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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조카 (기프트 북) - 나니아 나라 이야기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스토리 북스)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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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순으로는 ‘마법사의 조카’가 가장 앞서는데 어째서 6번째로 출판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는걸까요? 아니면 그냥? ㅡ,.ㅡ)

1편-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어보신 분들은 거기에 등장하는 논리적이지만 나니아를 부정하지는 않는 디고리 교수님에 대해 신기하게 여기실텐데… 바로 지금 그 비밀이 드러납니다. ^^

디고리(어린 시절의 디고리)는 어머니의 병으로 인해 돌봐줄 사람이 있는 런던으로 오게됩니다.

그리고 옆집에 사는 폴리라는 여자아이와 친해지는데, 어느날 삼촌의 방에 잘못 들어갔다가 큰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삼촌이 폴리를 다른 세계로 보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폴리를 구하기 위해 디고리 역시 다른 세계로 가게 됩니다.

이런 저런 세계를 돌아다니며 위험한 상황도 겪고 다시 우리 세계로 돌아오지만 같이 따라오게된 마녀로 인해 할 수 없이 또 다른 세계로 가게 됩니다. (마녀를 데리고…)

그 곳이 바로 나니아입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나니아가 창조되기 직전이며, 그들은 나니아의 창조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녀를 나니아에 이끌고 온 댓가로 디고리가 임무를 맡게 됩니다. 그런 디고리에게 마녀는 ‘어머니의 병’을 생각해보라며 유혹을 하고… 과연 디고리는 임무를 마치고 우리 세계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마법사의 조카에서 가장 설레이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아슬란이 나니아를 창조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황량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것이 10분만에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눈앞에서 볼 수 있겠죠. 다시, 여름이 10분만에 온다면 우리는 그 새싹이 식물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니아의 창조가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아슬란이 노래를 부르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별이 생기고 여기저기서 갑자기 새싹들이 자라더니 순식간에 나무가 되고, 이곳 저곳 땅에서는 동물들이 튀어나오고… (심지어는 쇠막대기조차 땅에 심겨지자 등불로 자랍니다.)

이렇게 생명력 넘치는 분위기를 느끼며 얼마나 설레이는지요.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아슬란의 창조 도구가 ‘노래’라는 것입니다.

JRR톨킨의 ‘실마릴리온’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감이 잡히실텐데, ‘실마릴리온’에서도 세계의 창조에 ‘노래’가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루이스는 아마도 톨킨과 함께한 모임에서 톨킨이 읽어주는 그런 구절들을 새겨두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무가 살아있다는 설정도 톨킨과 비슷한 부분이구요.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반지’입니다. 톨킨이 ‘반지 원정대’를 통해 ‘반지’라는 상징을 보여주었는데요. ‘마법사의 조카’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도구가 바로 ‘반지’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반지가 4개 있습니다. 초록색 두개, 노란색 두개.) 이것도 아마 톨킨에게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톨킨과 루이스가 한 모임에서 서로의 작품을 낭독하는 시간들을 가졌다는 걸 생각해보면…)

나니아의 창조 모습이 설레이는 부분이었다면 디고리가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은 엄숙하기까지 합니다.

아슬란에게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부탁할 때, 아슬란이 짧게 보여주었던 눈물의 반짝임을 떠올리며 그는 ‘젊음의 사과’를 어머니에게 가져가지 않고 아슬란에게 돌려주러 옵니다.

물론, 그 사과를 땅에 심자 사과나무가 자라나고 그 사과나무에 열린 열매를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어머니의 병은 낫습니다. ^^

이 부분에서 특히나 루이스가 가슴아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디고리의 상황과 루이스 자신의 어렸을적 상황이 굉장히 비슷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외국에 계시고 어머니는 몸이 아프신 상황… 그러나 디고리의 어머니가 병에서 낫게 되신 것과는 달리 어린 루이스는 어머니를 잃게 됩니다. 루이스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이때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매일밤 어머니의 병을 위해 기도했음에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유에서 ‘정말 하나님이 계신건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루이스가 믿음을 되찾고 쓴 동화에서는 디고리의 어머니가 아슬란의 도움으로 병에서 낫게 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 그런 루이스의 담담하고도 확신에 찬 심정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 합니다.

디고리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학자가 됩니다. (이 설정도 루이스 자신과 비슷하지요?) 그리고 어머니께 드렸던 사과의 속부분을 땅에 심었는데 거기서 사과나무가 자라게 되지요.

그 사과나무가 폭풍에 쓰러지자 나무를 잘라 옷장을 만들게 되고, 그 옷장이 바로… 바로… 감이 오시죠? ^^ 1편에서 루시가 들어갔던 그 옷장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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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똥 - 비디오 테이프
(주)아이타스카 스튜디오 제작 / 인피니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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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을 보았습니다.

이루마가 모든 곡들을 만들었다는 것도,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라는 것도…

내용에 비하면 크게 주목받을만한 것들이 아니더군요.

참 좋다는 느낌이랄까요?

이 이야기는 어떤 강아지똥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강아지똥은 여러 사물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쓸모없고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여기게 되지요.

그러다가 자신도 쓸모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 그것에 자신의 모든 삶을 던집니다.

동화책마냥… 순수하고 밝은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분명 목적이 있어서 태어난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성경적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쉽게 풀어준 작가에게도 고마움과 존경을 느낍니다.

맥스 루케이도라는 외국 작가의 책이 생각났습니다.

‘너는 특별하단다.’ …

내용은 비슷합니다. ^^

ps. 한가지 단점이라면, 진행이 너무 느립니다.

그래서 오히려 어린 아이들의 이해가 쉬울 수도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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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독시 -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G. K. 체스터튼 지음, 윤미연 옮김 / 이끌리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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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체스터턴은 추리소설인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작가이다. 어떤 이는 ‘에드거 앨런 포보다 더 훌륭한 추리소설가’라고 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체스터턴은 일반소설, 신학, 전기, 미술, 시 등에서도 100권이 넘는 책을 써낸 인물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내가 체스터턴을 알게 된 것은 C.S.루이스를 통해서이다. 루이스는 체스터턴의 여러 작품들을 읽었고 그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스승이 누구냐고 물었다면 조지 맥도날드와 G.K.체스터턴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추리소설은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것이 많지만, 신앙 관련 서적의 경우 ‘오소독시(정통신앙)’이 유일한 것 같다. 나도 번역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가 교회 도서관에 비치된 새 책들을 훑어보던 중 발견하게 되었으니까…

책 표지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흔히 ‘정통신앙’은 엄숙하고 지루하고 무사 안일한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착각이다. 이제껏 ‘정통신앙’만큼 모험에 가득 차고 흥미진진한 것은 없었다.

체스터턴은 책을 통해서 1900년대 철학의 흐름을 명쾌히 짚어내며, 그 흐름들이 공통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정통신앙’에 대해 ‘정통신앙에는 잘못된 것이 없으며 오히려 공격하는 그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낸다.

교회의 모습들에 불평불만이 많았던 터라 쉽게 공감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많았었는데, 읽다보니 체스터턴이 말하는 ‘정통신앙’과 ‘교회’를 구분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교리’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다. 다만, 인간이 워낙 죄로 똘똘뭉친 존재이므로 그 어떤 선한 구조에서도 악한 결과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 뿐.

또, 체스터턴은 ‘정통신앙’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보호해주며, 삶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중세의 암흑시대에 대해서도 ‘암흑과도 같은 시대에서 문명을 이끌고 간 것은 바로 정통신앙’이라고 주장한다. (프랜시스 쉐퍼가 나중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문장만을 놓고 보면 수많은 반박들이 나올만하다. 그러나 체스터턴은 그 수많은 반박들이 정말로 반박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짚어낸다. 그들은 자신들이 없애야한다고 주장하는 ‘정통신앙’에 돌을 던진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은 자기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해 돌을 던지고 있었던 셈이다.

C.S.루이스 류의 실소를 자아내는 문장들이 많지 않아서 조금 따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승인지라 탁월함은 변함이 없다. 체스터턴역시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이후부터 계속해서 되풀이되던 그 외침의 연장선에서 선배들의 수고를 물려받고 있다. 철학사조에 관심이 있거나, 변증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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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귀향
C.S.루이스 / 보이스사 / 198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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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직 정식으로 번역되지 않은 C.S.루이스의 책이다. 영어 제목으로 「The Pilgrim’s Regress」이며, 이것은 번연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를 패러디했다고 본인이 밝히고 있다.

주인공은 어릴 때 꽃 사이에서 어렴풋이 맛보았던 기쁨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가 사는 나라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지주님이 다스리는 영지이며, 지주님을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때가 차면 (그 ‘때’란 지주님만 알고 있단다.) 사람들은 소작하던 땅에서 지주님이 계신 땅으로 가야만 한다.

주인공은 여러 인물로 대변되는 철학들을 하나씩 거쳐간다. 10대의 왕성한 성적 호기심을 넘어 매스미디어와 프로이트의 심리학에까지 넘어갔다가 이성의 도움으로 제 길로 돌아오는 등… 이러한 모험들을 통해 루이스는 새로운 철학 혹은 세대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이 가는 길은 그 나라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데, 그 길의 북쪽으로 갈수록 황무지가 늘어나며, 살고있는 사람들도 감성이 메마른 사람으로 표현된다. 북쪽 끝에는 공산주의자들과 스탈린이 살고 있다. 반면, 남쪽에는 풍요로운 대지가 펼쳐지다가 점점 진흙탕으로 바뀌며 마침내 늪지대가 펼쳐진다. 남쪽 끝에는 마술사들이 살고 있다.

이렇게, 길의 북쪽과 남쪽을 갈라둠으로써 루이스는 당시의 철학사조들을 (또한 그 이전의 철학들도) 크게 둘로 쪼개어둔다. 이성을 쫓다가 감성을 버린 자들과 감성에 집착하여 이성이 혼돈된 자들.

주인공은 북쪽과 남쪽을 오가며 방황하게 되며, 이성(Reason)이라는 말탄 여기사의 도움을 여러번 받게 된다. 결국 그는 낭떠러지 앞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 낭떠러지 너머에 자신이 그렇게 그리던 섬이 있지만 낭떠러지를 건널 방법을 찾지 못한다.

여기에 ‘교회’라는 노파가 등장하며, 그 옷차림의 남루함과 얼굴의 쪼글쪼글함에 상관없이 자신만이 낭떠러지를 건널 유일한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결국 루이스도 교회를 해결책으로 제시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순전한 기독교」의 마지막에서도, 특정 교파에 속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유익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이 모험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철학을 반영한다. 특히 프로이트와 세대주의를 평가하는 내용에서는 정말 무릎을 치며 감탄할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다만, 내 지식이 좀 부족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도 몇군데 있었다. 특히 지혜wisdom을 만났을 때 그와 대화했던 내용은 흐름을 따라가기가 참 어려웠다. 번역체에다가 말도 안되는 문장들도 좀 있었고… (홍성사에서 정식 출간을 준비중이라니 어서 나오길 기대해봐야지… ^^)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루이스는 비유로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더더욱 그 능력이 놀랍게 느껴졌다. 흔히 알레고리(비유)를 전면에 드러내는 작품은 구멍이 숭숭뚤린 갑옷을 입고 전쟁에 나아가는 기사와 비슷하다. 왜냐하면 논리 자체에 대한 반박보다도, 비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빈틈에 대한 공격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했다는 점이 참 놀랍다. 루이스는 쓸데없는 완벽주의를 추구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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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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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1997년 영국 전국의 독자들이 20세기 최고의 영문학으로 선택한 『반지의 제왕』은 2002년 12월 문학의 범주를 넘어 영화로 개봉되었고, 그 흥행은 가히 소설의 흥행과 견줄만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흥행이 예외는 아니었으며, 더 나아가 국내에서 저급 문화로 취급되던 판타지 문학의 위치까지 격상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양에서는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판타지 문학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아온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국내에서는 『반지의 제왕』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판타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니아 연대기』의 첫 번째 책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2005년 크리스마스 개봉을 목표로 영화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뻐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금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었다.

  사실, 이번에 읽으며 주목한 점은 『나니아 연대기』 곳곳에 나타나는 비유들이었으나, 그 비유들이 『반지의 제왕』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고 몇몇 소재들도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였기에 이 리뷰에서는 그러한 연관성을 좀 더 자세히 다뤄보고자 했다.

 

2. 본문

가. 『나니아 연대기』란?

  20세기 3대 판타지 문학의 하나로 꼽히는 『나니아 연대기』는 1950년 그 첫 번째 책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출간되었으며, 이후 1년마다 한권씩 총 7권의 시리즈가 출간되어 다양한 독자층의 사랑을 받았다. 1957년에는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마지막 전투』가 영국 도서관 협회로부터 ‘카네기 상’을 받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판타지 문학의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기도 하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반지의 제왕』과는 20세기 3대 판타지로 손꼽히기도 하는데, 사실 『반지의 제왕』과 짝을 이루는 C.S. 루이스의 작품은 『나니아 연대기』라기 보다는 『우주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니아 연대기』를 읽는 동안에도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하였고, 두 작품 모두 판타지 세계를 소재로 하기 때문에 비교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나. 각 권의 줄거리

  1) 『사자와 마녀와 옷장』

  피터, 수잔, 에드워드, 루시는 옷장 안에 들어갔다가 '나니아 나라'에 가게 된다. 그곳은 크리스마스가 없는 영원한 겨울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하얀 마녀가 마법을 걸었기 때문이다. 나니아의 모든 생물들이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아슬란이라는 사자로, 그는 나니아의 원래 주인이었다. 에드워드는 하얀 마녀에게 속아서 일행을 배신하지만, 결국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슬란의 편에 서게 된다. 그런데, 먼 바다의 황제(아슬란의 아버지)가 만든 법에 의하면 배신자의 목숨은 하얀 마녀가 취할 수 있다. 그래서 하얀 마녀는 에드워드의 목숨을 요구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아슬란이 에드워드 대신 죽게 되지만, 마녀가 모르는 마법으로 인해 아슬란은 부활하게 되고 결국 나니아를 되찾게 된다.

 

  2) 『캐스피언 왕자』

  캐스피언은 나니아 나라의 왕자이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숙부가 대신 나니아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자식이 없던 숙모에게 아기가 생기자 목숨에 위협을 느낀 캐스피언은 궁전에서 도망을 치게 된다. 그리고 숙부에 맞서 싸울 동지들을 찾게 되는데, 그 동지들이 바로 옛 나니아의 '말하는 동물들'이다. 하지만 전력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전투에서 계속 패하게되고 캐스피언은 마지막 방법으로 '마법의 뿔나팔'을 불게 되는데, 그로 인해 피터와 수잔과 에드워드와 루시가 나니아로 돌아와 캐스피언을 돕고 결국 나니아를 되찾게 된다.

 

  3) 『새벽 출정호의 항해』

  유스터스네 구석진 방에 걸려있던 '바다 위의 배' 그림을 보고 있던 에드먼드와 루시와 유스터스는 그 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배의 주인은 '캐스피언 왕자'로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돕던 7인의 영주를 찾기 위해 항해를 하던 중이었다. 항해 도중 노예 상인에게 잡히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7인 중 한 명의 영주를 만나 도움을 얻고, 론 제도의 무너져가는 통치권을 바로잡기도 한다. 그 후 다섯 개의 섬을 거치면서 여러 모험을 하다가 바다의 동쪽 끝에 닿게 된다.

 

  4) 『은의자』

  유스터스와 질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아이들 때문에 아슬란님께 도움을 요청한다. 그 결과 나니아로 오게 된 유스터스와 질은 캐스피언 왕의 아들인 릴리언 왕자를 찾기 위한 네 가지 명령을 아슬란에게 받게 되고,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퍼들글럼과 일행이 되어 여행을 하던 중 여러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명령 네 가지 중 세 가지를 어기게 된다. 그 와중에 난쟁이들에게 잡혀 지하세계로 끌려가 되는데 거기서 릴리언 왕자를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 명령을 생각해 낸 그들이 릴리언 왕자를 구해내자 이번에는 녹색 옷의 마녀가 그들을 가로막는데 퍼들글럼과 유스터스의 용기로 마녀를 물리치고 나니아로 돌아오게 된다.

 

  5) 『말과 소년』

  나니아 남쪽에 있는 칼로르멘이라는 제국에 살던 샤스타는 자신을 팔아버리려는 양아버지에게서 탈출하여 나니아로 가고자 한다. ‘브레’라는 말과 귀족신분인 ‘아라비스’, 그녀의 말인 ‘휜’과 동행하며 칼로르멘을 탈출하고자 하는데, 마침 칼로르멘의 왕자인 라바다슈는 나니아를 침공하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샤스타는 나니아와 칼로르멘의 중간에 위치한 아첸렌드에 그 사실을 알려주게 되고, 아첸렌드와 나니아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편 샤스타는 원래 아첸렌드의 왕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어른이 된 후에 아라비스와 결혼하게 된다.

 

  6) 『마법사의 조카』

  디고리는 어머니의 병으로 인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 런던으로 이사오게 된다. 디고리는 옆집에 사는 폴리와 친해지는데 어느날 삼촌의 방에 잘못 들어갔다가 삼촌의 계략으로 인해 다른 세계로 가게 된다. 멸망 직전의 ‘찬’이라는 세계에서 마녀를 데리고 오게 된 그들은 또다시 창조가 시작되고 있던 ‘나니아’로 가게 된다. 나니아에 마녀를 데리고 온 책임 때문에 디고리는 서쪽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를 가져오라는 임무를 받게 되고, 마녀의 유혹을 이겨낸 디고리는 결국 나니아를 지키게 될 뿐 아니라 어머니의 병까지 고치게 된다.

 

  7) 『마지막 전투』

  교활한 원숭이 쉬프트는 폭포에 떠내려오던 사자 가죽을 발견하고는 어수룩한 당나귀 퍼즐을 이용하여 가짜 아슬란 행세를 한다. 쉬프트는 퍼즐을 마굿간 속에 숨겨두고, 자신은 아슬란의 대리자 행세를 하며 나니아의 동물들을 호되게 부려먹는다. 당시 나니아의 왕이던 티리언은 그것을 저지하려다가 오히려 잡혀버리고 꿈 속에서 나니아의 옛 왕들을 만나 도움을 청하는데, 그들 중 유스터스와 질이 가장 먼저 나니아에 도착한다. 이들은 쉬프트가 끌고 온 칼로르멘 사람들에 대항하여 나니아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궁지에 몰리게 되고, 결국 마굿간 안으로 잡혀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서 그들은 또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쉬프트와 칼로르멘 사람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티리언과 그 일행은 아슬란과 함께 나니아가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다. 『반지의 제왕』과의 비교

  1) 묘사의 사실주의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실수와 잘못들을 저지름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사실적으로 보인다.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에드워드는 아슬란을 배신했다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전투에서 누구보다 용감히 싸우며 더 이상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끔씩 예전의 나쁜 버릇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캐스피언 왕자와 항해 도중 발견한 ‘죽음물 섬’에서는 황금의 유혹에도 잠시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새벽 출정호의 항해』에 처음 등장하는 유스터스의 모습은 이기적인 사람에 대한 탁월한 묘사인데, 그가 쓴 일기를 통해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얼마나 잘 합리화시키는지를 볼 수 있다. 다음은 새벽 출정호가 폭풍우를 만나 물과 식량이 부족해진 동안 다른 사람들이 잠자는 틈을 타 몰래 물을 마시려고 했던 유스터스가 쓴 일기의 일부분이다.

  • 한밤중에 열이 나서 물 한 잔을 꼭 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깨어났다. 어떤 의사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 사실 나는 다른 사람을 깨워서 물을 달라고 할 생각이었으나 밤중에 남을 깨운다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행동 같았다. 그래서 … 캐스피언과 에드먼드를 깨우지 않으려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

  『은 의자』에서는 질과 유스터스가 땅에 새겨진 글자들을 찾지 못하고 헤메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바로 글자들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그것이 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 글자들이 너무 크고 명확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인데, 이것은 『반지의 제왕』에서 모리아 광산 입구의 암호를 - 모든 것을 알 것만 같은 - 간달프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떠오르게 했다.

  이러한 묘사들이 독자를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나니아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과의 괴리를 조장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나니아의 세계에 빠져들수록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인간의 부족함에 대한 묘사들을 통해, 현실을 더욱 현실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2) 성경의 반영

        가) 창조와 노래

  두 작가 모두 자신들의 작품에서 창조의 도구로 ‘노래’를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마법사의 조카』에서는 나니아를 창조하는 중심에 ‘아슬란의 노래’가 있다.

  •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이 소리들은 별을 부르는 노래이며 그 굵직한 첫 번째 소리가 별을 불러내어 노래 부르게 한 것임을 알 수 있었으리라. … 사자의 노래는 노랫말도 없고 가락도 없었지만 계속해서 바뀌면서 나니아의 이곳저곳을 창조하고 다녔다.

  『반지의 제왕』에는 창조를 묘사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지만 『반지의 제왕』의 배경 신화격인 『실마릴리온』에서 그 장면을 찾을 수 있었다.

  • 일루바타르가 아이누족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모아 그들에게 위대한 선율을 알려 주었다.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었던 선율로써 너희가 위대한 음악을 조화롭게 만들기를 명하노라. … 그리고 너희를 통해서 위대한 아름다움이 노래로 깨어나는 것을 기뻐하리라.”

  『  마법사의 조카』에서 아슬란의 노래가 별들의 노래를 불러내고 별들의 노래와 조화를 이룬것처럼, 『실마릴리온』에서도 일루바타르는 아이누족에게 노래를 알려주며 조화를 이루라고 명한다. 그리고 아이누족의 노래가 세계를 만들어 낸다.

  한편 ‘노래’외에도 창조 묘사에서 비슷하게 등장하는 것은 ‘악의 개입’이다. 『마법사의 조카』에서는 나니아가 창조된 지 다섯 시간도 채 되지 않은 때에 악마가 들어온다. 그 악마는 바로 디고리를 ?아온 마녀인데 그녀는 나니아의 경계에 들어오지 못한 채 오랫동안 북쪽 땅에 머무르게 되며, 이후 힘을 키워 나니아를 영원한 겨울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사용하여 나니아의 불법적인 통치자가 된다. (이런 배경에서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시작한다.)

  『실마릴리온』에서는 ‘멜코르’라는 악의 세력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의 능력과 영광을 더 한층 높여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결국 ‘발리노르’에서 추방되어 중간계의 북쪽에 머물며 ‘사우론’을 그의 부관으로 삼게 되는데, 그 ‘사우론’에 의해 재앙이 닥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반지의 제왕』이 시작한다.)

 

        나) 그림자 땅

  C.S. 루이스에게 있어 이 땅은 천국의 복사판이나 그림자 혹은 청동거울에 비친 흐릿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나니아 연대기』의 곳곳에 나타나는데 특히 나니아의 멸망을 다룬 『마지막 전투』에서 가장 많이 드러난다.

  • 하지만 그건 진짜 나니아가 아니란다. … 그것은 언제나 여기 이렇게 있고 앞으로도 영원할 진짜 나니아의 복사판이나 그림자에 불과해. … 물론 다르기야 하겠지. 진짜 물건이 그림자와 다르고, 삶이 꿈과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란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중간계를 떠나는 모습에서 중간계는 회색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 프로도는 메리와 피핀에게 입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샘에게 입을 맞춘 다음 배에 올랐다. 돛이 펼쳐지고 바람이 불자 배는 천천히 긴 회색의 강어귀를 미끄러져 갔다.

  이런 장면은 두 작가에게 영향을 끼쳤던 조지 맥도날드의 『북풍의 등에서』에도 나타나며, 조지 맥도날드 역시 기독교인이었음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묘사들이 히브리서와 고린도전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으며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부분은 바로 예수의 생애,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장면일 것이다.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며, 거기에서 느끼는 감동은 기독교인들이 복음서에서 느끼는 감동과 외형적으로는 다르지만 내면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에드워드의 배신에 대한 결과로 아슬란이 죽는 장면은 그것이 예수의 죽음에 대한 비유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읽는다 하더라도, 다른 이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다는 사실만으로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예수의 부활 장면에 대한 묘사라고도 할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죽은 줄 알았던 간달프를 다시 만났을 때 아라곤 일행은 그의 머리칼과 옷이 햇빛에 반짝이는 눈처럼 하얗고, 눈은 햇빛처럼 꿰뚫어보듯이 빛남을 느끼게 된다.

  J.R.R. 톨킨이 묘사한 ‘빛남’의 이미지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부활한 아슬란을 수잔과 루시가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묘사되는데 이것은 성경 속 예수의 부활 장면에 대한 묘사와도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3) 악에 대한 관점

        가) 반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가장 흥미로운 소재는 바로 ‘반지’일 것이다. ‘절대반지’는 신비한 힘을 지녔지만 동시에 ‘악의 유혹’이기도 하다. 비록 그 속성은 조금 다르다하더라도 『마법사의 조카』에서 등장하는 반지역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반지에 대한 두 작품의 묘사를 살펴보자.

  •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반지를 바라보는 보로미르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 그 반지들은 … 크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반짝반짝 빛이 나는지 금방 눈에 확 띄었다. … 게다가 그 눈부신 반지들에는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었다.

두 작품 모두 반지를 묘사하는 부분에 사람의 탐욕을 묘사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나) 유혹

  『마법사의 조카』에서 ‘반지에 대한 탐심’에 넘어간 폴리가 여자아이라고 해서 그것이 성경에 나타나는 ‘원죄 과정에서의 하와의 잘못’을 의미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차라리 곧이어 묘사하고 있는 디고리의 ‘호기심으로 인한 잘못’과 더불어 일상적인 유혹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반지의 제왕』에서 거의 모든 유혹의 요소가 ‘반지’에 있는 것과는 다르게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다양한 유혹들이 등장하며 그 장면들은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인간의 심리 변화를 잘 나타내준다. 『마법사의 조카』에서 디고리가 겪었던 사과를 먹고 싶어지는 유혹을 살펴보면, 잘못을 합리화시키려는 생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정문에서 읽었던 경고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바뀌는지 보자.

  과연 한번쯤 맛을 본다고 해서 그렇게 나쁜 짓일까? 어쩌면 정문의 경고문이 꼭 명령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그저 충고일지도 모른다. 누가 충고에 신경을 쓰겠는가? 설사 그것이 명령일지라도 사과를 먹으면 꼭 그 명령을 어기는 짓이 될까?

 

  4) 도피주의라는 비난

  비평가들이 판타지 문학을 평가절하 할 때 가장 손쉽게 쓰는 말은 ‘도피주의(비현실적)’일 것이다. 이것은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런 비난에 대해 C.S. 루이스와 J.R.R. 톨킨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C.S. 루이스의 경우 판타지 문학이 독자들을 비현실적인 세계로 도피시켜 현실세계와의 괴리를 조장한다는 비난에 대해, 판타지에도 사실주의가 존재함을 밝혔으며 또한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소위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들이 오히려 독자들을 ‘잘못된 사실’로 인도한다고 말하였다.

  J.R.R. 톨킨은 ‘도피’라는 단어가 자주 경멸이나 안쓰러움의 어조로 사용된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감옥에 갇힌 사람의 예를 들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그것을 깨닫고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 교도관과 감옥 담장이 아닌 다른 문제를 생각하고 말할 때에라도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은 쪽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C.S. 루이스 역시 ‘어디로의 도피인가?’라는 질문을 함으로써 ‘도피주의’에 대한 비난 자체를 반박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두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이 ‘도피주의’ 혹은 ‘비현실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박이 된다고 생각한다.

 

3.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나니아 연대기』에 나타나는 『반지의 제왕』과의 비슷한 점이었다. 두 작품 사이에 많은 유사점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마도 두 작가의 관계에 있는 것 같다. C.S.루이스와 J.R.R.톨킨은 옥스퍼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인클링스라는 모임에서 같이 활동했으며, C.S.루이스가 불가지론을 떠나 기독교 신앙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를 톨킨이 마련해주기도 했다. 또한, 서로 간의 신앙에 다소 차이가 있었음에도 ‘신화와 복음서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작가의 생각이 일치했으므로, 작품에서도 비슷한 점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 아닐까?

  끝으로 작품에 담긴 내용이나 형식, 작품의 문학성에 있어서도 『나니아 연대기』가 『반지의 제왕』에 비해 모자라다고 느낀 부분은 없었기에, 『나니아 연대기』가 국내에도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리뷰를 마친다.

ps. 웹의 한계상 각주는 달지 않았으며, 대신 참고문헌을 올립니다.

 

참고 문헌

송태현, 『톨킨, 루이스, 롤링의 환상 세계와 기독교 판타지』, 살림출판사, 2003
Clyde S. Kilby, 양혜원 옮김, 『C.S.루이스의 기독교 세계』, 예영커뮤니케이션, 1999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사자와 마녀와 옷장』,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캐스피언 왕자』,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새벽 출정호의 항해』,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은의자』,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말과 소년』,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마법사의 조카』,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마지막 전투』,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허종 옮김, 『문학비평에서의 실험』, 동문선, 2002
C.S. Lewis, 강유나 옮김, 『예기치 못한 기쁨』, 홍성사, 2003
George MacDonald, 김옥수 옮김, 『북풍의 등에서』, 웅진닷컴, 2003
Humphrey Carpenter, 이승은 옮김, 『톨킨전기』, 해나무, 2004
Joseph Pearce, 김근주·이봉진 옮김, 『톨킨-인간과 신화』, 자음과모음, 2001
J.R.R. Tolkien, 김번·김보원·이미애 옮김, 『반지전쟁 2』, 예문, 1991
J.R.R. Tolkien, 강주헌 옮김, 『실마릴리온』, 다솜미디어, 1997
J.R.R. Tolkien, 김번·김보원·이미애 옮김, 『반지원정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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