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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통의 편지 -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ㅣ 나무픽션 6
설흔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23년 2월
평점 :
시대는 늘 과거를 조명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글과 정신, 태도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고자 한다.
이황의 공부법 혹은 인생관을 다룬 이 책은, 가상의 제자를 빌려
우리에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공부의 기본을 일러주고 있다.
올해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혹은 공부의 벽에 부딪힌 이들에게 한 줄기 돌파구가 되어줄 책이 아닐까. 곁에 두고 힘든 시기마다 들춰보면 좋을, 힘이 되는 문구들이 많다.
나 또한 이제 공부의 문턱에 들어선 딸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가득 담겨 힘든 시기마다 넌지시 꺼내 주고 싶다. 공부가 인생의 마지막에야 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안달복달하되 조바심 내지를 않기를, 힘든 시기에 꾸준함의 힘으로 그저 나아가 주기를 바란다. 그 산을 함께 넘어줄 수는 없지만 좋은 책과 문구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주옥 같은 이황의 가르침을 몇 자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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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비법은 없습니다. 당연한 것들을 꾸준히 하는 방법만이 있을 뿐입니다. (중략) 먼저 공부는 질문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學問이란 問學, 그러니까 궁금한 것을 묻는 것입니다. 궁금하지 않으면 공부는 결코 시작되지 않습니다. <중용>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순은 크게 지혜로운 자다. 순은 묻기를 좋아하고 평소의 일상적인 말들을 곰곰이 살피길 좋아한다.‘ 순은 성인이지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묻기를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58쪽
스스로 한계를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중략) 공자께서는 ‘힘에 부친다는 것은 힘껏 달리다가 쓰러질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니라. 그런데 자네는 제대로 달려 보지도 않고 미리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선을 긋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9쪽
못난 것을 막는 데는 부지런함보다 나은 것은 없는 법입니다.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는 각오로 공부에 뛰어들어야 비로소 결실을 볼 수 있습니다. 공자의 애제자인 안희는, 요순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난들 요순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 하고 당찬 각오를 다져 가며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스승을 찾아 헤매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부에 생각이 없는 이들이 흔히 스승 탓을 하고 책탓을 하는데, 공부에 뜻만 있다면 스승은 우리 주위 어디에든 있습니다. 현명한 이를 보면 어깨를 겨루려 힘쓰고 현명하지 못한 이를 보면 안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살피십시오. 현명한 사람뿐만 아니라 나보다 못난 사람도 스승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언제 어느 때가 되었든 누구를 만나든 공부가 아닌 것이 없지요. 제자 말씀드린 이 몇 가지를 잊지 않으면 지금 당장 공부를 시작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59-61
네, 선생님, 공부하는 것은 거울을 닦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거울은 본래 밝은 것이지만 먼지와 때가 겹겹이 끼면 그 밝음을 잃게 되지요. 그런 때는 약을 묻혀 잘 닦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에 걸쳐 더러워진 거울을 닦기란 여란 힘든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처음 닦을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온 힘을 다해 닦아도 거울은 그다지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온 힘을 다해 닦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비로소 원래의 밝음을 되찾을 수 있지요. 그러나 일단 닦아 놓지만 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닦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드는 힘은 줄어들고, 거울은 이전보다 훨씬 빨리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공부도 그렇습니다. 처음의 고비를 넘기기가 가장 힘듭니다. 아무리 해도 나아지는 게 느껴지지 않아 속이 터질 지경이지요. 포기의 유혹도 따릅니다. 바로 그때가 중요합니다. 힘들더라도 쉬지 않고 공부에 매진해 그 고비를 무사히 넘기면 그 뒤로는 고통스럽기는커녕 날로 거울이 밝아지는 듯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103쪽
동쪽 벽에 나란히 걸려 있는 백낙천의 시구 ‘번거로움을 막는 데는 고요함보다 나은 것이 없고, 못난 것을 막는 데는 부지런함보다 나은 것이 없다’와 주자의 <경재잠>, 배움은 마치 닿지 못하는 것처럼 하며, 잃어버릴까 안달하듯 해야 하느니라는 구절이 논어에 나옵니다. 스스로 안달복닥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공부를 잘할 수가 없다는 거이지요. 그런가 하면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조급해 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말로 표현하려 애쓰지 않으면 퉁겨 주지 않는다. 그러니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 조급해 하고 안달복달하는 그대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공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꾸준히 공부하는 것으로써 고비를 넘겼다면 이제 공부를 즐길 차례입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공부의 목표는 무지를 극복하는 일입니다. 목표가 목표인 만큼 싫더라도 일정한 시간 이상을 지속적으로 투자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 시기를 넘어서면 비로소 좋아서 공부를 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억지로 해야 할 것은 점점 없어지고 공부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참으로 좋기 때문에 솔개가 하늘을 날듯 물고기가 물속에서 뛰놀듯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의 최종단계는 즐기는 단계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더 이상 알고 모르는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뼈 빠지게 가난해 하루하루 먹을 음식은 물론이고 마실 물까지도 걱정해야 했던 공자의 수제자 안희가 그런 처참한 상황에서도 늘 즐거워했던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그가 공부를 즐기는 단계에 이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먼 훗날의 이야기처럼 들리겠지요. 그러나 공부를 시작하고 더 어려운 단계에서 굴복하지 않고 넘어서려는 마음을 먹은 이상 아는 것,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으로 이어지는 공부의 단계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알고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자신을 더욱 채찍질할 수 있을 테니까요. 122쪽
‘한 발짝 걷는 동안에도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지 못한 적도 많았다. 한 발짝 걷는 그 짧은 순간에도 온갖 잡스러운 것이 쉼 없이 떠오르는 바람에, 애초에 무엇 때문에 걷기 시작했는지도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211쪽
글쎄, 그 책에 나오는 문장을 다 안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진정으로 안다고 하는 것은 문장의 의미를 아는 걸 넘어서 내 일상 자체가 배운 대로 행해질 때 가능한 것이야. (중략) 결국 오늘날의 선생을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끝없이 공부에 매진하는 미련함과 끈기였다. 돌석은 붓을 들어 미련함으로 장애를 돌파하라고 적었다.
마음을 한결같이 지니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라. 211쪽
‘논어를 읽고 난 후에 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전혀 논어를 읽은 자가 아니라. 너는 구절구절을 읽고 깨달음을 얻는 것은 물론 너무 기뻐 춤추고 발을 구르는 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겠다.’ 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