고자 외부로 눈을 돌려 침략과 전쟁에 내몰리게 된 상황 인식의 결여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저자의 학문과 사상은 그 자체로 근대 일본 지식인의 시야의 한계와 시대적 요청에 답하는 수신서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다. 서양보다 모든 면에서 낙후된 일본의 사정을 똑바로 인식하고 서양을 적극적으로 배워 언젠가는 그들을 넘어서자는 주장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서양으로부터 배운 제국주의적 심성까지 일본화 하여 조선과 아시아 각국을 침탈하고 잔혹하게 지배하며 학살을 자행했던 그들의 과거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한국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그들만의 논리일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위에서 던졌던 몇 개의 질문들은 과연 학문의 본령과 순수성이 여하히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학문을 권함』이라는 책은 오직 일본인에게만 유효한 영속성을 갖는다. 또한 현대 일본인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을 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 일본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역사의 맹목적 반복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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