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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평점 :
아, 정말 오랜만에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다.
<도롱뇽과의 전쟁>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도롱뇽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곳곳에 인간에 비견하는 능력을 가진 도롱뇽들이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있다고 '전해지는', 인간의 대륙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가 과연 도롱뇽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 인류의 숨통을 조여드는 일이 발생할 때 , 도롱뇽과 관련된 그 일들을 보며
나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사건들의 '발단'이라고 하는 도롱뇽들은 존재하지도 않는데,
인간들이 이 난리법석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의식을 조종한다는 느낌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도롱뇽 신디게이트를 만들어, 회의를 열고 열띤 토론을 하던 사람들 중 누구 하나 도롱뇽들을 본 적도 없고
그들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대목이 있었다.
참 우습고도 아이러니하다.
작품 속 도롱뇽들이 시종일관 '유지한다'고 하는, 소름끼치는 침묵보다 나를 치를 떨게 한 것은
서로를 죽도로 미워하고, 서로의 등을 밟고 서려는 인류의 더러운 탐욕과 거짓과 간교였다.
차페크는 인간과 도롱뇽과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전쟁을 말하고 있었다. 자멸의 지름길인 그 싸움을.
이 소설은 상당히 재미있는 구성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야기 부분도 있고, 보고서나 논문과도 같은 측면도 가지고 있으며 신문의 단면을 읽고 있는
느낌도 주는데, 그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떠올리게 한 형식이지만, 훨씬 역동적이었다.
재미있고 강렬하며 충격을 마구 던지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쓰디쓴 여운을 남기는 엄청난 작품이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추측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현실의 반영이다 라고 저자가
밝힌 반대로 현실을 확실히, 통렬하게 씹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책이 출간된 1930년대의 국제 정세가 오롯이 녹아 신랄한 맛을 내는 대작!이다.
정치와 경제, 과학, 철학을 포함한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현실을 써내려 갔지만
그 현실이 비인간적이고 허무맹랑하며 때론 우스갯소리처럼 들려
도저히 현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까? 이 책의 내용에서 비현실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몇 십년 전의 국제 정세를 담고 있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아도
낡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차페크 씨의 통찰력 덕분이겠지.
이때문에 파시즘이 자욱히 깔려 있던 이탈리아와 스페인, 헝가리 그리고 동맹국인 일본,
또한 독일 등지에서 출판되지 못한 것은 당시에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여러 국가에서 금지된 책이었지만 언제나 독자들은 금서에 더 열광하기 마련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명성은 심지어 도롱뇽들마저 타락시키는 법이다. p. 140.
무엇보다 사람들이란 자기한테 도움을 주는 편리한 존재를
신비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상해를 가하고 위협이 되는 존재들만 신비로운 법이니까. p. 221.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행복하지도, 평등하지도 않고 모순이란 것은 죄다 모여있는(이 단어도 인간이 만든 어떤 것이지만) 인간사회를 향한 계획된 발길질을 당하였지만 마지막에 그가 조용히 내뱉은 것은 긍정과 희망에 대한 희망이었다.
각각의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가 그 구질구질한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오기를, 작가는 바랐는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스스로 갇혀 무기력한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있지 말고, 바깥으로 나오라고 우리에게 넌지시 희망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니 도롱뇽의 살 맛이 금속냄새가 나는 신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소름이 돋았다.
독서노트를 쓰다보니 블로그에 책 리뷰를 올리는 일이 거의 없는 요즘,
흥분하며 읽은 책이라 이렇게 몇 자 적어 보았다.
차페크의 다른 작품들이 무척 기대되고, 이 작품은 꼭 재독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