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대문호의 집필, 그 뒷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며칠전 오랜만에 서점에 갔다가 유난히 눈에 띄어 집어 든 책이에요. 저는 사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대작을 쓴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 한 상태 였습니다. 책을 흝어보니 스포일러가 너무 많은 거 같아 걱정이었지만, 세계적인 대문호가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솟구쳐 대출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무릎이 가슴에 닿게 구부리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제 선택이 옳았습니다. 너무 너무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라면 고귀한 생각을 품고 책을 집필 했을 거라는 저의 기대와 편견을 여지없이 허물어뜨렸지만 그것보다 더 문학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지나치게 낭비벽이 많았다는 거 아세요? 자신을 치장하기 좋아했고, 분수에 맞지 않게 좋은 물건들을 사들였습니다. 그것도 아버지의 돈으로요. 도스토예프스키 아버지는 의사이셨고, 소비보다는 저축을 중시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표도르(도스토예프스키)를 공병학교에 보냈습니다. 공병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공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채 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믿음과 작가가 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이룬 문학적 성취로 봤을 때 이런 믿음과 기대는 결국 옳은 것이었지만, 아버지로서는 참으로 답답했겠죠. 공병학교 시절 저축을 중시하는 아버지에게 구구절절한 편지를 써서 결국 돈을 타냈던 걸 보면 그는 공병학교 시절부터 글쓰기에 대한 재능은 타고났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부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책을 쓸 당시의 재정적인 상태와 작품속에 나타난 돈과 돈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관, 돈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등을 다룹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건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소설의 원고료를 선불로 받고 썼다는 것입니다. 특히 <죄와 벌>을 쓸 당시에는 '움직이면 식욕이 생길까 봐 앉아서 내내 책만 읽는다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지인들에게 보낼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가난에 허덕이고, 선불을 받아야지만 글을 썼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과시용 소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빚을 져서라도 소비를 했고, 돈을 쓸 때 마다 원고를 팔아 돈을 갚겠다는 생각을 갖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문학적인 재능을 믿었던 만큼, 아무리 빚을 져도 괜찮다는 허영 또한 갖은 모양입니다. 그는 이런 무분별한 소비로 인해 늘 빚진 상태였고, 빚을 갚기 위해 원고료를 선불로 받아야 했는데, 출판사에서는 그의 이런 사정을 이용해 그의 원고료를 낮게 책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이고, 결국 그의 현명한 아내덕에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빚을 갚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그가 빚을 진 이유가 무분별한 소비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세상과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위대한 문학작품을 집필해 낸 작가답지 않게 현실속의 사람들에게 허수룩했습니다. 사람들이란, 죽은 형의 가족들 그리고 형에게 빚진 사람들 등입니다. 같이 사업을 하던 형이 사망하자 그의 가족들을 자신이 맡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의무를 집니다. 비록 그의 가족들이 도스토예프스키보다 더 부유하게 사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형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다고 하면 그는 사실관계를 따지기 보다는 무작정 갚았습니다. 그러니 늘 빚에 허덕이는 수밖에요!

그의 책을 읽으면(저는 이 책에 나온 에피소드 몇 개와 대강의 줄거리만 읽었지만) 돈에 대한 무수한 철학이 나옵니다. 돈을 자식보다 더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부터, 저축에는 관심없고 소비에만 관심있는 그 자신과 같은 사람들까지. 그리고 그들은 돈 때문에 파멸하고, 또 돈으로 인해 구원을 얻길 희망합니다. 그렇게 돈의 원리에 대해 잘 아는 그가, 한 평생 돈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그가 현실 세계의 돈에 대해서는 이다지도 무지했다는 건 경악스럽기 까지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합니다. 그는 현실 세계의 돈에 대해 무지한 척 했던 것 아닌가 하고요. 집 앞의 거지가 있으면 주머니속의 돈을 털어 동냥하고, 만약 돈이 없으면 집으로 데려가 아내에게 동냥할 돈을 달라고 했다는 그. 돈 때문에 그가 싫어했던 동료 작가에게도 비굴하게 구걸했다는 그. 그가 정말 죄와 벌을 쓴 도스토예프스키가 맞나요?

책을 읽으면서 그의 책을 읽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습니다. 고전이란 오랜 시간 사람들이 두루 읽는 소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삶에 대한 진리와 지혜를 닮고 있는 소설을 의미한다지요. 그의 소설이 이렇게 고전이 된데에는 작가 자신의 재능도 있었겠지만, 그의 돈과 사람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는 그의 책을 산만하다고 지적하는 문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그는 늘 시간에 쫒겨 글을 썼습니다. 만약 그에게 원고를 교정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주어졌다면 그는 더 좋은 글을 남겼을 겁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가 그렇게 원고를 빨리 써야 했던 이유(그는 빚을 갚기위해, 먹고 살기 위해 늘 원고를 빨리 써내야 했습니다. 26일 동안 장편소설 한 권을 써내야 했을 정도로.)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아, 위대한 문학 작품 뒤에 이렇게 돈 때문에 꼭 글을 써야 하는 작가의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다니요!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 했습니다. 왠만한 추리 소설 못지 않게.

저는 이제 도스토예프스키 책을 읽을 예정인데, 여러분들은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를 읽어보시는 건 어때요? 이미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읽어본 분들은 그가 책을 집필할 당시 선불로 받은 원고료 때문에 얼마나 전전긍긍하며 책을 썼는지 알게 될 것이고, 저처럼 아직 안 읽어본 분들은 그의 책을 읽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힐 거에요! 

소설 만큼 재밌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