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58
하인리히 뵐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nd he never said a mumbaling word......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and he never said a mumbaling word, 그렇게 흑인 가수가 노래한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사위를 가득 메운 절망적인 얼굴들.
내 얼굴도 그들 가운데 놓여 있다. 내 얼굴은 그들의 것과 같고
그들의 얼굴도 내 것과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의 얼굴을 구별하려는 목적도, 행위도 의미 없는 시대. 언제나 상흔의 시대의 표정은 익명성이다.
불친절한 시대의 환부는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물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자꾸만 벌어지는 것만 같다.
전후 사회의 무기력하고 우울한 기운이 도처에 스며들어,
마치 온기를 찾아 파고드는 몸짓처럼 도무지 벗어나려는 기미가 없다.

남편과 아내의 의식이 맞물린다.
기름칠이 닳아 거칠고 소름 도는 금속성의 소리를 내더라도,
가득 낀 먼지 때문에 뻑뻑하더라도 그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는다. 아니, 멈출 수가 없다.

자신들의 주변 모습, 온전하지 못한 가족의 모습,
무엇보다 자신의 애처로운 몰골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 이틀이 지난다.
그 48시간 동안의 흐름을 우리는 읽는다. 잿빛 오한에 마음을 부르르 떨며. 

짭짤한 맛으로 번지는 슬픈 시선과 희망

성당에 놓인 가브리엘 조각상을 마주하며 자신의 임신사실을 확신하게 된 캐테.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감탄했던 부분 중 한 장면이었다.
작가는 <수태고지> 표현의 역사상 가장 슬프고 가슴 아픈 수태고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했다.

전쟁의 생채기에서 아직 피가 흘러나오는 시대에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건
연약한 희망조차 가져다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시궁창과도 같은 삶이 더 더러워지고 힘들어질 뿐일지도 모른다,
석상 위를 덮은 먼지를 입김으로 불며 캐테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잠결에 부부의 나레이션을 듣는,
환청과도 비슷한 오묘한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아마 꿈이었을 것이다.
끝내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초록 모자를 쓴 캐테의 옆얼굴을 보며, 그녀의 몸이 품고 있는 생명의 기운을 새삼 깨달으며,
프레드가 어떤 의지를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가족도, 개인도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의지가
가늘게 피어 오르는 연기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