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버트 카파. 본명 엔드레 에르노 프리드만. 1913년 출생의 헝가리계 유태인 포토 저널리스트. 1936년 스페인 내전 취재 중 찍은 <어느 인민 전선파 병사의 죽음>으로 이름이 알려진 후 중일전쟁, 노르망디 상륙작전, 베를린 함락, 중동전쟁, 그리고 인도차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초중반의 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한 사진가. 어제 다 읽은 <그 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2차 대전 종군기로써, 1942년부터 1945년까지 그가 쓴 글과 직접 찍은 사진들을 엮은 것이다. 총알이 날고 포탄이 터지는 위험한 전쟁터를 누비며 좀 더 생생한 사진을 찍겠다는 일념으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찍어낸 사진들은, 인간이 벌여 온 무의미한 전쟁의 참상과 그로 인해 고통 받았던 민중들, 그리고 수없이 죽어간 병사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다. 그의 카메라에 담긴 미국과 독일의 피사체들은 곧 <사체>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전쟁이 국가 간의 정치적 해결수단이라면, 개개 병사들의 삶은 희생되고 방치되어도 좋다는 뜻인가? 극한의 국가폭력이라 할 전쟁에서 장군은 죽을 일이 없지만, 장교와 병사들은 매순간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사망한 미군과 독일군 병사들의 배낭에서 나온 부치지 못한 편지들과 그리운 이의 사진들, 손때 묻어 너덜너덜해진 책들은, 이내 주인을 잃고 버려지거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어제는 살아 있었던 인간이 오늘은 땅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 그 인간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셔터를 누르던 당시의 로버트 카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책에서는 로버트 카파가 순간순간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사진작가로써 자신의 선택에 대해 도덕적인 비판을 하는 대목들이 꽤 나온다.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인간의 살육행위에 자체에 대해 윤리적 비판을 내리려 하지 않는 점에서는 역사에 참여하여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려는 의지도 보인다. 책 표지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오마하 해변에 상륙 중인 미군 공격 제 1파 부대원을 찍은 것으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일부러 핸드 헬드 카메라로 재현했던 당시의 상황 그대로 셔터를 누르는 손이 떨릴 수밖에 없었을 절체절명의 순간을 잡아내어 <라이프> 지에 실렸던 것이다. 비록 떨린 손으로 찍었지만 사진 속 병사의 표정과 로버트 카파의 심정이 같았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아마 사진 속의 미군 병사도 고향땅을 밟지 못했을 것이다. 로버트 카파는 그 뒤에도 전쟁터를 누비며 보도 사진들을 찍다가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하던 중 베트남 전선에서 지뢰를 밟고 폭사했다. 향년 41세. 최전선을 누비던 종군기자다운 최후였다. 지금까지 많은 전쟁에서 생명을 빼앗긴 이름 모를 사람들의 명복을 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