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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023] 질문은 조금만
‘모든 사람은 고유한 언어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하는 작가는 자신만의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11인과의 사려 깊은 대화를 『질문은 조금만』에 풀어놓았다.
어떤 세계 안에서 끌리는 대상의 정확한 팩트 위에 설복(알아듣도록 말하여 수긍하게 함)의 힘을 갖춘 낱말, 전문적인 섬세함 위에 유머와 억양을 갖춘 쉼표, 언제까지나 귀 기울이고 싶은 압축된 지혜,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를 탐문하는 이야기 속에 숨겨두었던 삶이 책 곳곳에 그들의 언어와 작가의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자신만의 사조를 만들어 현실을 노래하는 가수 최백호.
표지 같은 선배 거포들의 루키 시절 최다 홈런 기록을 넘어선 야구 선수 강백호.
인간은 본래 부족한 존재고, 나약한 존재고 흔들리는 존재라 다만 좀 덜 흔들리는 쪽으로 나아간다 말하는 법륜 스님.
사랑받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삶인데 항상 염세적인 생각을 한다는 강유미.
실증적인 사람으로 과학적으로 카르마와 윤회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정현채 교수.
나이 드는 거에 대해서는 한 번도 두려워해본 적이 없다는 정경화 전 외교부장관.
외로움을 사랑하는 한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로 모호함은 한숨, 확실함은 목숨이라는 생각으로 옷을 만드는 진태옥.
한예종 최초로 학생, 교수, 직원, 강사, 구성원 모두의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된 김대진 총장.
<대추 한 알>-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라는 짧지만 강력한 시로 알려진 시인 장석주.
어린 나이에 풍화된 목소리가 아니라 알아서 성숙을 배우며 도약의 점프를 하고 있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차준환.
동작 하나 혹은 목소리 아니면 찰나적인 호흡 또는 스텝의 문제보다 손가락 하나의 문제에 가장 큰 예민함이 있다고 말하는 박정자가 있다.
존재 하나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작가의 원근법으로 바라본 존경할 만한 인격을 가진 끌리는 대상 11명에게 조금만 질문해서 듣게 된 삶에 대한 사유가 있다.
지금의 노래 최백호
-여전히 스탠드 마이크로 노래하는 가수 최백호. ‘저는 시간이 지나면서 만들어졌어요. 성대가 이미 굳은 지금, 고음이 더 잘 나오는 원인은 저도 모르겠어요.’라는 답을 하게 만든 질문이 무엇일까 궁금하게 만들고, <낭만에 대하여>와 <낙엽은 지는데>를 듣다가 그는 고독을 노래하지만 노래로 덜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게 한다.
저는 노래하는 저만의 방법, 이런 게 없어요. 같은 노 래도 할 때마다 다 달라요. 똑같이 못해요. 음반처럼 똑같이 못 불러요.(p41)
마운드의 토르 강백호
-오늘 못해도 내일 잘 할 수 있는 연극 같은 야구에서 다른 선수들을 많이 관찰하고 입 밖으로 낸 약속은 꼭 지키는 선수 강백호는 이승엽 선수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시즌 114경기를 치러야 되고, 그 경기 속에서 항상 배우는 게 있다고 말하는 그는 데뷔와 동시에 대한민국의 슬러거(야구에서 장타를 날릴 수 있는 힘을 가진 타자)의 적자가 된 사나이다.
제 성격이 현실을 직시하는 편이에요. 오늘은 오늘의 경기, 내일은 내일의 경기. 하루하루에 길게 연연하지 않고 그다음 날을 보는 편이에요.(p67)
다름의 평등함 법륜
-1988년, 불교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설립해 종교라는 강고한 사슬을 벗어나 강한 침투력으로 시민 사회를 파고든 스님의 어조는 연잎처럼 나직하다. 그러나 ‘만일결사’를 해내신 스님의 역량은 결코 부족함이 없다. 침묵을 길게 늘어뜨리는 법이 없다. ‘즉문즉설’에서 해법을 제시하는 스님의 미니멀 언어는 너무 짜릿하고 긴요하며 실제적이다.
제가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건 ‘지금 출발이다’. 어 제까지 연습이고, 지금 또 출발이고, 지나면 다시 연습이 고, 지금 또 시작이고, 항상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p99)
마음속의 완구 공장 강유미
-사춘기 땐 음침하고 무서운 다크함의 끝이었다고 말하는 강유미는 대본을 직접 쓴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으로 코미디언더러 왜 희극 ‘배우’라고 하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2008년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홍준표, 김성태 같은 정치적 요주의 인물들에게 다짜고짜 마이크를 들이대는 인터뷰로 세간의 이목을 끈 그녀는 11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사람, 사랑스러웠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p135)
파도 속의 영원 정현채
-죽음학의 마스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 죽음에 대한 포괄적 사색이며 죽음의 재정의 조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의 저자 정원채 님은 제주도 조천읍에서 살고 있다. 그는 우리가 죽어도 그 특성과 개성이 유지된다고 하면서 죽은 뒤에도 모든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죽음에 뒤따르는 충격을 완화해 줄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부모의 유전자 조합으로 아무 인연 없이 태어난 게 결코 아니고, 심지어 태어나기 전에 어떤 부모, 어 떤 환경에서 자라날 건지 자기가 결정하고 오는 존재라는 거죠.(p152)
최초의 이름 강경화
-2017년 6월, 그가 외교부 장관으로 등장했을 때, 여성이 내각 구성원의 일부로 매우 중요한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은 거의 급작스러운 문학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정직은 가장 좋은 방책’이라는 말을 모토로 삼고 있는 그녀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라고 하신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이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저는 최초의 여성이 되고 싶어 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냥 저한테 기회들이 왔을 뿐이고, 이제는 그런 수식어가 필요 없는 세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p187)
백자의 마음 진태옥
-흰 셔츠를 입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녀는 한국 패션의 보통 명사이자 기록과 같은 디자이너로 소재부터 디자인에 피팅까지, A부터 Z까지 다 커버한다. 일 중심으로 삶을 맞추지 않고 삶 위주로 일을 조정해온 세월을 보낸 자신을 달 항아리 백자라고 했다.
그냥 저기서 누군지 모르는 모델이 새카만 옷 한 벌 입고 나오는데,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최고의 미니멀리즘. 하나로 딱 떨어지는 그것. 사람들이 모두 저게 바로 진태옥이다. 난 그거면 끝이에요.(p231)
캠퍼스의 호로비츠 김대진
-9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총장으로 예술적 헌신이 타인의 인생에 반드시 영향을 미칠 거라고 믿는 음악 스승이자 마에스트로이자 비르투오소(예술이나 도덕에 상당히 특별한 지식을 가진 사람)로 한국의 모든 클래식은 그를 통한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그는 현재 행정의 업무를 해 나가면서 학생들을 음악의 체류자로 만드는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저는 소리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 소리는 절대로 다른 사람이 만들 수 없고 나만 낼 수 있는 나만의 감정이거든요.(p256)
소년의 심장 장석주
-열다섯 살부터 명료하게 빛나는 금욕주의로 시를 써온 시인은 1979년부터 2019년까지 쓴 아홉 권의 시집 가운데 66편을 추린 다음, 팽팽하게 압축된 138개의 사유를 잇댄 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를 출간했다. 그는 시를 쓰는 것으로 언어 자체가 가지는 힘을 증명하고 있다.
시인한테는 살아서 쓴 시 하나하나가 자기의 비석이 되거든요. 저는 묘비명에 이렇게 쓰고 싶습니다. '나는 쓴다.‘(p275)
얼음의 꽃 차준환
-올해 22살의 차준환은 피겨 스케이팅 인프라와 체계가 부족한 국가에, 그것도 겨울처럼 굶주린 국내 남자 피겨 싱글 부문에 어리둥절한 행운처럼 나타났다. 아니, 그냥 자기가 알아서 하늘에서 툭 떨어졌다. 매 시즌 무수한 과정을 거친 그의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기록이 되었다.
저는 항상 대범한 편이에요. 뭔가 자신이 없을 때 소 심해지지만 그래도 결국 대범해져요. 소심한 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p320)
죽음의 왈츠 박정자
-2003년, <19 그리고 80)을 준비하던 박정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에 나는 아무런 꿈도 없었어. 되고 싶은 것도 없었어. 그런데, <19 그리고 80)을 하면서 꿈이 생겼어.” 그리고 약속했다. “이 작품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릴 거야. 여든 살에 그만둘 거야.” 그리고 2021년 5월 23일, 상상마당 대치 아트홀에서 원제대로 공연했던 일곱 번째 <해롤드와 모드>는 18년 전의 약속을 사수한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세상은 무엇이든 다 그림자일 뿐이에요. 실체가 뭘까요? 진실이 뭐예요? 어떤 사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영원히 미스터리예요.(p332)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열심히 읽고 작성한 주관적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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