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장 에슈노즈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항상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했다. p. 22

우연한 기회에 달리기 경주에 참가했다가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 한 남자가 있다.
아주 잘 달리는 '기계'라는 별명을 얻기 전, 슬프고 외로웠던 적도 있었지만 그는 계속 달렸다.
선수라면 마땅히 지어야 할 정해진 몸짓을 보이며,
날아가는 듯, 춤추는 듯 아름다운 자세로 뛰는 훌륭한 선수들 틈에서
머리를 이상하게 움직이고 팔은 제멋대로 흔들거리며
얼굴이 짓는 표정은 더욱 해괴한 이상한 선수.
고통을 사랑한 기이한 달리기 선수.
실전보다 연습을 훨씬 혹독하게 했던 특이한 선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선수들이 스피드 분배를 할 때
느리게, 빠르게 자유자재로 자신의 체력과 스피드를 가지고 놀았던
달리기의 유희왕, 에밀 자토페크.
힘들이지 않고 빨리 달리는 것,
이것이 그가 신경 쓴 유일한 달리기 방법이었다.

회색빛 풍경 속에서 붉은 색 운동복을 입고 인생을 뛰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 『달리기』.
피곤을 느끼거나 속도가 느려질 징후가 느껴지면 오히려 그는 곧바로
속도를 높이려고 애를 썼다.
이 점에서 그에게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는 아픈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고통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p. 52-53.

육체의 고통을 감내한 것처럼
영혼을 구속하는 모든 외부의 강압 또한 순순히 받아들였던 착한 사람.
바보스럽고 한심한 그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를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긍정적이고, 부정까지도 수용하는 자세를 지녔다고 그를 칭찬하기 이전에,
그는 누구보다도 인생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가 보였던 대응은 무력함이 아니라 진솔한 용기와 깨달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 아프고 슬픈 일들이 생겨나지만 인생은 달리기와 같다.
느슨하게 달리다가, 막판 스퍼트처럼 마지막 힘을 내야 할 때가 있으며,
잠깐 쉴 수는 있지만 숨이 붙어 있는 동안 꾸준히 달려야 한다.
계속 달리는 한 삶은 끊어질 수 없다는 믿음.
고통과 슬픔도 삶의 일부라는 사실 앞에 진솔한 모습으로 섰기에
그는 모든 것을 품고 달릴 수 있었다.
그는 삶이라는 자신만의 트랙 위를 쉬지 않고 질주했다.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달렸다.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함성소리가 귓가에 맴돌지 않아도,
결승선에서 끊을 테이프가 없어도.


독일인들이 모라비아에 들어왔다. p. 5.
소련인이 체코슬로바키아에 들어왔다. p. 146.

자신의 페이스대로 성실하게 뛰었던 자토페크의 화려하고 빛나는 삶.
스모그가 낀 듯 자욱하고 숨막히게 만드는 냉전시대.
운동선수로서의 개인적인 성공과 전운이 가득 낀 당시 사회 상황을 동시에 본다는 것은
우습고도 무서운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내몰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애써 웃음을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끝나는 게 좋아요.
나의 성공담이 너무 오래 계속되었거든요. p. 127.



작가, 에슈노즈는 자토페크 라는 인물의 모든 생애를 그리는 대신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때를 시작으로 해
공식적으로 그의 선수 생활이 끝나는 시점까지만 다루고 있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스스로에게 향하는, 결승점이 존재하지 않는 레이스.
이것이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이다.
그가 달리기 전과 달린 후의 삶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그가 '달린다'는 것.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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