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45
윌라 캐더 지음, 윤명옥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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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새로운 지역에서 거대한 새로운 교구를 시작하는 데는
라투르 주교처럼 섬세한 자질과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우아하게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앞으로 다가오는 시절에는 라투르 주교에 대한 어떤 것,
그의 이상이나 그에 대한 추억, 전설 같은 것이 남아 있게 되리라.
윌라 캐더,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pp. 283-284.


낯선 지역으로 들어가 자신들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한 믿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것.
선교는 오로지 믿음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개인의 다짐이나 의지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자기 안에서 무너뜨렸을 때 비로소 선다는 것도.
이 이야기는 그러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한 두 사람이
새로운, 그러나 오래 전부터 그들이 찾고 있었던 듯한
어떠한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 여정은 인디언 사회와 외래 종교간의 마찰, 화해, 수용으로 이어지는
선교사들의 성공스토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첫인상으로는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을 거라고 난 섣불리 생각했었다.)
선교사 두 사람이, 그리고 그 이전 세대의 선교활동이 가져온 낯선 믿음의 정착에 대한
시시콜콜하게, 때론 억지스러운 과정을 묘사하는 대신
원시 세계로 흘러 들어온 선한 이들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진정한 인간성'에 도달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하나의 믿음을 전하러 왔던 이들은 이미 그곳은 믿음이 깃들어 있는 영적인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신을 향한 그들의 믿음은 더욱 풍요로워졌고
토착민들에게는 하늘의 뜻을 베풀고, 그들 또한 받았다.
그들의 영혼이 도달한 동산에서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다했다.
세속의 부나 명예, 안락한 삶을 선택하는 대신 자신만의 신념을 차곡차곡, 오랫동안 성실히 빚어내는 것을 나는 보았다.
당시 이 '신세계'를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아니 그러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많은 종교인들의 시선이나 예상과는 달리
사막의 모래폭풍에서 길을 잃어본 적이 있었던 선교자들은 그곳의 믿음을 '묻혀있는 보물' 로 여겼다.
그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앞으로 자신들이 심어야 할 새로운 씨앗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 가까웠다.
'물소와 우글거리는 뱀들' 만 있는 미개의 공간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보물이 박혀 있는 그 성스러운 땅에서
오히려 믿음과 신념을 발견한 이들은 '조물주'에 대한 믿음과 올바른 삶의 원칙을 간직하고 있던 '진짜' 인간들을,
어쩌면 본래 신이 의도했고 기대하는 태초의 인류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진심으로 존중하였고 그들의 '신들'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도 가슴을 열었다.
라투르 주교가 동굴 안에서 저편에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듣는 장면은 주교에게 미친 영향만큼이나
나에게도 무척 인상적이었고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는다.
이 시점부터 라투르 주교가 인디언들의 사고방식, 특히 그들의 정신 세계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평화롭고 조용하지만 생기가 넘치는 인디언들의 모습을 그 선교사는 벌거벗은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에 그는 당시 유럽인들의 욕망과 뚜렷이 대조되는 인디언들의 정신적 가치를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이전 선교 선배들처럼 그도 서서히, 하지만 강렬하게 깨달았다.
인디언들의 믿음은 자신이 섬기는 주님이 창조한 질서 안에 오롯이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그곳에 뿌리내려온 믿음은 외부인들로 인해 인위적으로, 이따금씩 강제로 심어진 것이 아니라
이곳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아득한 옛날 어느 때부터 자생해온 형태라는 것을.
그는 그 태초의 믿음을 자신의 믿음 위에 아로새겼다.
주교는 눈을 감기 전, 그곳을 온전히 이해하였고, 그곳 사람들의 모든 것을 가슴에 담았다.
주교를 비롯한 이곳의 선교사들이 보여준 믿음이라는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모든 면모를 올바르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가짐이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행한 믿음의 진정한 형태였다.
'인류는 동산에서 추방되었지만 동산에서 구원받았다(블레즈 파스칼)'
그는 그 동산에서 구원을 받았기에 평온 속에서 육신을 떠날 수 있었으리라.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라는 제목이 풍기는 장엄함이나 다소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와는 달리
그의 삶은 무척이나 순종적이고 조용했으며,
소박한 동시에 다른 것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숭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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