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달리기 - 아침의 달리기, 밤의 뜀박질 아무튼 시리즈 33
김상민 지음 / 위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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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란 대강 시간을 때우는 일이 아니다. 여분의 시간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양팔과 다리, 호흡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진 이 단순한 행위가 한강과 러닝크루, 서울의 숨겨진 러닝코스, 지난한 훈련과 닳은 훈련용 러닝화 그리고 파리 마라톤 등을 거쳐 어엿한 하나의 취미로 잡리잡는 과정을 이 책은 충실히 옮겨적는다. 그렇다. 시간에 형태가 생긴다는 것은 곧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취미는 이야기다. 취미는 삶에 이야기를, 의미있는 굴곡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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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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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서 그런가.. 그냥저냥 읽을 만한 정도. 영화판을 훔쳐보는 관음증적 재미는 있다. 값싼 힐링 에세이식 마무리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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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언어 - 직장 언어 탐구 생활
김남인 지음 / 어크로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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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은 없고 (따분한) 지식과 (지적 허세에 가까운) 인용의 짜집기인데, 이런 종이 뭉치가 출판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심지어 15,000원!) 나로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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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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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약 정용준이라는 소설가를 기억해야만 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 문장일 것이다.

쉼 없이 밀려드는 짧은 파도 같은 문장들.


2.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몇몇 서평을 훑어 보았다.

한국 작가 중 드물게 정통소설을 제대로 쓰는 작가라는 평이 몇 있었다.

사실 그 의견에 갸우뚱했다.

나에게 이 단편들은

서사가 너무 해체되어 있고, 캐릭터가 너무 소독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소설 읽는 즐거움이 별로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뭐랄까,

2, 30 페이지 분량의 아주 긴 시(詩)를 읽는 듯했다.


3.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시적 표현의 잦은 사용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예를 들면 "얼굴을 벗는다", "그녀는 헝겊처럼 너무도 쉽게 바닥으로 쓰러졌다."와 같은.

현실에 비현실을 뒤집어 씌우는 듯한 비유들.


4.

세상 모든 소설을 잘 쓴 것과 못 쓴 것으로

양분해야만 한다면

'가나'는 아마 전자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정용준의 소설을 더 찾아 읽고 싶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너무 낮은 조도와 너무 높은 습도.

세이렌의 노랫소리 같은 말과 말과 말들

그리고 침묵.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에게는.

바다 속 시체의 독백 같은 것을

굳이 더 읽고 싶진, 않다.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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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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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연수 작가님, 소설에서만큼은 아재 개그 자제 부탁이요.

   예시 : "엄마한테 안산 쪽에 무슨 연고가 있었나?" "연고는커녕 반창고도 없지." (P131)


2. 좋았던 단편과 별로였던 단편이 극명하게 나뉘었던 소설집.


3. 일단 표제작 '사월의 미, 칠월의 솔'부터. 이 단편은 실망스러웠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인 팸 이모 때문. 종이 위에 쓰여진 인물 같다고 해야할까. 대사나 이런 것들이, 너무 소설적이고 영화적인 느낌. (나이 60의 할머니라는 설정만 아니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읽었을 지도...) 그래서인지 팸 이모라는 인물에게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말미에 등장하는 정감독의 아들도 마찬가지. 사춘기 시절, 아버지 내연녀의 정수리를 보고 슬픔을 느끼는, 그런 성인(聖人)이 이 지구 상에 존재한다니. 맙소사. 이 무슨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결말인가.


4. 가장 좋게 읽은 단편은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소설은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진실에 가까운 글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어떤 노작가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들려준다. 


나는 내가 무엇을 쓰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예컨대 내가 사랑했던 여자의 귀밑 머리칼에서 풍기던 향내나

손바닥을 완전히 밀착시켜야만 느낄 수 있는 어덩이와 허리 사이의 굴곡 같은 것들을

검은색 볼펜은 묘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볼펜을 쥐는 즉시 머릿속에서 줄줄 흘러나온 검은색 문장들이 아니라

쓰지 못하고 있는 빨간색 문장들을 써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온몸에 남은 오감의 경험을 문장으로 표현해야 할 텐데,

그건 쉽게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아무리 잘 쓴 문장도 실제의 경험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작가의 고통이란 이 양자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했다.

빨간색 볼펜을 손에 들고 괴로워하던 나는

그 고통이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73)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쓴 "24번 어금니로 남은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어쩌면 나의 연애 전체가 거대한 환상에 기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가 거대한 환상이었다면 그 연애의 종말이 낳은 고통 역시 거대한 환상일 수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그녀가 사온 한 다스의 볼펜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그중에는 파란색 볼펜도 있었다. (P175)


이 파란색 볼펜으로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어떤 문장들일까?

그건 비 내리는 새벽, 아무도 없는 동물원을 가득 메운 침묵 같은 문장들일 것이다. (P177)


5. "쭈쌩뚜니피니를 듣던 밤"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죽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터널을 찾아가는 남매라니. 소재부터 참신했다. 펜을 꾹꾹 눌러 그린 그림 같은 후반부 내용도 예쁘고 또 슬펐다. "일기예보의 기법"은 소재와 내용이 다소 뻔하지만 (스푸트니크 2호와 라이카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유치했다.) 후반부가 살렸다. 미경이 짝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일부러 틀린 일기예보를 내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우는 시늉을 하네"는 이 소설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주인공의 아버지. 평범한 진심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 요즘엔 그런 사람들이 내 가슴을 두들긴다. 너무 아플 정도로.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이 소설집에서 가장 경쾌하고 발랄하다. 하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저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내밀한 아픔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자세,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어딘가 박민규가 떠오르는 문장과 구성이 썩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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