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희
반바지 지음 / 나무야미안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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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비틀어진 국내 SF 장르의 돌연변이. 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반-바지'라는 필명으로 웹상에 연재되던 단편들이 묶여져 나온 결과물.


사물격 화자(소개란에 달랑 반바지가 하나), 공개형 웹 커뮤니티에서의 연재(상호소통이 아닌 뜬금없이 던져지는 단편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모금(예측보다 심하게 높은 사인본 호응), 그리고 출판사는 '나무야미안해' ... 이런 혼재적 상황은 요즘 풍토에 맞다고 해야하나...


짧으면서도 강렬한 감각, 독창성,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 좋은 SF 단편이 지녀야 하는 덕목들을 지녔으면서도 가끔 언급되는 과학적인 기반들도 탄탄할 뿐더러, SF에 취미가 없을 독자에게 어려울 이런 정보를 쉽게 이야기에 담아내는 재능이 있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반-바지' 작가의 단편의 가치는, 짧게는 한칸으로 그려진 단편에서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 있는데, 이 단색으로 간결하게 표현된 단편은 모니터 상 웹의 텅 빈 하얀 배경과 어울려 짧게라도 생각할 시간을 주곤 했다. 마치 현대인의 1일 1화두 라는 느낌 처럼. 그리고 이것 또한 좋은 SF 단편의 덕목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인쇄본이 웹 연재본에 비해 아쉬운 점은 이러한 단편이 모여있다보니 정보 밀도가 너무 높다는 점. 간헐적으로 게시되는 웹에서는 독자에게 있어 한편으로 독립, 완결되는 구조로 인해 충분히 갈무리할 시간이 있는 반면, 인쇄본은 필연적으로 넘어가는 책장 덕분에 너무 많이 읽게 되기 때문인데, 덕분에 충분히 삼키기 전에 새로운 것이 자꾸 덮어쓰여져 그 가치가 줄어든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하루 한장 읽으라고 할수도 없고.. 그런데 재밌는건 이와 반대로 대형 양장본인 책의 크기에 따른 기대치에 비해, 페이지당 내용은 적다는 점. 이러한 점을 신경 해야 했을 편집이 안타깝다. 그밖의 점이라면 분기되는 결말과 같이 웹이여서 시도 가능했던 작품이 실릴수 없다는 점 정도.


조금 더하자면 '크라우드 펀딩 2673%달성!!' 같은 요란 뻑적지근한 소개말은 까지는 필요 없으니 최소한의 책소개라도 있었으면 한다. 펀딩에서 사용한 것 사용하면 어려운 것도 아닌데.. 하고 표지 고양이가 조금 아쉬운 정도. 그리고 각주 배치는 따로 했을면 어땠을까 싶긴 한데..




시대는 21세기 문턱을 넘어섰고, 나이를 가질 수록 세계에 대한 동경은 흐릿해져가지만. 그럼에도 SF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행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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