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독시 -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G. K. 체스터튼 지음, 윤미연 옮김 / 이끌리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G.K. 체스터턴은 추리소설인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작가이다. 어떤 이는 ‘에드거 앨런 포보다 더 훌륭한 추리소설가’라고 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체스터턴은 일반소설, 신학, 전기, 미술, 시 등에서도 100권이 넘는 책을 써낸 인물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내가 체스터턴을 알게 된 것은 C.S.루이스를 통해서이다. 루이스는 체스터턴의 여러 작품들을 읽었고 그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스승이 누구냐고 물었다면 조지 맥도날드와 G.K.체스터턴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추리소설은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것이 많지만, 신앙 관련 서적의 경우 ‘오소독시(정통신앙)’이 유일한 것 같다. 나도 번역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가 교회 도서관에 비치된 새 책들을 훑어보던 중 발견하게 되었으니까…

책 표지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흔히 ‘정통신앙’은 엄숙하고 지루하고 무사 안일한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착각이다. 이제껏 ‘정통신앙’만큼 모험에 가득 차고 흥미진진한 것은 없었다.

체스터턴은 책을 통해서 1900년대 철학의 흐름을 명쾌히 짚어내며, 그 흐름들이 공통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정통신앙’에 대해 ‘정통신앙에는 잘못된 것이 없으며 오히려 공격하는 그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낸다.

교회의 모습들에 불평불만이 많았던 터라 쉽게 공감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많았었는데, 읽다보니 체스터턴이 말하는 ‘정통신앙’과 ‘교회’를 구분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교리’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다. 다만, 인간이 워낙 죄로 똘똘뭉친 존재이므로 그 어떤 선한 구조에서도 악한 결과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 뿐.

또, 체스터턴은 ‘정통신앙’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보호해주며, 삶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중세의 암흑시대에 대해서도 ‘암흑과도 같은 시대에서 문명을 이끌고 간 것은 바로 정통신앙’이라고 주장한다. (프랜시스 쉐퍼가 나중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문장만을 놓고 보면 수많은 반박들이 나올만하다. 그러나 체스터턴은 그 수많은 반박들이 정말로 반박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짚어낸다. 그들은 자신들이 없애야한다고 주장하는 ‘정통신앙’에 돌을 던진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은 자기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해 돌을 던지고 있었던 셈이다.

C.S.루이스 류의 실소를 자아내는 문장들이 많지 않아서 조금 따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승인지라 탁월함은 변함이 없다. 체스터턴역시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이후부터 계속해서 되풀이되던 그 외침의 연장선에서 선배들의 수고를 물려받고 있다. 철학사조에 관심이 있거나, 변증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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