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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기독교를 지나치게 도덕적으로 해석하는 데 반대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주 옳은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 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도덕적 완벽함을 넘어서는 별개의 것이며, 우리를 향한 그분의 요구도 도덕적 의무의 요구를 넘어서는 별개의 것입니다. 저 또한 이 점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공동의 죄책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 개념 역시 정작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는수단으로 이용되기가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은 도덕적 선을 넘어서는분이지 도덕적 선에 못 미치는 분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에 이르려면시내 산을 통과해야 합니다. 도덕법은 초월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도덕법의 요구를 인정하고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전력을 다 기울여 본 후에 자신의 실패를 정면으로 직시하게 된 사람이 아닌 한, 도덕법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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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Platon이 제대로 가르쳤듯이, 덕은 하나입니다. 즉, 다른 덕목들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은 친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비겁하고 겁 많고 오만하며 나태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별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이웃의 복지가 당신의 안전이나 자존심이나 안락함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은 탓일 뿐입니다. 모든 악덕은 결국 잔인함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동정심 같은 좋은 감정도 사랑과 정의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분노를 거쳐 잔인함에이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이 저지른 잔혹 행위의 소식에 자극을 받아 또 다른 잔혹 행위를 저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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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 많은 이들은 사회적 고립지대 - 전반적으로 질이 좋지 않은학교나 대학이나 부대나 직장 - 에서 생활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고립지대 안에는 단순히 정상적인 행동으로 통하는 것들("다들그렇게 하는걸")과 터무니없이 고결한 체하는 돈키호테 식의 행동으로통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좋지 않은 집단을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오고 나면, 그때 정상적인 행동‘ 으로 통하던 것들이 사실은 교양 있는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짓이었고, ‘돈키호테 식의 행동으로 통하던 것들도 교양의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한다는 끔찍한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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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는 고통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은 아픕니다. 그것이 바로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다만 저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 이라는 기독교의 옛 교리는 믿을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세상이 정말 ‘영혼을 만드는 골짜기 라면, 세상은 대체로 그 역할을잘 감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난 - 현실적으로나 잠재적으로 다른 모든 고통을 내포하고 있는 고통 - 에 대해서는 감히 제 경험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기독교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가난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감동받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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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철학자들도 지혜의삶이란 곧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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