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의 역사
스벤 린드크비스트 지음, 김남섭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아래 게시한  Sven Lindqvist의 <야만의 역사>를 읽고 난 뒤, Genocide와 Holocaust에 관한 책들을 찾아 부지런히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접하게 된 책이 바로 같은 저자의 <A History of Bombing, 2000>의 우리말 번역서인 <폭격의 역사,2003>다. 항공기가 발명된 이후 어느 누구에 의해서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전쟁에 이용해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을테고 실제로 이용해보니 효과가 좋아서 전쟁수행의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이기 시작했을 폭격. 게다가 항공기는 서구에서 먼저 발명된 것이니 만큼 최초의 이용도 결국 서구인에 의한 아프리카인 대량학살이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 계속해서 폭격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가 반란이 일어난 식민지를 공격할 때도 일상적으로 활용되었고, 20세기 들어와 벌어진 수많은 전쟁과 내전에서 빼놓을수 없는 합리적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과연 폭격과 대량학살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내가 직접 현장에서 내 손으로 '야수'들을 살해하는 것과 하늘 위에서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폭탄을 퍼붓는 것과의 사이에는 어떤 도덕적 간극이 있을까? 그러니까 폭격을 통한 대량학살을 가능하게 만든 원칙 또는 윤리적 선택이 있는가? 여기에서 대량학살을 합리화하고 자신의 조그만 양심마저 마비시키는 하나의 이론, 바로 인종주의가 등장한다. 우월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할 권리가 있고, 문명인이 야만인을 문명화시킬 의무가 있다는 극히 편견에 가득찬 담론. 근대국가 성립기 유럽에서 국민과 비국민을 구분하고, 지배와 피지배를 확립하며 제국이 식민지를 개척해나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가장 저열한 사이비 과학, 인종주의. 나는 백인종이고 너는 흑인종이니까, 백인은 문명인이고 흑인은 야수이니까, 사람이 야수를 죽이는데 무슨 도덕적 양심이 필요한가? 그것도 저 높은 하늘에서 보이지도 않는 '야수'들을 향해 폭탄을 떨어트려 즉사시켜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서구인의 가공할 오만 앞에 흑인종, 황인종은 그저 인간이 아닌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에 불과할 뿐, 벌레들을 대량으로 죽인다고 한들 양심에 거리낄 것은 전혀 없지 않은가? 지독한 타자화, 나와 너를 철저히 구분하여 너를 비인간화 하는 폭력성의 극한, 우글거리는 벌레들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근대 도구적 기술의 극치, 폭격. 하긴 흑인종, 황인종 뿐아니라 같은 유럽인들끼리도 무던히 죽였지. Battle of Britain이나 독일 본토 폭격이나 결국 폭탄을 떨어트려 적대국의 국민들마저 싹쓸이 하겠다는 단순명쾌한 전술적 귀결이 아니었던가? 저 아래 주거지에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떤 문화와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인간이 아닌 야수, 벌레들을 가능한 신속하게 처리하고 내가 속한 인간집단으로 돌아가 나와 내 가족, 내 민족만 인간답게 살면 되는 것이다.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6분 2초에 초강력 무기의 꿈은 실현되었다. 12,500톤의 TNT의 위력을 가진 최초의 원자폭탄이 아무 경고도 없이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하였다.....(중략).....구조팀이 그날 나중에 그 지역에 들어갈 수 있었을 때, 구조할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들의 임무는 주로 수만 구의 시체를 모으고 제거하는 데 있었다. 즉사했던 사람들은 폐허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몇 분이나 몇 시간 더 살았던 사람들은 다리 위나 강변에 무더기로 쓰러져 있거나 불기둥으로부터 목숨을 구해보고자 했던 곳인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약 10만 명의 사람들(그 중 95,000명이 민간인)이 즉사하였다. 그 대부분이 민간인인 또 다른 10만 명이 방사능 효과로 서서히 오랜 시간에 걸쳐 죽어갔다.(p.240~1)



과연 인종주의적 심성이 사라졌으리라 생각하는가? 곧 무인 폭격기가 등장하여 그나마 폭탄을 떨어트릴 때 일말의 도덕적 양심마저 제거하여 더욱 쾌적하고 스마트한 전쟁을 수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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