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귀향
C.S.루이스 / 보이스사 / 1985년 4월
평점 :
절판


아직 정식으로 번역되지 않은 C.S.루이스의 책이다. 영어 제목으로 「The Pilgrim’s Regress」이며, 이것은 번연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를 패러디했다고 본인이 밝히고 있다.

주인공은 어릴 때 꽃 사이에서 어렴풋이 맛보았던 기쁨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가 사는 나라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지주님이 다스리는 영지이며, 지주님을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때가 차면 (그 ‘때’란 지주님만 알고 있단다.) 사람들은 소작하던 땅에서 지주님이 계신 땅으로 가야만 한다.

주인공은 여러 인물로 대변되는 철학들을 하나씩 거쳐간다. 10대의 왕성한 성적 호기심을 넘어 매스미디어와 프로이트의 심리학에까지 넘어갔다가 이성의 도움으로 제 길로 돌아오는 등… 이러한 모험들을 통해 루이스는 새로운 철학 혹은 세대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이 가는 길은 그 나라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데, 그 길의 북쪽으로 갈수록 황무지가 늘어나며, 살고있는 사람들도 감성이 메마른 사람으로 표현된다. 북쪽 끝에는 공산주의자들과 스탈린이 살고 있다. 반면, 남쪽에는 풍요로운 대지가 펼쳐지다가 점점 진흙탕으로 바뀌며 마침내 늪지대가 펼쳐진다. 남쪽 끝에는 마술사들이 살고 있다.

이렇게, 길의 북쪽과 남쪽을 갈라둠으로써 루이스는 당시의 철학사조들을 (또한 그 이전의 철학들도) 크게 둘로 쪼개어둔다. 이성을 쫓다가 감성을 버린 자들과 감성에 집착하여 이성이 혼돈된 자들.

주인공은 북쪽과 남쪽을 오가며 방황하게 되며, 이성(Reason)이라는 말탄 여기사의 도움을 여러번 받게 된다. 결국 그는 낭떠러지 앞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 낭떠러지 너머에 자신이 그렇게 그리던 섬이 있지만 낭떠러지를 건널 방법을 찾지 못한다.

여기에 ‘교회’라는 노파가 등장하며, 그 옷차림의 남루함과 얼굴의 쪼글쪼글함에 상관없이 자신만이 낭떠러지를 건널 유일한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결국 루이스도 교회를 해결책으로 제시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순전한 기독교」의 마지막에서도, 특정 교파에 속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유익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이 모험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철학을 반영한다. 특히 프로이트와 세대주의를 평가하는 내용에서는 정말 무릎을 치며 감탄할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다만, 내 지식이 좀 부족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도 몇군데 있었다. 특히 지혜wisdom을 만났을 때 그와 대화했던 내용은 흐름을 따라가기가 참 어려웠다. 번역체에다가 말도 안되는 문장들도 좀 있었고… (홍성사에서 정식 출간을 준비중이라니 어서 나오길 기대해봐야지… ^^)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루이스는 비유로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더더욱 그 능력이 놀랍게 느껴졌다. 흔히 알레고리(비유)를 전면에 드러내는 작품은 구멍이 숭숭뚤린 갑옷을 입고 전쟁에 나아가는 기사와 비슷하다. 왜냐하면 논리 자체에 대한 반박보다도, 비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빈틈에 대한 공격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했다는 점이 참 놀랍다. 루이스는 쓸데없는 완벽주의를 추구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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