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행 2 펭귄클래식 18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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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지, 드디어 이 세계의 수도에 당도했다.
                                                 이탈리아 기행 1, p. 169. 

    

PANNINI, Giovanni Paolo
View of Rome from Mt. Mario, in the Southeast
1749
Oil on canvas, 102 x 168 cm
Staatliche Museen, Berlin


(…)이제 이곳에 오니 마음이 안정되어 평생 동안 마음의 평온을 얻을 것 같다.
부분적으로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니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
나는 어디를 가나 새로운 세상에서 친숙한 것을 발견한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다.
이탈리아 기행 1, pp. 169-170.
 
VALENCIENNES, Pierre-Henri de
View of Rome in the Morning
1782-84
Oil on paper laid on board, 18 x 25 cm
Musée du Louvre, Paris

주랑과 성당, 특히 둥근 지붕의 아름다운 형상이
처음에는 불꽃이 이는 가운데 윤곽을 드러내다가,
이내 한 덩어리가 되어 이글거리는 모습이 둘도 없이 장려합니다.
(…)
성당과 둥근 지붕의 아름다운 형상은
흡사 불꽃이 이는 것 같은 윤곽 속에서 위대하고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이탈리아 기행 2, pp. 14-15.

"Grand Tour"라고 불리던 여행은
16세기 엘리자베스 치하의 영국인들에게는 로마를 종착지로 하는 유럽 일주 여행이었다.
인생에 입문하는 성격을 띤 이 유럽일주는
젊은 귀족 자제들이 자국에서 배운 외국어를 실제로 사용하여 실용화하고,
외국 여행을 통해 세련된 매너들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특히 로마의 화려한 문화를 접하는 것은 필수 코스였다.
18세기에 들어와 이 그랜드 투어는 전 유럽으로 크게 확산되었는데,
통계에 따르면 1760년 겨울에 로마를 찾은 외국 관광객이 4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여행은 프랑스에서는 귀족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특히 예술가와 시인,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코스로 인식되고 있었다.
스탕달, 샤토브리앙, 제리코와 코로 등 많은 예술가들이 이탈리아를 찾아 그들의 예술적 열정과 우울함을 달랬다고.
-Daniel Lagoutte, Introduction à l'histoire de l'art, pp. 118-119. 

이 시기에 그려진 회화에는 그랑 투르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고
당시 유행하던 고전주의에 대한 취향이 빈번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그랑투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당시에 이런 취향이 반영된 그림의 수요는 대단했다.

이곳에선 집밖으로 나가 조금만 산책을 해도
너무나 값진 대상들을 만나게 됩니다.
나의 생각과 기억은 무한히 아름다운 대상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탈리아 기행 2, p. 38.  

(…)선명함, 다양성, 엷은 안개에 싸인 투명한 하늘, 풍경
특히 원경의 절묘한 색조를 바라보노라면 넋을 잃을 지경입니다.
p. 60.

괴테가 로마의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독일의 여름날씨를 생각하며 기뻐하는 마음가짐에서 그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열기가 점차 누그러지고 북풍으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고 말한다.
몸은 외국에 나와 있지만
사소하게는 여행지의 날씨를 보면서
마음은 독일을 떠나지 않는 괴테를 위해 프리드리히의 풍경화 한 점을 그에게 내밀고 싶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중 누가 더 위대한 화가이냐에 대한 논쟁은 재밌게도
언제나 결국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결론을 맺는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이 위대한 자들의 이름이 단순한 이름에 그치지 않고,
무구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생생한 진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진가는 점차 완전해져 간다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라고 말하는
경탄 섞인 독백과 깨달음이 내 마음에 조용히 와닿는다.  

예술 작품은 보라고 있는 것이지,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직접 대할 때는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예전에 예술 작품을 대할 때마다 너무 말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p. 43.    

드디어 우리가 잘 아는 모든 사물들의 알파요 오메가인
인간의 형상이 나를 사로잡았고,
나도 그것을 사로잡았습니다.
p. 63.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는 동안 과거의 고전주의에서
화려하게, 폭발적으로 연구, 발전되었던
인문주의로 돌아간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접했던 모든 예술은,
그 위대함은 결국 인간이 창조해 낸 것이었기에,
인간성의 중심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그가 여행 내내 토양이며, 식물이며, 기후기며
다양한 자연의 현상과 모습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자세는
인간과 자연을 과학적 시각으로 연구하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의 정신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여 생각에 잠기면
젊은 시절의 감흥이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다시 떠오릅니다.
그러면 대상들의 높은 수준과 품위가
내 궁극적인 존재가 다다를 수 있는 높이와 거리만큼 나를 끌어 올립니다.
p. 15. 
 

18세기의 여행가들은 이탈리아의 곳곳에 있는 폐허를 사랑했다.
이제는 잡초와 풀가지만 무성해져 뚜렷한 흔적조차 찾기 어렵지만
호화롭고 영광스러웠던 옛 시절을 가슴에 품고서
쓸쓸한 정취 속에서 잠든 그곳을 그들은 목말라하며 쉴 새없이 이 나라를 드나들었다.
이 사람들이 뭘 하려고 방문 했느냐고?
특별히 무엇을 하려고 찾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나라, 집 주변에서도 행해졌을 지극한 일상생활 속의 행위들일 뿐.
그들은 걷고, 앉아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옛 영광을 간직한 예술품들을 보러 다니기도 했으며,
예술적 영감에 불타오르는 젊은 화가들은 스케치를 했다.
이처럼 여러 다른 행동을 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는
우수가 깃들어 한동안 거부감없이 그 상태로 나날을 보냈다.
지평선이 해를 삼키기 전 그 붉은 빛을 온전하게 받고 있는
그곳을 그들은 미치도록 그리워 했으리라.
그곳이 내뿜는 그리움과 쓸쓸한 평온함이
여행가들의 발길을 자꾸만 되돌리게 하는 연유였겠지.

사진기가 없던 시절의 여행은 그 정취가 훨씬 깊었을 것이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물질적인 어떤 이미지로 남겨 자신만의 소유물로 만드는 것이
오늘날 우리네 여행 풍경인데,
옛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그 시간과 공간을 기계나 조작하는 데 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바라보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는 또 바라보고,
여행할 적의 대기 상태, 햇빛 등이 감싸고 있는 모든 사물, 사람들,
그 내면에 깃든 감정들까지도,
당시 풍경의 모든 것을 기억의 성에 차곡차곡, 흐트러지지 않게 두었다.
몸의 온 감각이 지각하는 모든 것을 글이나 그림으로 적으며, 그리며
인상의 되새김질을 했다.
게다가 변화하는 상태 마저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의 여행방식을 동경한다.
그들은 사진기에 담을 풍경을 두고 고민할 필요도 없고,
사진을 찍느라 주마간산식으로 휙휙 지나치는 방식을 모르며,
주변에서 들려오는 타인들의 셔터소음에
짜증을 부릴 잉여의 감정조차 가질 필요가 없다. 
 

티슈바인은 아주 착실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즐겁고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지
못할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대단하기도 한 이사람에 대해서는 나중에 만나서 직접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내 초상화는 잘 되어가며, 실물과 너무 흡사합니다.
누구에게나 그 착상이 마음에 들 것입니다.
이탈리아 기행 2, p. 13.   


잠시 괴테와 함께 여행했던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이 그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탈리아 곳곳을 담은 그림 외에도 옛 유적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도 큰 인기를 끌었다. 한 마디로 기념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류의 그림은 괴테의 초상처럼 홀로 상념에 잠긴 모습이나 두 세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묘사가 되었는데, 이들 초상화의 공통점은 이탈리아, 특히 로마의 폐허와 부서진 조각이나 건축물등 불완전한 형태이지만 옛 시대의 숨결이 항상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규모가 거대한 것은 모두 숭고하고
평이하면서도 동시에 독특한 인상을 풍깁니다.
(…)이는 흥분된 내 마음에 깊고 위대한 느낌을 불어넣어
영웅적이고 비가적이라 일컬을 만한 정취를 불러일으켰습니다.
pp. 291-292.  


내 마음속에 슬픈 정경 아른거리누나,
로마에서 보내는 이 마지막 밤에,
소중한 추억 그토록 많이 남겨준 밤을 생각하니,
지금도 눈에선 한 줄기 눈물이 흐르누나.
어느새 인적 끊기고 개 짖는 소리도 그친 가운데,
밤의 여신, 루나가 하늘 높이 밤 마차를 모는구나.
하늘을 바라보자 카피톨리노 신전이 눈에 들어오고,
집의 수호신이 부질없이 이토록 가까이서 지켜주고 있구나.
p. 292.


나는 다시 세상에 관심을 갖고
나의 관찰 정신을 시험하고 심사하고 있다.
나의 학문과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나의 눈이 빛나고 순수하고 밝은지,
얼마나 많을 것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
마음속에 파고들어 짓눌렸던 주름들이 다시 지워질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탈리아 기행 1, p. 32.

1권 첫 부분에서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의 목적을 이렇게 밝혔다.
물론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동경해온 나라의 '위대한' 예술의 향기를 맡는 이유도 컸겠지만
그는 다시금 자아를 찾고 싶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여전히 깨어 있는지, 생생하게 살아 있는지.
그의 여행기를 읽고 난 지금
괴테가 그 목적을 이루었다고 믿는다.

작가들이 여행한 경로를 따라 그들이 찾은 장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 올랐던 수많은 감정들,
이 모든 경험을 나누다 보면 깊은 울림이 되어 그 반향은 쉽게 그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내가 유럽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이자 가장 여행하고 싶은 나라, 이탈리아를
직접 내 발로 그 땅을 밟으며 그곳의 수많은 정경을 내 눈으로 빨아들이기 전에
괴테의 건장한 어깨 위에 앉아 그 풍광 속을 먼저 넘노닐어 본다.
나도 그 시대의 여행가들처럼 이 나라의 곳곳을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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