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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125] 그리고 봄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것을 쓴다고 말하는 조선희 작가는 『그리고 봄』을 쓴 이유가 우리 시대의 정치적 삶이 지금의 내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선 이후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지식인으로서, 저널리스트로서, 작가로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소설 속의 영한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고 그것이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봄』에는 ‘변증법의 희망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도 했다. 이 말에 책을 다시 읽었다. 작가가 말하는 그 마음이 책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지 꼭 만나 보고 싶었다.
대통령선거 이후 1년. 상실과 혐오로 해체되었다가 화해하는 가족의 이야기가 『그리고 봄』에 있다. 현실 정치에 대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생각과 행동이 있다. 수긍이 가기도 하고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영한이 드라마 <환혼>의 대사인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p257)를 들으며 울컥했던 것처럼 역사의 한순간을 살아가는 가족의 삶에 정치가 개입되는 상황들이 내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다. 울렁거리고 일렁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변증법의 희망을 바라보고 싶은 작가의 그 마음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속에 있던 정희와 하민과 동민과 영한에게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 속에 내가 있었다.
봄의 정희에서 부터 여름의 하민, 가을의 동민과 겨울의 영한을 거쳐 그리고 봄인 정희로 돌아 오는 동안 나는 작가의 시점이 남자보다는 여자, 아들보다는 딸에게 먼저 가 있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곁으로 여자인 딸이 아닌 아들이 돌아오고 남편만이 자신과 함께 봄을 맞는다.
분란을 일으킨 남편과 아들로 4인이 함께 하는 식사 자리가 사라진 봄의 정희를 위해 딸인 하민이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 점심 식사 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결국 그 자리는 뜻밖의 변수와 우연에 의해 교란되어 딸 하민의 커밍아웃 결혼 발표를 하는 자리로 변질된다. 정희의 말대로 상대를 바꾸고 고쳐야겠다고 하는 관계는 출발부터 잘못된(p27) 것이다. 부모에게 딸 하민의 행동은 플랜 A 플랜 B 정도가 아니라 프레임을 확(p28) 바꾸게 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달라질 미래를 그려보는 것, 그 모든 것이 마음의 할 일(p67)이라고 말하며 딸이 내 곁을 떠난다기 보다 엘리사라는 아이가 우리에게 오는 것(p67)이라고 말하는 봄의 정희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여름의 하민은 가족을 버릴 수 없는 엘리사로 마음이 종이처럼 접혔다 펄럭였다 다시 폈다를 하는 동안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파트너도, 일도,(...) 내가 사는 나라도, 사회도, 내 맘대로 골라 가져보고 싶어(p118) 한다. 사람을 틀에 집어넣으려 하고. 고정관념들이 숨 못 쉬게 할 때가 있(p118)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엘리사와 함께 독일로 가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에 사랑에 있어서 대충이 아닌 최선의 삶을 살라고 말하는 봄의 정희 곁을 과감하게 떠나는 하민은 여름 백성답게 정말 쿨해 보였다.
집을 나오자 계절에게 학대를 당한 가을의 동민에게 여름은 습하고 무덥고 겨울은 습하고 추웠다.(p136) 집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CCTV에 감시당하는 기분, 정신세계가 스캔 당하는 기분이었다. 나의 음악, 나의 예술을 하려면 나의 공간이 필요했다.(p154)는 생각에 아버지로부터 당한 폭행을 핑계 삼아 집을 나왔다. 2년의 방황. 동민은 막막했다. 보이지 않는 건물을 지었다 허물고 지었다 허물고... (p154)를 하면서 이제 방황을 끝내야 할 때임을 자각한다. 갈 곳이 없는 친구 94와 달리 동민은 무지개 너머를 꿈꾼다고 해서 내 집의 안락함을 잊는 건(p96) 아닌 것이다. 자의식에 거품이 빠진 동민은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진로를 찾는다. 가을의 동민의 걸음이 당당해진다.
겨울의 영한은 요가로 마음의 근육도 스트레칭이 필요하다(p211)는 사실을 알아간다. 생각도 수십 년 똑같은 길로만 흘러서 골이 파이고 나면 경로를 바꾸기 쉽지 않다. 뇌세포를 나긋나긋하게 풀어주는 것 지금 영한에게는 몸의 요가보다 마음의 요가(p211)가 더 중요하다. 영한에게는 명상도 도움이 된다. 생각을 끊고 비우는 연습은 책 쓰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p263) 골라내서 비워내고 나니 무겁고 복잡했던 머리가 가볍고 개운해진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지식도 있다(p225) 는 것을 인지하면서 영한의 시간은 더 이상 춥지 않다.
그리고 봄의 정희. 모든 일을 겪고 나서 그녀는 우리는 낯선 느낌과 모험의 짜릿함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곳을 그리워하며 여행에서 돌아오게 마련(p301)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봄이 좋다는 것을 느끼며 새롭게 피어나는 계절에 다시 가볍게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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