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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평점 :
1.
만약 정용준이라는 소설가를 기억해야만 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 문장일 것이다.
쉼 없이 밀려드는 짧은 파도 같은 문장들.
2.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몇몇 서평을 훑어 보았다.
한국 작가 중 드물게 정통소설을 제대로 쓰는 작가라는 평이 몇 있었다.
사실 그 의견에 갸우뚱했다.
나에게 이 단편들은
서사가 너무 해체되어 있고, 캐릭터가 너무 소독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소설 읽는 즐거움이 별로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뭐랄까,
2, 30 페이지 분량의 아주 긴 시(詩)를 읽는 듯했다.
3.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시적 표현의 잦은 사용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예를 들면 "얼굴을 벗는다", "그녀는 헝겊처럼 너무도 쉽게 바닥으로 쓰러졌다."와 같은.
현실에 비현실을 뒤집어 씌우는 듯한 비유들.
4.
세상 모든 소설을 잘 쓴 것과 못 쓴 것으로
양분해야만 한다면
'가나'는 아마 전자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정용준의 소설을 더 찾아 읽고 싶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너무 낮은 조도와 너무 높은 습도.
세이렌의 노랫소리 같은 말과 말과 말들
그리고 침묵.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에게는.
바다 속 시체의 독백 같은 것을
굳이 더 읽고 싶진, 않다. 미안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