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역사
스벤 린드크비스트 지음, 김남섭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혹시 태즈메이니아族을 아는가?

 

 

태즈메이니아족은 絶滅된 인종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서 종종 절멸된 인종 모두의 상징으로 거론되곤 하였다. 태즈메이니아는 아일랜드 크기만한 섬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남동부에 위치해 있다. 최초의 식민주의자들 - 죄수 24명, 병사 8명, 6명의 여성을 포함한 자원자 12명 - 은 1803년에 도착했다. 이듬해 최초의 원주민 대학살이 발생했다. '산적들', 즉  도주한 죄수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캥거루와 원주민들을 죽였다. 그들은 원주민 여자들을 데리고 갔다. 시신들은 개한테 던져주거나 산채로 불에 구웠다. 캐러츠라는 사람은 태즈메이니아인을 살해한 일로 유명해졌다. 그는 태즈메이니아인을 살해한 다음 그 부인에게 남편의 머리를 목에 걸고 다니도록 윽박질렀다. 원주민들은 인간으로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야수들'이거나 난폭한 짐승들이었다(p.187)

 

 

위 인용문은 Sven Lindqvist라는 스웨덴의 진보적 저널리스트가 1996년에 저술한 <Exterminate All the Brutes>라는 책의 우리말 번역본인 <야만의 역사, 2003>에서 발췌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 때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현대 Hynix 반도체 내에서 청강문화산업대학에 적을 두고 있던 직원들을 대상으로 독해와 영작문을 가르치던 2004년 초였다. 당시 점심을 먹고 다음 수업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어서 한 번 Hynix 영내를 돌아볼까 하는 생각으로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직원용 복지관에 딸려 있던 서점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발견하고는 그야말로 경악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니까 당시 아직은 Genocide나 Holocaust 등의, 이른바 대량학살에 관한 체계적 독서가 부족했던 때, 이 책은 첫 페이지를 펼치고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분노하지 않고 넘어가지 못했을 정도로 너무도 광기어린 학살의 모습에 전율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에 나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이라크의 쿠르드족 학살, 일본의 난징대학살, 남한의 제주 4.3 학살 등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게 되었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같은 인간에 의한 광기의 희생자들의 고통과 두려움, 절망에 공감하면서 그들과 연대의식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원주민' 또는 학살자들 표현대로 하면 '야수'들의 죽음이 곧 내 피붙이의 죽음이고, 내 민족의 멸족이며 그로 인한 정신심리적 외상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치유될 수 없는 큰 상처로 남게 된다는 것도 내 몸의 아픔으로 실감했다. 이 책에 기록된 학살은 물론 백인들에 의한 것이고, 학살의 대상은 백인들이 야수라 불렀던 아프리카인들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그리고 북미 원주 인디언들과 남미의 인디오들이었다. 그런데 백인들은 무슨 근거로 이들을 야수라 불렀고 자의적으로 지상에서 절멸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바로 생물학. 정확히 말하면 사이비 과학의 일종인 骨相學과 Charles Darwin의 <진화론>에서 이른바 자연선택과 생존경쟁 이론, 특히 適者生存을 과대해석한 Social Darwinism으로 왜곡한 인간의 우열 나누기가 바로 그것이다. 과학적 근거(백인들이 생각하기에는 합리적이었을)를 등에 업고 유럽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륙에서 행해졌던 대량학살의 광풍은, 소위 학살의 심성과 결합하여 수많은 목숨들을 강제로 박탈했다. 이것은 지구상에 백인들만 살 가치가 있는 인종이라는 뜻인가?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아무리 사이비 과학이론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해도, 원주민들을 절멸해서라도 빼앗고 싶었던 그 어떤 것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점점 불어나는 우수 인종(?) 백인들의 생존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절박한 요구때문이었을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본래부터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제거할 생각을 했던 것은 과연 합리적인 선택이었을까? 유럽인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유럽사에서 예외적인 하나의 사건이라고 말하면서 도덕적 책임감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사실은 유럽인의 정신 속 어딘가에 학살에 대한 심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유대인 대학살은 이미 오래전부터 행해져 온 학살의 연장선 위에서 현대에 '재현'된 최종 형태는 아닐까? 만약 일본인들이 韓민족 전체의 말살을 목표로 실행에 옮겼다면? 현재 북미에 남아 있는 인디언의 숫자는 95%가 절멸되고 난 뒤의 한 줌에 불과한 비극의 증인이라면? 과연 흑인은 야수인가? 그러면 백인은 문명인인가? 문명의 어떤 면이 대량학살을 합리화해주는가? 사실은 백인이 야수는 아닌가? 자신 속의 야수성은 교묘히 감추고 타자를 야수화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이 문명과 종교를 자랑하는 백인의 참 모습인가? 경계해야 할것은 정작 인간 심성 속의 절대 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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