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영광 열린책들 세계문학 146
그레이엄 그린 지음, 김연수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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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죄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느 순간 깨닫게 될테니까요.」
                                                         -『권력과 영광』中

『권력과 영광』은 오래된 땀 냄새가 날 것만 같은 소설이다.
따뜻함보다는 습한 기운으로 가득하고, 성스럽기 보다는 세속적이며, 소박하기 보다는 욕망으로 가득하고, 기쁨과 안락보다는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져 있지만 어느 이야기보다도 아름답고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 강렬하고 묘한 매력으로 넘치는 소설을 읽으며, ‘권력과 영광’이라는 제목을 되뇌었다.
작가는 어떤 권력과 영광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계속 궁금했다.
사랑과 증오(경멸), 아름다움과 고통, 추함, 선과 악, 죄악과 축복, 불신과 믿음.
이들 병치는 추상적인 정의만큼, 또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것들이 아니었다.
가톨릭 신앙과 사제들에 대해 경위가 품은 분노와 증오는
사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향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도와 주고픈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위스키 사제 또한 극도로 고통 받는 순간과 절망 속에서 아름다움과 선함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이 소설 속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버려져 있다.
집, 마을, 개, 그리고 사람들까지도 서로 버리고 버려진다.
척박하고 잔인하며, 황량한 풍경 속에 희망은 이미 오래 전에 말라버린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위스키 사제는 그링고를 찾아가기 위해 다시 산을 넘어
자신도 뒤에 남겨두고 떠났던 그 마을로 돌아간다.
자신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하고 폭력적이며 추하디 추한 세상이지만 버리고 떠나지 않겠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창조주가 죄 덩어리인 인류를 사랑하고,
악하고 연약한 믿음을 지닌 인류를 위해 극도의 고통 속에서 죽음에 도달했던, 신의 아들처럼.
앞섰던 순교자들처럼 그도 성인으로 남을 것이다.
기록되거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기억되는 삶’ 속에서는 그가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다는 영웅으로 묘사될 테지만
이와 달리 실제 그의 삶은 죄를 지었고, 그 부덕한 행위로 인해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었다는 믿음이 그를 (자진)순교자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단어에서 따온 제목, The power와 The glory가 등장하는 부분 바로 앞의 구절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사실 이 소설은 유혹과 악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순적이게도 사제는 어둠의 실체를 보고, 겪은 후에야 인간에 대한 진실 어린 애정을 품을 수 있었고,
창조주가 빚어낸 세상의 아름다움과 선량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펼쳐져 있었던 영광에 도달했다.
이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유혹과 악, 권력과 영광 이 대조적인 두 쌍에 대한 믿음이
지상과 천상에 각각 속한 것이 아니라 모두 지상에 있다는 것이었다.
기성세대와 현세대의 믿음까지 뿌리 뽑는 데 실패했던 경위가 다음세대,
즉 아이들로부터 종교를 벗겨내리라 희망을 걸었으나 결국 작가는 종교에 마음을 기울였다.
한밤중에 찾아온 사제를 몰래 집안으로 들이는 마지막 장면은 독실한 신자였던 작가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 믿음이라는 것은 세대에 세대를 따라 이어지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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