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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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근두근 내인생이 뜨겁다. 비평가들이 뽑은 올해(2011년)의 소설 3위라니, 다들 앞으로 50만부는 팔려나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더불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80년대생 작가들에게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아리, 김민서, 김사과, 박지리 등. 이문열이나 김승옥과 같은 작가들도 일찍이 20대에 작가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들에게서는 존재를 앓는 젊은이의 고뇌와 방황. 그리고 치열한 고민이 고통처럼 글 속에 드러났었다. 하지만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88만원 세대 그들에게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다소 위트 있고 유쾌하게 드러난다. 한 편으로는 70-8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지금에 비할바가 아닐만큼 우울하고 어두웠던 때이긴 하지만, 나는 결국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궁극적인 힘은 유머에서 온다고 믿는다. 단순히 현대 젊은이들의 성찰의 깊이가 가볍고 얕다고만 논할 수는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들뢰즈는 인간의 사유가 시작되는 지점은 낯선 사건과의 조우, 즉 '마주침'에 있다고 했다. 인간은 흔히 모든 시간 스스로가 사유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습관과 본능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철학, 삶을 만나다>라는 책을 통해 강신주 교수는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세상을 낯설게 보기를 요구한다. 이 책은 '죽음'이라는 커다란 화두를 통해서 역으로 삶을 낯설게 보게 하고 -"세상은 참... 살아 있는 것투성이구나. 그지?" 298p- 매순간 잊고 있던 '삶'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기에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었는데, 그런 나에게 '너는 지금 살아있어.'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듯한 기분.

 

  이 소설은 분명 절망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절망 속에서도 죽음을 안고 함께 쓰러지는 것이 아닌 그 속에서 웃음과 아름다움과 미학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이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한계상황에서 나는 '두근두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을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늙어간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 그리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상황이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이 작품속에 깔려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군대군대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역으로 작가의 젊음을 알아 챌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늙어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삶의 일부분인 것이기에 이것이 또한 한계상황이 될 이유는 없기에.  

 

  오랜만에 흡입력있는 소설을 만났다. 기차 안에서 혼자 웃다가 엉엉 울다가, 그러고 나서는 창밖을 한 번 바라보다가. 이 세상 어딘가에 아름이라는 아이가 꼭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아이의 마지막이 더 나를 맥없이 울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웃기다가 울리면 왠지 더 속이 상한다.

 

"새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새똥으로 위장하는 곤충이 있대."

"근데?"

"그게 꼭 너 같다."  -20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50

 

'자식은 왜 아무리 늙어도 자식의 얼굴을 가질까?'

그러자 뜻밖에도 방금 전까지 쩔쩔맸던 문제의 실마리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가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79

 

"그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음.... 너 어릴 때 옷장 안에 들어가 숨어 있었던 적 있지? 부모님이 나를 찾나 안 찾나 궁금해서."

"어."

"근데 어느 순간 나이가 들고부터는 그 게임을 내가 나랑 하고 있더라고."    -86

 

"그리고 이런 말 하긴 좀 뭣한데, 세상엔 자기 부모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효도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러니까 너는 절대,"

"네."

"나한테 잘하려고 하지 마라. 알았지?"

"아빠."

"응?"

"그게 뭔 소리예요."

"응?"

"지혜로운 말씀 좀 해주세요, 제발."

"아름아."

"네?"

"네가 나보다 늙었다고 해서 부모를 무시하면 안된다. 더군다나 체고 나온 부모를. 그런 사람들은 그런 거에 아주 예민하거든."

"네."

"그리고 너, 체고 나온 부모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

"체고 잘린 부모야...."    -91

 

"누군가가 다름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143

 

그 아이의 글에선 어떤 특별하고 친숙한 '시간성'이 느껴졌다. 아울러 그건 열일곱의 시간도, 스무살의 시간도 아니었다. 그건 '혼자 오래 있어본 사람의 시간'이었다.  -187

 

가져본 걸 그리워하는 사람과

갖지 못한 걸 상상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불행한지 모르겠어.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전자일 거라고 생각해.   -269

 

"그래도 그땐 그냥 짐작이었지. 나이란 건 말이다. 진짜 한번 제대로 먹어봐야 느껴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거 같아. 내 나이쯤 살다보면..... 음, 세월이 내 몸에서 기름기 쭉 빼가고 겨우 한줌, 진짜 요만큼, 깨달음이라는 걸 주는데 말이다. 그게 또 대단한 게 아니에요. 가만 봄 내가 이미 한번 들어봤거나 익히 알던 말들이고, 죄다."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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