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미치광이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데 왜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겠다는 거예요?"
"왜? 난 아직 내 삶의 밑바닥까지 가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런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나 마찬가지거든요…….(…)"
p. 331.


7인의 미치광이
나는 이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제목만 보아도 만만한 책읽기가 되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
무슨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서 써야 할지 조금 막막하다.
7인의 미치광이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몽상가들이었다.
이러한 미치광이가 구상을 실현하게 되면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될 것이고,
그 반대라면 아마 계속 꿈만 꾸다 좌절해서 자멸에 이르고 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를트가 보여주는 이 미치광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계획을 실현시키는 데 성공했을까, 아니면 실패했을까?
이 소설의 속편 <화염방사기>에서 이 인물들을 더 자세히 묘사했다는데,
우선 <7인의 미치광이>에서는 결말을 내지 않은 ing 상태라 저 이분법적인 결과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두는 듯하다.
아니면 저 구분조차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Ⅰ. 1㎠ 인간- 에르도사인
"인생이란 게 당신이 늘 말하던 그런 거라면……. 그래, 돌아올 거야…….
꼭 돌아올 거야." p. 91.
'과연 나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냐, 난 살로 살짝 가려진 상처일 뿐이야.
심장이 뛸 때마다 고통에 못이겨 온몸을 뒤틀고 비명을 지르는 상처.' p. 94.
머리카락처럼 왜소해진 영혼, 진흙탕 속에서 꿈틀대는 뱀장어같은 삶…….
그의 삶에서 존재 의식이 차지하는 공간은 1㎠도 안 되는 듯했다.
(…)
유령 같은 삶을 살면서 오직 고통만이 허용된 1㎠의 존재일 뿐이다.
나머지는 부분은 다 죽었다. 아니, 나머지는 그에게 현실의 쓴맛을 보여 준
그 어두운 태반 속에서 시체처럼 뒤엉켜 있었다.(…) p. 95.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진정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될까? p. 117.
왜 그의 인생은 늘 이 모양이란 말인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인생 역시 '그런 꼬락서니'이긴 마찬가지다.
다만 '그런 꼬락서니'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인생에는 그토록 선명하게 찍혀 있는 불행의 낙인이,다른 이들의 삶에서는 흐릿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p. 263.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 지금도 음산한 곳에서 헤매고 있다. p. 265.

공금을 횡령한 잘못으로 에르도사인은 직장을 잃었고, 아내 엘사도 그의 곁을 떠났으며,
자신의 쓰디 쓴 삶마저도 지워져 가고 있었고, 그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믿음도
슬픔으로 얼룩져 점점 상실해 가고 있었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사람은 무모해지고 극단적인 감정흐름 때문에
거침없이 생각하고 행동하기 십상이다. 바로 에르도사인이 그랬다.
구질구질한 삶은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는 당당히 '존재'하고 싶었기에
에르도사인은 범죄를 선택했다.
존재의식이 거의 없는 불행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인물, 에르도사인에게 희망은 사치스러운 감정으로만 느껴졌다.
그때는.

Ⅱ. 위대한 허구를 만드는 게 급선무-점성술사와 목 매달린 꼭두각시 인형
결국 인간의 행복이란 오로지 거대한 거짓말,
즉 형이상학적 가상을 토대로 해서만 가능한 거요.
그러한 가상을 제거하면 인간들은 또 다시 경제라는 환상에 빠져버리게 되지. p. 194.
희망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에게 멋들어진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늘어놓는다면,
그들에게 감언이설로 혼을 쏙 빼 놓는다면,
이 세상에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믿는 위험한 몽상가, 점성술가.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저 어중이떠중이들을 위해서
우린 행복이란 요리를 만들어 상에 내놓기만 하면 돼.
그러면 저들은 짐승처럼 몰려들어 게걸스레 먹어치우겠지." p. 198.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뭔가를 믿으려 하고, 또 믿어야 살 수 있다'는 거요.
우리 인간에게 그건 음식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요. p. 203.
70칼로그램의 살덩어리 안에서
바다와 같은 영혼이 요동치고 있는 게 바로 삶이 아닌가?
그 무거운 살덩어리는 하늘 높이 날기를 원해.
우리 안의 모든 게 저 구름 높이 날아가길 바라고 있다고. p. 349.

점성술사를 중심으로 한 이 비밀집단이 꿈꾸고 실행하려는 계획은
정말 허무맹랑한 일들 뿐이다.
사창가를 무슨 산업체마냥 확대시켜 자금을 확보하고,
혁명훈련 캠프를 설치하고, 인류 역사 속 추악한 행위들-화형제도, 파시즘 등- 을
모조리 끌어내 부활시키려는 구상은 그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난다.
이 세상은 허구와 갖가지 거대한 거짓말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믿는 점성술사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뿌리가 그러한데, 우리라고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설파하며, 일단 그 계획이 이루어지고 나면 자신들에게
돌아갈 이득이 무엇인지 감언이설로 조직 사람들을 선동하는 사람이다.
언제나 큰소리로 사람들을 휘어잡으며 이러이러한 것을 해내겠다 라고
말만 할 뿐 정작 몸은 그의 터무니없는 이상을 받쳐주지 못한다.
나는 7인의 미치광이들 중에 점성술사 라는 인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다.
스스로를 인생의 낙오자처럼 여기는 구질구질한 에르도사인과는 달리
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 이 인물은 높은 이상과 강한 개혁정신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흔들림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인간은 모순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점성술사가 홀로 있을 때 펼쳐 놓은 망상 속에 자리해
이상과 현실 사이를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감정의 변화는
그도 한 명의 미치광이로서 불안으로 인해 수시로 흔들리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결단력 또한 단단하지 않는, 그저 한 명의 몽상가임을 알게 해 주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가슴 벅차는 일'이 될 여러 계획을
그는 그저 입으로만 반복할 뿐이다.
한 마디로 점성술사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달아나 버리지.
그래, 바로 그거야.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모두 빈 감자 자루처럼
무력하게 스러져갈 뿐이야.
저 높은 곳으로 비상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p. 348.
인형들은 마치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처럼 허공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p. 354.

마치 마리오네트를 하는 사람처럼 허구의 공간을 빌려
자신만의 꼭두각시 인형들을 적절히 배치시키고는, 품고 있는 스토리를 실현시키려는 사람.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마냥 자신의 의지대로 시, 공간을 종횡무진하지만
인형극이 끝난 후 조명이 꺼지고 나면 인형과 자신은 어두컴컴한 현실의 방으로 돌아온다.
희열도, 무력감도 모두 존재하는 삶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인간에게는 허구가 필요한 것일까?
Ⅲ. 완벽한 남자를 찾는 이폴리타
시간이 갈수록 상상 속에서 만나는 이런 신기한 인간들은 자꾸만 시시해지고,
차라리 소설 속 인물들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실 소설 속에서 이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면면을 잘 살펴보면
현실에서는 다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것들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녀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그런데 자기 욕심을 다 채우고 나면 이들은 약점을 그녀에게 보여 준 것이 못내
창피한 듯 하나같이 그녀를 외면해 버렸다.
그러면 그녀는 사막을 헤매듯 점점 더 무의미한 삶 속으로 가라앉았다. pp. 320-321.
동시에 그녀는 여자들도 혐오했다.(…)
여자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그저 고생하는 것밖에 없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잠들게 하는 유령처럼 여자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비상을 꿈꾸던 그녀의 영혼은 타인의 따가운 시선과 간섭 때문에
제대로 날지도 못한 채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평생을 하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pp. 323-324.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배고픔, 욕망, 그리고 돈, 이 세 가지 뿐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p. 319.

번듯한 삶을 채워줄 요소를 갖춘 남자를 찾는 이폴리타.
하녀로 살며 자신이 언젠가는 그럴싸한 인생을 꾸릴 수 있을까 하며 막연한 생각을 해보았고,
창녀로서 지내던 중에 자신의 바람을 실현시켜 줄 것 같았던 한 남자를 만났지만
그동안 꿈꿔온 이상이 부질없다는 걸, 허구 속 삶과 현실의 삶은 같을 수 없다는 걸 그녀는 깨닫는다.
그러나 여전히 이폴리타는 그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를, 자신이 갈구하는 그 삶을 찾으려 한다.
그녀는 현실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동정 섞인 질문은 삼가하고 싶었다.
언제나 그녀는 허구의 존재 덕분에 위안을 얻고 스스로를 추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Ⅳ. 허구와 희망은 동전의 양면?
사람의 마음 속엔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이 나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신비한 본능 같은 거라고나 할까.
지금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도 내 운명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겪을 수 밖에 없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p. 79.
(…)내 몸에 구멍을 내서라도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거짓과 위선을 죄다 빼버리고 말거야. p. 121.
저 안쪽 깊숙한 곳에, 우리의 의식과 사유가 이루어지는 곳보다 더 깊은 데에는
훨씬 더 강하고 넓은 또 다른 삶이 있어요. p. 127.
"그런데 왜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겠다는 거예요?"
"왜? 난 아직 내 삶의 밑바닥까지 가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런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나 마찬가지거든요…….(…)" p. 331.

이 소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자문한다. 자신이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수시로 자신에게, 타인에게 의심을 품으면서도 그들은‘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삶’이 있다는 믿음에 마음 한 켠을 내어준다.
‘절망에 빠진 사람의 바람, 그러나 거의 언제나 희망은 절망하는 자들의 것이다 ’ 라는 아레나스의 말처럼 그들이 손에 잡고 붙들 것이라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허구’뿐이다.
그러한 허구 즉 희망이 실현될 가능성의 여부가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품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소중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허구의 존재는 그들이 입은 삶의 쓰린 상처를 묵묵히 핥아주기 때문이다.  


같은 라틴 문화권의 작가들이 보여준 정치적인 색채, 현실과 허구와의 관계 때문인지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해가 지기 전에 Before Night Falls>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 나치 문학>이 자꾸 생각났다.
<7인의 미치광이>에는 '나'라는 화자가 등장해 어떤 사건에 대해 일정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러한 장치가 있어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닌 일종의 르포타주처럼 느껴져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작가의 펜 끝으로부터 흘러나왔지만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듯 생생히 살아 있는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쉽지만은 않았으나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살짝 엿 본 경험은 신선한 책 읽기였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현실과 공상의 경계선에 서서 물 흐르듯이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아를트는 이러한 두 정신세계의 날실과 씨실을 촘촘히 훌륭하게 엮어 놓았다.
꿈꾸는 내용이 아무리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꿈을 꾸지 않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을 읽은 이들에게 넌지시 말을 꺼내는 듯 했다.
문학이 우리들의 따라지 인생을, 이 우중충한 사회를 구제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머리 쪽을 떼어낸 후 꼬리 쪽을 떼어내면 다시 머리 쪽을, 그리고 다시 꼬리 쪽을 떼어내야 하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 거머리처럼 이렇게 찰싹 달라붙는 우리네 삶의 애환을 허구가 조금이나마 달래주지 않을까요?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이상이, 행동이 그대들이 보기에는 현실감이 현저히 떨어지고, 어처구니없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소만, 각자의 유토피아가 있어야만 세상살이가 좀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육체는 영혼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는데, 그 이유는 영혼에게는 항상 의지할 그 무엇, 기억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아레나스가 말한 바와 같이 이 땅 위를 딛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로가 설정한 허구가 필요할지도 몰라요.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그것에‘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겠죠.
그리고 언젠가는 거대한 허구로만 생각되던 것이 우리 인생에 생산적인 어떤 것을 이끌어주는 매개체로 변모할지도 모르는 것이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