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은행에서 볼 일을 마치고 오는 길에 빵집이 눈에 띄어 샌드위치와 호두 빵 등을 샀다. 빵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유롭게 길을 다닐 수 있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생각했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같은 책을 읽을 때는 긴장하게 된다. 전쟁이라면 우리나라에도 몇 십년 전 실제로 일어났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그냥 책에나 씌어있고 티비에서나 틀어주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피부로 다가오지 않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할 때 가식으로나마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 읽기 주저해진다. 그래, 그런 것이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외면을 해버리자는 주의. 그래서 차라리,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버리고 말자는 그런 마음 말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에이즈로 하루에도 몇 만명이 죽어간다고 하지만, 또 어디에선가는 전쟁 때문에 몇 천명이 죽어간다고 하지만 나는 모른다, 라고 하면 나에게는 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_ 레온 트로츠키

목차가 시작되기 바로 전 쓰여 있는 글이다. 어떤 뜻인지는 알겠지만,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은 글이었다. 또 나는 모른다, 고 말하면 그 뿐이었다.

이 책은 재밌다. 그러니까,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책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몇 시간동안 꼼짝안고 앉아서 책을 읽는게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가끔 이런 책들을 만나면 내가 지금 순간이동을 한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재밌다는 말이다.

처음 책 소개를 봤을때는 첼리스트와 저격수와의 사랑이야기인가, 하는 등의 상상을 했다. 물론 상상일 뿐이었다. 이 책은 사라예보라는 지역의 내전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내전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제목과 다르게 첼리스트의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첼리스트의 연주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고, 그래서 물을 구하기 위해 가는 길은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살기 위해 죽음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전쟁이란 참으로 냉혹하다. 전쟁 속에서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고 목숨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는 생각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가끔 그런 순간에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인간은 목숨 그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당장 내일 마실 물도 없는데, 첼로의 선율이 귀로 들어올 수 있을까? 첼로의 선율에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설마, 라고 생각 했지만 만약 설마, 가 맞다면 첼리스트가 22일 동안 연주를 계속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빵을 얻기 위해 기다리다 희생당한 22명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첼로를 연주했다고 했지만, 오히려 슬픔을 위로 받은 사람은 산 사람들이었다. 내전에서 힘들게 살아남아 기진맥진한 사람들이야 말로 아름다운 선율에 위로를 받았다. 인간다운 삶을 영휘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사람들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약을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총이 날아다니는 거리에 발을 내미는 에미나나 자신들이 먹을 물을 떠오는 것조차 힘든데 자신이 평소 좋아하지 않았던 아래층에 사는 리스톱스키 부인의 물까지 떠다 주는 케난의 모습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해도 사람의 영혼까지 파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전쟁중에서도 삶은 지속된다. 그리고 인간은 선택한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그런데 그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같이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은 고매하다. 내가 위험에 처하더라도, 설사 그게 죽임일지라도 무고한 사람에게 총을 겨누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는 애로의 모습이 떠오른다. 전쟁은 인간을 파괴할 수 있으나, 누구나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공짜로 생긴책이라고 책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가치가 배가 된다.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벤트에 당첨되어 얻은 책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행운아 처럼 느껴졌다. 문학동네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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