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자 김진영 님의 2010년부터 2016년까지의 『조용한 날들의 기록』 속 언어들은 들뜨거나 소란스럽지가 않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자신의 일상을 글로 조곤조곤 말한다. 


문장 곳곳에 콜론-문장 부호의 하나. ‘:’의 이름. 표제어 다음에 해당 항목을 들거나 설명을 붙일 때 쓰거나, 희곡 따위에서 대화 내용을 제시할 때, 시(時)와 분(分), 장(章)과 절(節) 따위를 구별할 때, 의존 명사 대(對)가 쓰일 자리에 쓰인다-과 세미콜론-문장 부호의 하나. ‘;’의 이름. 문장을 일단 끊었다가 이어서 설명을 더 계속할 경우에 쓴다. 주로 예를 들어설명하거나 설명을 추가하여 덧붙이는 경우에 쓴다-이 있는 것도 일반적인 여타의 도서들과는 다르다. 쓰여 있는 숫자가날짜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철학자의 문장은 무상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고적했고, 책 면면에서 드러나는 것들의 많은 부분이 나에게는 모호하게 와닿았다.  


책의 표지에도 나와 있는 문장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어떻게 할 것인가?는 2010년 1월 3. p8에 처음 등장한다.  ‘또다시 반복하는 질문: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해 12월 3. p65 ‘눈뜨면 되노는 주문: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어찌할 것인가?’에 나타났다가, 다음 해 2011년 2월 19. p79에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한 줄을 덧붙인다: ‘...그런데 빛이 있다. 아주 희미한, 그러나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어떤 빚이 있다. 이 빚은 무엇인가?’로 다소 희망을 보여주었다가, 마지막으로 그 해 3월 6. p84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다시 쓴다. 소설을 읽는다.라고 쓰여있다. 네 번이나 반복된 이문장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도대체가 어떤 의미로 쓰인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 이 문장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물어볼 수 없어 갑갑했다. 


2011년 5월 8. 쉽게 생각하자고 다짐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글씨부터 바로잡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메모를 할 때마다글씨들이 무너지고 흩어지고 깨진다. 이 글씨들부터 바로 세울 일이다. 또박또박 정자로 정확하게…....필적을 잃으면서마음을 지킬 수는 없는 일.(p109)을 읽으며 작가의 필체가 궁금했다. 쉽게 생각하기 위해 글씨가 무너지는 것이 사고의무너짐을 초래한다는 작가의 마음과 필적을 잃으면 그 마음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이 깊게 와닿는다. 필적을 잃지 않도록조심해야 한다. 


2012년 3월 22. 자클린 뒤 프레를 듣는다. 현의 물질성과 육감성에 놀란다. 앨범에서 보았던 그녀의 사진 한 장. 다리 사이에 첼로를 안고 홍소(입을 크게 벌리고 웃거나 떠들썩하게 웃음) 하던 젊고 건강한 여자. 첼로는 악기가 아니라 그녀의풍만하고 우아한 육체였다. 분명히 소리는 정신이고 물질이다. 그러면 음악은 물질을 기화시키는 걸까, 아니면 정신을 육화시키는 걸까.(p158)라는 말에 자클린 뒤 프레가 연주하고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찾아 들었다. 연주하는 자클린의 얼굴에는 홍소는 보이지 않았다. 소리에 심취해 집중하는 진지한 얼굴만 있었다. 병으로 연주를 하지 못했던 그녀의 삶을 생각하며 자크 오펜바흐가 작곡한  ‘자클린의 눈물’을 듣고 있으니 음률이 더없이 애절하다. 


2013년 4월 13. 이제 아이의 부모들은 더 이상 울부짖지 않는다. 그냥 가슴을 껴안고 앉아서 아이들이 묻혀 있는 바다만바라본다.(p326) 하염없이 작가가 써 놓은 글자를 보고 또 본다. 2013년 아이들을 바다에 묻고 그 바다만을 바라보는부모들은 더 이상 울부짖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울부짖을 힘이 남아 있지 않음이 보인다. 


2014년 11월 2. 책에 빠졌다. 의미에 빠졌다. 문장에 빠졌다. 요즈음은 단어에 빠진다. 단어가 구멍처럼 열리고 나는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p400)고 하는 작가를 보며 나도 싯다르타에 빠졌어요. 싯다르타가 가졌던 비움의 의미에 빠졌어요. ‘내가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위해서였다.’는 문장에 빠졌어요. 요즈음은비움과 채움이라는 단어에 빠진다고 말하고 싶다.


2015년 7월 16. 나이가 든다는 건 날씨가 민감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슈퍼컴퓨터라 해도 날씨는, 특히 태풍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고 어느 기상학자는 말한다-누구나 자기 안에 태풍을 하나씩 갖고 있을 거다. 누구나 그걸 알아보는 건 아니겠지만...... (p470)적어도 나는 그렇다. 날씨에 민감하고 날씨 따라 변하는 마음으로 나이 듦이 더힘겹기도 하다. 거기다 내 안의 태풍으로 휘청거리기도 한다. 


2016년 12월 8. ‘있다’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있었다’라고만 말할수 있다. ‘있다’와 ‘있었다’ 사이에 있는 것, 그것이 세월이다. 사물들과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 세월을 보고 그래서 보이는 것 안에는 환영이 있다. 이것이 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 앞에서 필연적으로 꿈을 꾸는가의 이유다.(p704) '있었다‘와 ’있다‘ 사이의 세월에서 그리고 사랑하는 것들 앞에서 필연적인 꿈을 꾸며 살아온 작가의 바람이 있다. 나 역시 있던것들이 있었던 것들로 바뀌는 시간, 그 세월의 시간 안에서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 꿈을 꾸며 살아간다. 


이렇게 작가의  『조용한 날들의 기록』이 끝이 난다. 그의 기록은 조용해 보이나 결코 조용하지 않다. 그가 왜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고 어찌하냐고 묻고, 중간에 '...그런데 빛이 있다. 아주 희미한, 그러나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어떤 빚이있다. 이 빚은 무엇인가?'라고 했다가 다시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고 결론짓듯 말했는지 읽고 나니 알듯도 하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죽음 앞에 결코 인간은 초연할 수 없다. 그가 했던 무수한 기록과 질문에서 받아들였으나 놓고 싶지않았던 삶이 보인다. 조용해 보이지만 결코 조용하지 않았던 그 치열했던 마음을 독자인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렇게  그의 날들을 보며 나의 날들은 어떤 날로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많은 날들 중에 하루. 2016년 3월 24. 집필은 계획적이다. 글쓰기는 돌발적이다. 글은 복병처럼 예기치 않은 순간과 지점에서 돌출한다. 그리고 한동안 자기 길을 질주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역시 이유도 없이 사라진다. 글을 쓴다는 건 이글들의 발작과 행로를 따라가는 일이다. 이 글들의 행적은 나중에 영화처럼 편집된다. 글들 사이사이로 끊어진 길들을 패치워크처럼 바느질하는 일이 소위 작가의  유일한 작업이다. 그 작업의 끝에 책이 아니라 텍스트가 있다. 텍스트는 흩어짐과 이어짐, 분산과 응집의 몸짓이다. 그것은 몸부림이다.(p643)에서 나의 날을 찾는다. 발작과 행로를 따라가는 일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의 날을 조금씩 찾아간다. 다만 나는 작가의 책의 끝에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 책의 시작 제목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조용한날들의기록

#김진영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6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